주52시간제 완화하며 입으론 "노동자 건강 챙겨야"
비상경제민생회의, 특별연장근로 180일 확대, 주 60시간 근로 일몰 연장
▲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상경제민생회의는 그동안 비공개로 열렸지만 27일 11차 회의는 처음으로 생중계됐다. 일각에선 경기 침체 대해 정부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지만, 정작 이번 회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고 농담이 자주 오가는 등 비상이나 위기 분위기를 느낄 순 없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의 말이다. '해외건설 사업 수주에서 주52시간제가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는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건의에 대한 답변이다.
앞서 원 장관은 "국제 유가가 많이 올라 돈이 석유자원국으로 몰리고 있다. 이와 함께 건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를 기회 삼아, 적극적으로 해외 건설로 진출할 때"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첫 출정으로 11월 초 제가 단장이 되어 30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과 사우디아라비아로 해외 수주 출장을 다녀온다"고 이야기했다.
주52시간제 관련, 처음 운을 뗀 건 원 장관이었다. 그는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과 정부 '원 팀'으로 총력전을 펴야한다"면서도 "주 52시간제 노동이라는 노동 조건이 해외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돼 현지 사정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 노동자들만 일찍 퇴근해야 해 수주 경쟁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지 사정에 맞게 (주52시간제를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장관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의견을 냈다.
말을 이어 받은 이 장관은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건설업체들이 모두 우리나라 근로 시간 제도의 제재를 받아 현지화나 협업, 기후 등에 따라 유연한 대응이 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며 "주52시간제의 예외로서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현재 90일에서 180일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주52시간제 무력화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듯 "대통령께서 늘 말씀하셨지만, 노동자의 건강이 훼손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지켜지도록, 노동자들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며 가볍게 덧붙였다.
▲ 청년진보당 당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 현관 앞에서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특별연장근로기간 90일→180일로 확대
뿐만 아니다. 이날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또한 경제 위기 상황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들의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며 주52시간제를 언급했다.
이영 장관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예외적으로 주52시간이 아닌, 주 60시간 근무를 인정해주던 제도가 올해를 일몰기한으로 사라진다"며 "업계와 각종 협·단체들 모두 성명서를 내고 일몰제를 폐지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 장관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빈 일자리가 이미 20만개 이상이다. 영세 업체들은 일할 사람 없어서 문 닫을 판이라고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다"며 "그래서 영세업체,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추가 근로를 인정 했고,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안에 일몰제를 2년 더 연장하는 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다시 '노동자의 건강권'을 언급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노동자의 건강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재해 예방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사업장 내 산재 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정부의 주52시간제 완화 움직임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장시간·과로 체제에 따른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을 우려가 있다.
최근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사건이 벌어진 SPC 계열사 SPL의 제빵 공장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SPL은 올해 업무 폭증을 이유로 42일의 특별연장근로를 승인받는 등 노동자들을 과로 환경으로 몰아넣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 시간과 노동자의 안전이 별개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1월부터 약 9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 기간 발생한 중대재해는 432건, 사망자는 448명에 이르러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이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번 SPC 계열사 사망 사고를 계기로, 조만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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