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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달살기, 충전 기대했는데 돌아온 건 낭만 착취"

[낭만에 가려진 제주 게스트하우스 근로 실태 ①] 고강도 노동에 식사 거르는 일도 다반사

등록|2022.11.07 18:04 수정|2022.11.07 18:04

▲ 돈도 절약하고 여행도 하고 싶어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갔다가 착취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pixabay


대학생 백아무개(27·여)씨는 휴학 후 지친 대학 생활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이후 도착한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무급이지만, 일주일 중 2~3일만 일하면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어 경비를 대폭 줄이며 충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백씨는 3일만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와야 했다. "첫날 하루에 모든 업무를 배운다는 명목 하에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했다"며 백씨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객실 청소, 빨래, 식사 준비, 파티 준비 등 어느 하나 스태프가 준비하지 않는 게 없어 도저히 무급의 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강도였다"는 것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제주도 한달살기는 하나의 버킷리스트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인기다. 2017년 방영한 JTBC <효리네 민박>이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끈 이후 제주도 한달살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결과다.

문제는 비용이다. 관광지인 제주도에서 한달을 숙식하며 드는 돈이 만만치 않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를 해결한 방법으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생활을 택한다. 숙박업소의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그러나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생활을 하며 제주 한달살기를 시도했던 젊은이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모집은 '근로자가 아닌 여행자로 숙식을 무료로 제공받는 대신 게스트하우스 일을 조금 도와주는 조건'으로 이뤄진다. 근로조건과 지불 보상의 뚜렷한 기준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채 '계약 아닌 계약' 관계가 시작되다 보니, 스태프를 고용된 사람으로 대하며 고강도 노동은 물론 식사 미제공, 성희롱 사례 등 다양한 유형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취재진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들의 근로 조건을 살펴보기 위해 국내 최대 규모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커뮤니티에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올라온 스태프 모집글 6000여 건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했다.

이 중 500개의 모집글을 분석한 결과, 한 달 기준 근로일이 15일 이상인 게스트하우스는 330곳이었다.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4일 가량을 일해야 하는 구조다. 대다수 스태프는 무급으로 일하며, 일부 게스트하우스는 '여행비 지원'을 명목으로 유급을 제공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A 게스트하우스에서 15일간 무급 스태프로 일했던 박아무개(23)씨는 "한 달 동안 여행자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행보다는 일하다 온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의 무급 노동은 얼마의 가치를 지닌 것일까. C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15일간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에 8시간씩 근무한다. 이들의 노동을 2022년 최저시급인 916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 4일, 8시간씩 근무했을 때 야근수당,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급 185만 원에 이른다.

해당 모집 글을 올린 게스트하우스의 숙박비가 하루 2만 원이니 한 달 숙박비 60만원을 제외해도 125만 원 상당의 일을 더해주는 셈이다. 공고글에 제시된 급여 20만 원과 식비를 감안하더라도 일한 만큼 못 받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매일 밤 새벽까지 일하고 낮에 무슨 제주도 여행을 할까' 의구심도 떨치기 힘들다.
    

▲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모집 글 ⓒ 한림미디어랩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사장이 운영하는 다른 업종의 객장에서 일하는 것이 요구되기도 한다. 지난 2016년 제주도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시작해 현재는 민박집을 운영 중인 이아무개(43·제주시 구좌읍)씨는 "대체적으로 한 달에 15일 일하고 15일 쉬는 체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운영자들이 점점 카페, 펜션, 식당을 같이 운영하며 그쪽 일들을 함께 시키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500개 모집글 중 174개에서 게스트하우스 외 카페나 편의점, 식당 등 사업에 대한 업무 보조를 게스트하우스 무료숙식 제공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모집 글이다. 모자이크 처리된 부분이 식당 이름으로 게스트하우스 이외 식당 업무를 의무조항으로 고지하고 있다. ⓒ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여행자 모임-니 잘못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다 보니 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태프를 멋대로 '나가라'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일종의 '부당해고'인 셈이다. 제주시 구좌읍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를 지냈던 최아무개(32, 여)씨는 "스태프가 숙박 손님에게 수건을 비닐에 싸서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스텝에게 20일만 살고 나가라고 통보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 23조 1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 계약서가 없는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들은 이런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숙식 약속 해놓고 사장 기분 따라 식사 미제공

고강도 노동은 물론 무급으로 일을 하는 대신 받기로 약속한 숙식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버거운 마음에 직장을 그만두고 당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결심한 김아무개(33)씨는 제주도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도망치듯 나와야 했다.

그가 제주도에 가기 전 들었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에서 생활'이라는 사장의 설명과 달리 설거지, 주방 싱크대와 바닥 청소 등이 전혀 안 돼 있는 것은 물론, 수건 등 빨랫거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보다 하루 먼저 제주도에 내려온 스태프도 "여기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 집에서 함께 나왔다.

박씨는 스태프 일을 하다 피부염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피부가 약한 박씨가 이불 담요 등 빨래가 전혀 돼 있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이전 스태프가 쓰던 침대와 이부자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생긴 일이다.
 

▲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스태프 지원했던 김아무개(33)씨가 하루 만에 뛰쳐 나온 게스트하우스의 내부 모습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사장의 설명과 달리, 부엌 침실 욕실 등에 청소와 정돈이 안 된 채 빈그릇, 수건 등이 널브러져 있다. ⓒ 김아무개씨 제공

 

▲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스태프 지원했던 김아무개(33)씨가 하루 만에 뛰쳐 나온 게스트하우스의 내부 모습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사장의 설명과 달리, 부엌 침실 욕실 등에 청소와 정돈이 안 된 채 빈그릇, 수건 등이 널브러져 있다. ⓒ 김아무개씨 제공

 

▲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스태프 지원했던 김아무개(33)씨가 하루 만에 뛰쳐 나온 게스트하우스의 내부 모습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사장의 설명과 달리, 부엌 침실 욕실 등에 청소와 정돈이 안 된 채 빈그릇, 수건 등이 널브러져 있다. ⓒ 김아무개씨 제공

 
잠자리는 물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사장의 기분에 따라, 서빙 업무를 보느라 식사를 건너뛰는 일도 왕왕 생겨났다.

백씨는 "저녁에는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어 챙겨먹지 못했다"며 "술집 종업원처럼 게스트들에게 계속 술을 갖다 줘야 했다. 고기를 굽는 와중에 사장님과 그 지인들이 먹어야 할 술과 고기까지 챙겨야 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그날 결국 스태프들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남은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

최씨는 "사장의 기분에 따라 식사를 주지 않는 날도 많았다"며 "문제는 주변 편의점까지 걸어서 왕복 거의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끼니를 걸러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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