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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살얼음판 시국에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21] 유신과 긴급조치 선포를 전후한 시국에 한승헌의 동정

등록|2022.11.03 16:59 수정|2022.11.03 16:59

▲ 한승헌 변호사 ⓒ 자료사진


우리 현대정치사 또는 헌정사의 시대구분은 이승만 정부 - 제1공화국, 4.19혁명 후 장면정부 - 제2공화국,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 - 제3공화국, 10월유신 후 박정희 정부 - 제4공화국, 10.26 거사 후 전두환 정부 - 제5공화국, 전두환 후계자 노태우 정부 - 제6공화국이라 호칭한다.

제4공 정부는 곧 긴급조치 시대였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헌법을 뛰어넘는 효력을 발휘하였다. 민주공화, 법치주의, 삼권분립의 헌법질서는 무너지고, 박정희 1인에 의한 폭압통치가 행정명령으로 자행되었다. 꼬리가 몸통을 움직이는 격의 행정명령시대였다.

74년 새해가 밝으면서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회복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게 확산되었다. 심지어 박정권과 정치적 유착설이 나돌던 유진산의 신민당까지 1월 8일 개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저지하는 더욱 날선 강압책을 들고나왔다. 1월 8일 긴급조치 1, 2호를 선포하여, 유신헌법을 반대 부정 비방하거나 개헌을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하고 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1호), 이에 따른 비상군재를 설치한다(2호)고 선포했다. 합법적인 국민의 요구를 원천적으로 억압하는 반헌법 조치였다.

긴급조치는 원래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대통령이 내정ㆍ외교ㆍ국방ㆍ경제ㆍ재정ㆍ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서 내리는 특별한 조치다.

그러나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무제한의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으로서 사실상 반유신세력에 대한 탄압도구로 악용되었다. 나치시대 히틀러의 비상대권과 유사한 것이었다.

74년 1월 8일 제1, 2호가 처음 발동된 이래 75년 5월 13일 제9호까지 이른 대통령 긴급조치는 박정희 암살로 79년 12월 8일에 9호가 해제되기까지 만 5년 11개월 동안 이른바 '긴조시대'가 지속되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그야말로 권력의 광기가 절정에 이른 암흑의 시대였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3권 위에 군림하게 되고, 권력분립과 의회민주주의는 형해화되었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래 무헌법의 무인통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긴급조치 1호는 헌법개정 관련 외에도 △유언비어의 날조ㆍ유포 금지 △금지행위의 선동ㆍ선전 및 방송ㆍ보도ㆍ출판 등 전파행위 금지 △이 조치의 위반자 및 비방자는 영장없이 체포ㆍ구속ㆍ압수 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과 1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유신과 긴급조치 선포를 전후하는 살얼음판 시국에 한승헌의 동정을 살펴본다.

1973년 1월에는 김상현 씨 등 신민당의원 구속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2월에는 김준희 교수의 반공법 위반(남북한 UN동시가입론) 필화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같은 2월 <동아일보> 고준환 기자의 국회의원선거법 위반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같은 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으로 위촉되었다. 5월에 대한변호사협회 문화공보위원장에 피선되었다.  

6월에는 서울공대 박선정 교수 피검 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7월에는 박형규 목사 등이 '부활절 예배사건'으로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은 사건을 변호하였다. 7월에는 또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사건(김낙중 씨등)의 변호를 맡았고, 11월에는 서울대 문리대생 집회시위사건(나병식 등)의 변호를 맡았다. 이처럼 바쁜 한 해였지만, <문학사상> 1월호에 <한국문학에 나타난 법의식>을 발표하고, CBS방송에 <사법에의 신뢰와 비판>, <형벌권의 남용과 절제> 등 여러 편의 논문을 쓰고 칼럼을 방송하였다.

1974년 1월에는 고려대 '검은 10월단사건' 학생들의 변호를 맡았고, 또한 이해학ㆍ이규상 씨 등에 대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 위반사건, 백기완 씨에 대한 동 위반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2월에는 임헌영ㆍ장백일 씨 등 문인들에 대한 <한양>지 관계 반공법 위반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 권호경ㆍ김동완 씨 등 종교인과 학생들에 대한 긴급조치 제1호 위반사건의 변호도 맡았고, 5월에는 <중앙일보> 이원달 기자의 출판물에 대한 대통령선거법 위반 및 국회의원선거법 위반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6월에는 세칭 민청학련 사건의 긴급조치 제4호 위반혐의에 대한 변호를 맡았고, 7월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박형규 목사에 대한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 위반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이어서 서창석 군 등 대학생들에 대한 변호를 맡았고, 연세대 김동길ㆍ김찬국 두 교수에 대한 긴급조치 위반혐의의 변호를 맡았다.

이렇게 시국사건의 변호에 바쁜 가운데서도 크리스천아카데미 이사로 피선되었고,<문학사상> 5월호에 <저항인가 적응인가>, <신동아> 7월호에 <필화재판>, <씨알의 소리> 9월호에 <권력과 고문>, <신동아> 12월호에 <정치범과 정치현실> 등의 글을 활발하게 발표하였다. 11월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발기에 참여하였으며 12월에는 수상평론집 <위장(僞裝)시대의 증언>(범우사)을 출간, 한변호사는 이 책으로 필화를 당하게 된다. (주석 1)


주석
1> 최종고, <한승헌의 삶과 생각>, 한승헌, <분단시대의 피고들>, 76~77쪽, 범우사, 1994.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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