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유족의 절규, "정부·지자체·경찰 왜 말이 다른가"
한국어 배우러 온 아들 잃은 유족... "지원 요청하면 소관 아니라며 선 그어, 이게 나라냐"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참사가 발생한 골목길 입구에 경찰통제선이 설치되어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 권우성
"여기야? 이 골목이야? 20만, 30만이 모인다는데 어떻게 아무 것도 안 했어! 왜! 이게 나라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5일째인 2일 오후 3시 30분,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사고 현장에서 거센 절규가 터져 나왔다. 이번 사고로 스물 네살 아들을 잃은 어머니 A씨였다.
"오스트리아에서 30년을 산 교포다. 우리 아들, 마지막으로 한국인 정체성을 배워보고 싶다며 한국에 왔고 귀국 1주일 남겨두고 이런 일을 당했다."
희생자는 내달 7일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김아무개(24)씨. 30년 전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A씨 부부의 아들로, 3개월 전 한국에 들어와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부모님과 한국어로 더 깊게 대화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두 번 고통받는 외국인들... "체계적인 지원 필요"
▲ 11월 2일 오후 3시30분경 이태원 사고 현장을 찾은 유족이 기자들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손가영
유족들은 김씨에 대한 장례절차와 화장을 다 마쳤다. 하지만 화장한 유골을 들고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려던 중, 각종 행정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브리핑만 보면 외국인과 재외국민 등 비내국인들에 대한 지원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듯하나, 실제 현장에선 모든 관계기관의 말이 다 다르고 구체적인 지원을 요청하면 각자 소관이 아니라며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A씨 남편은 "참사 피해에 외국사람, 한국사람 따로 없는데 (정부나 지자체에) 문의하면 외국 대사관에 문의하라 그러고, 대사관에 문의하면 또 다른 답을 듣는다"고 답답해했다.
함께 현장에 나온 A씨의 조카 변아무개씨도 "지금까지 언론 취재 요청이 많이 들어와도 응하지 않았으나, 현재 외국인 피해자 유족이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있어서 (얘기한다)"며 "(외국인 유족 지원과 관련해) 서울시·경찰·외교부의 설명 다 잘 들었다. 그런데 통일된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변씨는 "지금까지 겪은 문제가 정말 많지만 당장 오늘 겪은 것만 말하면, 화장을 한 유골을 비엔나로 옮기기 위해선 시체검안서, 화장증명서 등 각종 서류가 (오스트리아어로) 번역이 돼야 한다"며 "번역업체를 찾는 것부터 일이다. (당국에선) '어디로 가라'는 말만 해주길래, 그곳을 찾아갔더니 '당장 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 이태원 참사 유족이라하니 그제야 '1박 2일(이 걸린다)'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변씨는 "한시라도 이 나라에 있는 게 괴로운 분들인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라며 "매 (행정)절차마다 언제 어디를 가서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지를 안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변씨는 또 "사안마다 경찰·지자체는 '제 소관이 아니다'라고 하고, 외교부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이를 거론하는 문제를 겪고 있다"며 "외국에 사는 유족들이 행정절차를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들이 자기 나라에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업무 도우미 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A씨도 "지난 3일 동안 우리 아들 하늘나라로 보내는 과정에서 (여러 불편한 문제를 겪어)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며 "(정부가) 어떤 매뉴얼 없이 말을 계속 바꿔가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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