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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잠 설칠 정도로..." 청각장애 엄마와 딸의 '동행'

[현장취재] 청각장애인 손복희(89) 어르신과 따님 김정례(63)씨

등록|2022.11.07 10:53 수정|2022.11.07 14:13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모녀와 류영인 실장. ⓒ 문수협


"엄마가 자꾸 언제 가야 하냐고 물어보실 정도로 들떠 있었어요. 함께 며칠 동안 잠을 설칠 정도로요. 엄마와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었어요."

촬영을 마친 따님 김정례씨는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준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내생애봄날_눈이부시게 . ⓒ 문수협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 문수협


내 생애 봄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

촬영장에는 가을 대신 봄이 와 있었다. 매번 새로워지는 계절의 흐름이 이곳에서만은 예외다. 지난 6일 단풍 내음이 유난히 진한 일요일이었다. 5살 때 열병으로 청각장애인이 된 손복희(89) 어르신과 당뇨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했고, 다른 한쪽 눈 또한 좋지 않아 이미 흐릿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님 김정례(63)씨를 서산 '오니모아 파티룸'에서 만났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봄날을 찾아 드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생애봄날_눈부시게' 드림팀원들. 그들의 바쁜 손길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모녀의 모습은 동화 속 '빨간머리앤과 친구 다이애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웃음이 귀한 어르신을 웃게 해드리기 위해 "어머니 활짝 웃어보세요~ 하하하~~~"라고 했지만 들릴 리 만무다. 그 모습을 보신 따님이 얼른 어머니의 입꼬리를 위로 올리시며 수화로 웃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따님의 손길을 느낀 어르신이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지은 웃음이 언제까지 갈 수가 있겠나.

갑자기 어르신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바로 스파이더맨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거미인간 스파이더맨. 어르신이 어찌나 좋아하시든지 그렇게 과묵한 어머니가 스파이더맨 등장만 하면 빨강머리앤이 되어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생애봄날_눈이부시게 . ⓒ 문수협


한쪽 눈마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들려고 한 따님 김정례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친구 다이애나처럼 즐거워했다. 삶이 고달팠던 어머니의 얼굴에 조그마한 미소가 피어오르면 자주자주 살며시 손을 잡아 준 그녀. 정례씨는 어머니 모습을 눈에 담으려 애쓰는 듯 오래 오래 바라봤다.

두 모녀를 위해 정광수 플루리스트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광화문 연가'를 들려주었다. 분홍색 아름다운 룸에서 흘러나온 선율은 그 어떤 공연보다 듣기 좋았다.
 

'내생애봄날_눈이 부시게' 현장사진. ⓒ 문수협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 문수협


김은혜 대표는 "어르신분들과 함께했던 내생애봄날 4회차도 좋았다. 하지만 취약계층 장애인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내생애봄날_눈이 부시게' 1, 2회차는 말할 수 없이 의미 있다"며 "지난달에도 매시간 가슴이 시려 혼났는데 이번에도 바보같이 울어버렸다.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당뇨로 시력이 좋지 않으시다. 누구보다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고 울먹였다.

서산시장애인보호작업장 오금택 원장은 "감동의 시간이었다. 잔잔히 흐르는 플룻 음률은 가슴 뭉클했고 스파이더맨은 대상자들에게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리라 믿는다"며 "앞으로도 취약계층을 위한 내 생애 최고의 봄날로 거듭나길 바란다. 모두 수고 많으셨다"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 문수협


 

손복희(89세) 어르신과 이연희 충남도의원. ⓒ 문수협


재능기부로 장애인분들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봄날을 찾아준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이연희 충남도의원은 "우리 어머닌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르신을 보니 마치 우리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며 "그냥 엄마 같아서 안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다가가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돌아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의원은 돌아가 이런 글을 남겼다.

'촬영장은 따듯했다. 청각장애인 89세의 손복희 어머니는 평생 소리를 듣지 못한 삶이 증명하듯 표정이 없으셨다. '얼굴이 예쁘다'를 수화로 말을 건네자 그제야 웃으신다.
63세의 김정례 따님은 한쪽 눈을 실명하고 한쪽 시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엄마를 보는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단다. 두 모녀의 삶에도 봄날은 있었을까? 봄날의 그것처럼 짧지만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모녀를 바라보는 것이 내겐 봄날이다.'

 

내생애봄날_눈이부시게 스테프들과 주인공. ⓒ 문수협


아래는 재능기부를 해준 아름다운 분들이다.

△진행 김은혜 △사진촬영·액자협찬 문수협 △영상촬영 비보이 박훈 △헤어·메이크업 리안헤어서산중앙점 한선미·류영인 △한복 수한복 서은옥 △의상·소품협찬·코디네이터 김년옥·김혜륜·강보화·댄싱스타상점 △소품 문현희 △응급구조 이경하 △장소협찬 오니모아스튜디오 장유진 △촬영스탭 김주원·신현정·주현주 △카피라이터 이근모 △웹디자인 조현정 △간식협찬 태안갤러리헤어 지영숙, 커피에반하다인지점 윤이정, 모퉁이카페 신미경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 문수협

       

'내생애봄날_눈이 부시게' 현장사진. ⓒ 문수협

   

손복희(89세) 어르신과 따님 김정레(63세)씨. ⓒ 문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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