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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앓는 80대 노인의 치밀한 복수

[리뷰] 영화 <리멤버>

등록|2022.10.31 13:50 수정|2022.10.31 13:50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리멤버>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에 총구를 겨누는 영화다. 국가가 했어야 했을 일을 방관하다 개인의 분노로 쌓여 결국 복수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민감한 소재를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풀어 대중영화로 소화했다.

탄탄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원작이 있다.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은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노인이 가해자를 처단하는 내용이다. 한국으로 옮겨오자 일제강점기에 가족을 잃은 노인이 친일 가해자를 하나씩 처단하기 위한 복수극으로 재해석했다.

60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간 80대 노인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프레디(이성민)와 제이슨(남주혁)으로 불리며 환상의 콤비였던 두 사람. 17째 모범 직원으로 일하던 프레디로는 끝이지만 절친으로서 일주일만 운전을 부탁한다. 난생처음 포르쉐를 몰아본 인규는 신났다. 알바비 고액 50만 원을 받고 운전기사 겸 말벗이 되어주는 건 꿀알바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바로 운전 착수! 프레디는 병원에 데려다 달라더니 기다리지 말고 가라며 사라졌고 몇 시간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 그냥 가나 싶어 밤늦게까지 기다리던 인규는 로비를 서성이다, 멀뚱히 앉아 있던 프레디를 깨워 가자고 부추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며 먼저 가라며 위로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인규는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병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인규는 무심코 뉴스를 보다 화면 CCTV에 담긴 자신이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몰리자 당황했다. 이 모든 게 프레디와 연결되어 있음을 안 인규는 계속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지 망설인다.

그러던 중 사채업자가 쳐들어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지만 프레디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인규는 어쩔 수 없이 60년 동안 철저히 계획된 프레디의 동행에 끼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로.

이성민과 남주혁의 세대초월 케미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80대 노인 분장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성민의 농익은 연기가 빛난다. 구부정한 어깨, 거친 호흡, 짧은 보폭과 느린 걸음걸이로 한필주 자체가 되었다. 노인 분장을 위해 4시간씩 투자한 의미가 있었다. <리멤버> 개봉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형사록>이 공개되었는데 위화감 없이 각각의 작품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장성해 가정을 꾸렸다. 이제 병으로 노쇠해진 육신은 떠날 날만 가까워진다.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노인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실행에 옮기는 계획. 노련함과 현명함, 순발력이 혈기왕성한 청년과 만나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기질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다.

원작에는 없던 20대 박인규를 생동감 있게 만든 남주혁과 브로맨스라는 단어로 단정할 수 없는 묘한 케미를 이룬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담하게 된 인규는 관객의 대변인으로 설정했다. 21세기에 20세기의 비극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준다. 세대와 세대의 이해와 화합, 동행이란 삼박자가 따뜻하게 그려지는 버디물이다.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리멤버>는 상상에서 출발한 허구지만 영화 속 어떤 부분은 실화인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역사에 희생된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면서도 기억되어야 할 역사를 현세대에게 알려주는 뜻깊은 역할을 맡고 있다. 60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간 노인이 80세 뇌종양과 알츠하이머로 기억이 목숨 보다 빨리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손가락에 새긴 뚜렷한 문신은 과거가 잊히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 그 자체다.

완성도는 있다. 다만 128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 아쉽다. 이 안에 가족의 역사가 한 국가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비극을 전하려 했던 것 같다. 분명 좋은 소재지만 조금 덜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 일제 청산, 산업재해, 악덕 기업의 횡포, 알츠하이머 등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담으려고 하니 무겁다 못해 약간 버거운 건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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