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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진짜 이유

[미리보는 영화] <첫번째 아이>

등록|2022.11.03 10:02 수정|2022.11.03 10:02

▲ 영화 <첫번째 아이> 포스터 ⓒ ㈜더쿱디스트리뷰션


"원래 처음이 다 어렵지. 나도 그랬어."

옆집 아주머니는 아이를 키우는 데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상황도 힘들다'는 주인공 정아(박하선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첫번째 아이라 힘든 걸까. 영화는 이 질문에 고개를 젓게 만든다.

오는 10일 개봉 예정인 <첫번째 아이>는 엄마로서 아이를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한편,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도 지키고 싶은 '워킹맘' 정아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정아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1년 만에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장에 복귀한다. 그러나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제때만 퇴근해서 돌아오면 될 줄 알았던 복직은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갑자기 친정엄마가 쓰러지자 정아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모를 구하려 애쓴다. 영화는 정아의 뒷모습을 통해 경력단절 여성, 영유아 돌봄시설 부족, 가사노동 편중 등 우리 사회 저출산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상사는 정아에게 "아이 키우는 거 힘든 줄 안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기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야근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이해해주지 못한다.

사실 등장인물들 중에 악역이라고 할 법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 모두 현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지만 정아가 곤경에 빠졌을 때 손 내밀어주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특히 남편 우석(오동민 분)은 보모를 구하는 문제부터 아이를 맡길 수 없을 때 대체방안을 찾는 문제까지 육아의 모든 면에 남 일처럼 반응한다.

여전히 육아와 가사는 여자 몫
 

▲ 영화 <첫번째 아이>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수족구병을 의심하며 어린이집에서 보육을 거부할 때에도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오직 정아 뿐이다. 재중동포(조선족) 보모 화자(오민애 분)를 처음 만난 날에도 우석은 월급 얘기 이외에는 관심도 없는 모습이다. 아이에게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는 건 모두 정아의 몫이다.

육아는 여자 일이라는듯 알아서 하라던 남편의 태도는 아기의 등에 멍을 발견하는 사건 이후 급변한다. 당장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냐면서 아내를 다그치고, 보모 집을 찾아가서 멱살을 잡는다. 아내에게도 당장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라고 종용한다. 그게 마치 아내를 위한 말처럼 포장하는 것은 덤이다.

"솔직히 누가 키우든지 문제는 생길 것 같아. 당신 휴직할 때 이런 문제 없었잖아. 지금 당신도 예민하고 힘들어, 서현이도 힘들고. 꼭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해야 돼? 다 당신 생각해서 하는 얘기야."

이처럼 이기적이고 냉정한 남편의 모습은 자칫 과한 극적 장치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전히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고 경제활동을 포기한 여성의 64%는 가사, 육아를 이유로 꼽았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65.5%에서 아내가 전적으로 가사와 돌봄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영화는 재중동포에 대한 편견 문제,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젊은 여성 등 다양한 우리 사회 풍경을 짚어낸다. 어느 것도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에 전체적인 분위기도 시종일관 무겁고 어둡다. 러닝타임 내내 숨이 막히는듯한 전개가 이어지는 데다 결말 역시 희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지난 15년 동안 저출산 정책에 225조 3천억 원을 쏟아부었으나 합계출산율이 왜 매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다. 우리 모두 이유를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운 문제다. 저출산 정책 담당자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하는 이유다.

한 줄 평: 한국에서 워킹맘이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
평점: ★★★★(4/5)

 

▲ 영화 <첫번째 아이>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 <첫번째 아이> 관련 정보

감독: 허정재
출연: 박하선, 오동민, 오민애, 공성하
제작: 영화사 화원
배급: ㈜더쿱디스트리뷰션
러닝타임: 93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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