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임신 3개월인데..." 27살 스리랑카 청년의 비극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1]결혼한 지 4개월만에 참사 당한 이주노동자... 사회정의 고민했던 컴퓨터 공학도
▲ 스리랑카인 희생자 무함마드 지나트(27·Muhammad Jinath)씨를 추모하는 사진과 글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추모장소에 게시돼있다. ⓒ 손가영
"지나트는 지난 7월 4일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임신한 진 3개월째예요.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하다 회복 중입니다. 결혼 때문에 세 달 정도 스리랑카에서 지내다가 지난달 돌아왔습니다. 지금 현실을 믿기 힘듭니다." (나브샤드씨)
스리랑카에서 온 나브샤드(40)씨는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힘들다며 이리 말했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크다고 했다. 친구는 같은 나라 출신인 무함마드 지나트(27·Muhammad Jinath). 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오후 2시께 50여명의 조문객이 모였다. 스리랑카, 이집트, 인도 등 여러 나라의 친구들부터 한국인 직장동료까지 함께 했다. 장례의식 중 눈물을 흘렸던 친구 살리(30)씨는 "좋은 품성의 친구여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연락두절... 다음날 서울 병원 다 찾아다닌 친구들
▲ 1일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이슬람 모스크 건물 전경. ⓒ 손가영
가까운 친구들은 29일 밤과 30일 새벽 내내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이태원 거리에 있을 지나트씨가 새벽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날 밤 9시까지 자신의 집에서 지나트씨와 함께 있었던 친구 A씨는 "상황을 알게 된 밤 11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 전화했는데 한 번도 연결이 안됐다"며 "2시부턴 아예 폰이 꺼져 연락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30일 지나트씨를 찾기 위해 친구 10명이 모였다. 두 팀으로 나뉘어 자동차를 타고 서울 전역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날 오후 1시 30분 보라매병원에서 그를 찾았다. 나브샤드씨는 "마음이 급해 오전 7시부터 서울 한남동 주민센터에 도착해 실종 신고를 했다"며 "피해자가 너무 많아 5시간을 기다려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지나트 휴대전화가 경찰서에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찾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기 하루 전, 한국에서 무슬림 방식의 염습과 기도로 그를 먼저 애도하고자 장례식을 준비했다. 염습실에서 시신을 씻기고 닦는 데에 1시간, 모스크 계단 앞마당에서 함께 기도하는 데 20분 가량이 걸렸다. 의식을 주도한 이맘은 이 20분 동안 지나트씨의 얼굴을 둘러싼 흰 천을 벗겨 추모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장례식이 끝나기 직전,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을 본 이들 몇몇이 울음을 터뜨렸다. 영상통화를 통해 현장을 보고 있는 그의 아내와 부모님도 전화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흐느끼며 울었다.
영상으로 고인 보낸 가족... 동료 "참 성실해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었는데"
▲ 11월 1일 오후 2시 20분경 지나트씨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이 모스크를 나서는 모습. ⓒ 손가영
▲ 11월 1일 서울 한남동 이슬람 모스크 계단 앞마당에서 희생자 지나트씨에 대한 약식 장례의식이 치러지는 모습. ⓒ 손가영
지나트씨는 4년 전 한국에 왔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소재 한 포장지 제조업체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 이아무개(41)씨는 "나는 회사를 먼저 나왔는데, 최근 유사한 업체를 차려 지나트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고 2주 전 면접도 봤다"며 "일요일(30일)이 첫 출근날이었는데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됐다. 그러던 차 지나트의 친구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였다"며 "그래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었는데..."라고 말을 삼켰다.
지나트씨는 원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살리씨는 "그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 관련 석사 학위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집에 일이 생겨 한국으로 이주해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의 친구 5명은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한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한 친구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일하게 되자 '거긴 할랄 푸드(이슬람법상 먹을 수 있는 음식)가 없으니 먹을거리를 보내주겠다'며 먼저 소포를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트씨는 사회 정의도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그의 SNS엔 시리아 내전의 중단을 촉구하는 'Save Syria(시리아를 구하자)' 피켓, 버마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는 피켓, 2018년 성폭행 후 살해당한 6살 소녀 자이나브 사건에 대해 정의를 바란다는 해시태그 등의 글이 꾸준히 발견된다.
그는 4남매 중 셋째로, 형과 누나, 남동생을 뒀다. 그의 친구 누하일씨는 "현재 모든 가족이 깊은 비통함에 빠져있다"며 "(지난 7월 결혼해) 아내와는 두 달 밖에 같이 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사고 당일 아내와 다정하게 영상통화도 했었다"며 "마음이 너무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나트씨의 시신을 실은 차량은 오후 2시20분경 이슬람 모스크를 떠나 방부처리를 위해 인천 소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시신은 2일 오후 11시 스리랑카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실려 고향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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