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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인 저는, 내년에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④] 핼러윈은, 이태원은, 그곳의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

등록|2022.11.06 18:44 수정|2022.11.06 18:56
이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편집자말]

▲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권우성


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9.
* 잠이 오지 않고, 못 자는 새벽엔 자신(상담 선생님)과 전화 상담도 연결되지 않으니, 자신(상담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보는 방법으로 글을 남기는 것도 좋다는 말에 메모장에 써둔 글.

선생님, 저는 확실히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잠이 찾아오지 않는 오늘 밤은,
무섭고 두렵고 초조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밤 내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립던데요.
'그리움'이었어요.

콘헤드(고깔 모양의 뾰족한 머리 형태) 코스튬을 한 3명 가족이 기억나요.
20대 딸, 50대 엄마, 아빠더라고요.
세대 관계없이 그렇게 콘헤드 코스튬을 하고 길거리 즐기는 게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그분들은 무사히 집에 가셨을까요?

녹색어머니회 코스튬을 하고 단체로 6명이서 몰려다니던 남자 애들은 잘 갔을까요?
'엄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얼른 집에 들어가' 하고 장난도 쳤는데요.
덩치는 산만해서 어머니 가발을 쓰고 점을 찍고 녹색 모자를 쓰고 노는데, 웃기고 귀여웠어요.
사진이랑 영상도 찍어뒀거든요, 방금도 보고 왔어요.
연락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워요, 그냥.

아기들이 예년보다 이태원에 정말 많았거든요.

지금은 30대인 저는 사실 26살부터 매년 핼러윈을 즐겼어요.
그런데 올해 처음 이태원에 한국 아가들이 많이들 나와있더라고요.

몇 년 간 한국 핼러윈 문화도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나도 내년에는 더욱 캐릭터가 짙고, 아이들이 반가워할만한 캐릭터로 분장해야지, 예쁘고 섹시한 거 말고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거, 도날드덕 분장을 꼭 해야겠다 싶었고요.

너무 귀여웠고, '해피 핼러윈' 외치며 먼저 다가가 인사도 많이 해주었어요. 아이들 표정이 어떤지 아세요?

어른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주면 부끄러워 하지만 두 눈에 반가움이 가득해요. 초콜릿을 주면 더 좋아하고요. 아이들은 역시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어요.

아기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기를 무리에 끼워주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인 거, 혹시 아세요? 아이들은 어른들이랑 놀고 싶어 해요.
어린아이들일수록 자기 우주는 부모이자, 그 부모의 친구들이거든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는 핼러윈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너무 좋아요.

오늘 밤에는 그 아기들이 생각이 많이 나네요.
걔네는 집에 잘 갔겠지? 뉴스에 아이들 이야기는 없는 거 보니 다들 집에 잘 갔나 봐. 같이 온 엄마 아빠를 잃은 건 아니겠지.

7살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이모가 핼러윈에 환장하고 놀러다니는 거 알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핼러윈 취소가 됐나 봐요.
왜 이번엔 안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해봤어요.

사람 많은 데는 위험하니까 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나중에 커서 이태원도 가는 게 아니야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단편적으로 그렇게 가르치면 이태원은 나쁜 것,
핼러윈은 나쁜 것, 파티는 나쁜 것, 모든 유흥은 나쁜 것이 되는 거 아닐까요.

저는 여전히 핼러윈이 좋습니다 
 

▲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권우성


그런데 이게 어떻게 나쁘죠?
엄마 아빠랑도 같이 놀고 다른 어른들이랑도 놀고
자기 친구들이랑도 노는 축제인데요.

사회의 역할이 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혐오사회로 가는지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지,
본질을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어른이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아, 정말 생각할수록 핼러윈은 잘못이 없어요. 이태원도 잘못이 없고요.

그런데 너무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어요.
곧 또 국화꽃 놓으러 이태원에 갈 거예요.
가서 더 당당히 이태원에서 밥도 먹고 올 거고,
내년에도 핼러윈 분장 끝장나게 하고 이태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도날드덕으로 분장을 꼭 해야겠어요.

그런데 뉴스에서 이제 방송과 공연계에서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네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걸 어른들은 정말...
모르나 봅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①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http://omn.kr/21i1i
② 이태원에서 같이 살아나온 친구, 진실에게 http://omn.kr/21i3o
③ '놀러 갔다가 죽은 걸 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http://omn.kr/21i3n
⑤ 묻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 때 다 어디에 있었느냐고 http://omn.kr/21i3w
⑥ 쏟아진 친구들의 연락, 휴대전화 붙잡고 울었습니다 http://omn.kr/21i3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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