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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도의원' 내세우기, 책임있게 이어가고 싶다"

페미니스트 여성청년의 정치활동 보고서 ⑤ 녹색당 신현정

등록|2022.11.09 15:13 수정|2022.11.15 14:03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청년여성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이에 호응해 ‘페미니스트’를 내세우는 여성청년 정치인들의 도전과 실패도 가늘지만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여성혐오에 기초한 반페미니즘 백리시가 기승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며 출마한 후보들이 50여 명이나 존재했고, 이들 중 절대 다수가 여성청년이었다. 이들 여성청년에게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자신이 하고 있는 그리고 지향하는 정치를 설명하는 핵심 가치이자 키워드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에게 한국정치의 구조와 문화는 페미니즘/성평등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보다는 반대와 배제, 억압의 장이며,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공간이다. 이로 인해 정치를 떠난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들도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는 정치인으로서 최악의 조건이고,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은 이 모두를 갖고 있다. 반대로, 이들은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를 모두 포괄하고 대표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용의 정치가 가능한 사람이다. 이들이 해왔던 하고 있는 정치가 페미니스트 정치를 구성하는 주요내용이 될 수 있다. 이에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금 여러 정당에서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여성청년 정치인 9명을 만나 이들이 생각하는, 만들고 싶은 페미니스트 정치의 내용을 기록해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말]
* 신현정의 정치활동경력 :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녹색당 제주특별자치도비례의원 후보 출마, 제주녹색당 지방선거 선거대책본부 공보담당자, 녹색당 혁신위원회 지역당활성화 소위원회 위원, 제7회 지방선거 제주녹색당 선거대책본부 홍보팀

"저 역시도 여자가 출마하는 그림을 꿈꿨던 것 같다"
 

▲ "페미니스트 도의원 신현정"을 내걸고 2022년 지방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가졌다. ⓒ 신현정


- 대학에 입학한 2017년에 제주녹색당에 가입했다. 어떻게 입당하게 됐나.

"제주의 난개발을 보며 자랐다. 개발이 좋은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게 과연 좋은 걸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후에 난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녹색당까지 닿았다. 오라관광단지가 시민사회의 큰 현안이었는데 녹색당원들이 매주 정당연설회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뜻을 같이 하고 싶어 가입했다."

- 당 가입 이전 고등학생 시기에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활동이었나.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에 여성단체 활동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페미니즘 도서를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선생님들이 하는 여성혐오 발언을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끼리 뒤에서 욕할 것이 아니라 뭐가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친구들과 캠페인을 해보자 했고 제보함을 설치했다. 선생님들의 차별적 발언들을 보여주자는 의미였다. 다음날 바로 제보함이 철거되고 교무실 가서 훈계도 듣고 그랬다. 그러다 <중앙일보> 청소년매체에서 기자님이 기고를 한번 해볼 생각 없느냐해서 과정 전체를 기고했었다."

- 2018년에는 제주녹색당 선거운동을, 2022년에는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나.

"2018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신지예 후보를 당당하게 낸 정당에서 내가 활동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는 고은영이 도지사 후보로 결정되면서 여자가 도지사 선거에 나오는 것을 저도 처음 본 거다. 그래서 선거운동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제주녹색당에서 2018년 도지사 후보를 내고 득표율도 높았는데 2022년에도 가져가야하지 않겠냐 논의가 시작되면서 제가 후보군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출마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았다. 저 역시도 여자가 출마하는 그림을 꿈꿨던 것 같다. '여자가 도의원, 도지사 후보로 나간다. 청년이 대표성을 가진다.'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내가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했다."

- 후보로 출마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주변에서는 놀라기는 했다. 제주에서는 남고를 나오고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해야지 정치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총학생회장은 커녕 단과대 학생회장도 안해봤다. 그런데 도의원을 나간다고 하니 '이런 사람도 나갈 수 있구나'라는 반응이 있었다. 여고 친구들이 연락이 와서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것도 기억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다. 전형적인 권력과 먼 사람이 출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친구들이 통쾌함을 느낀 것 같다."

- '페미니스트 도의원'으로 출마한 것으로 안다. 정치인으로서 유권자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설득하였나.

"지방선거 출마 기자회견 때 '페미니스트 도의원 신현정' 이름을 내걸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를 설명을 하는 순간부터 유권자들이 저의 이야기를 안 듣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엔 생태, 관광 이슈를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하게 되었다. '관광객 줄이는 도의원'도 해보고 '청년 도의원'도 해보고. 이것들을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연결하고 유권자에게 설명하고 싶었으나 어려웠다.

뜨거웠던 어떤 글처럼 지방총각은 결혼을 꿈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방 여성청년은 살아남기 위해 서울로 이주한다. 제주의 산업구조에서 여성이 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다. 여자는 공무원 아니면 교사를 하라고 한다. 여성이 많이 진출하는 직종, 예를 들어 문화콘텐츠 일자리도 지방엔 없다. 거의 관광서비스직으로 가는 거다.

관광객을 줄여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관광객을 줄인다는 것은 현재 관광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는 두려울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페미니스트 타이틀로 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고민이 됐다. 관광 현장 이야기를 듣고자 관광서비스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노조와 간담회를 하면 남성 간부들을 만날 수 있더라. 현장에 있지만 대표되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제가 제주도에서 활동하면서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정치는 뭔지, 성소수자 정치는 뭔지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 2017년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 ⓒ 신현정


- 2018년 지방선거와 비교해 2022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녹색당이 사실 총선 이후에 많이 무너졌다. 후보의 과거 행적이 논란이 되거나 사퇴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녹색당의 페미니스트 정치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당내에 있기도 했다. 정당이 후보를 낼 때 검증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검증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후보 선언을 하면 환영받는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너의 페미니스트 정치는 무엇인지, 너의 성소수자 정치는 무엇인지 묻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일단 환영하고 일단 내보내고. 사람이 없다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컸던 것 같다.

2018년 지방선거는 아예 이질적인 것을 던지는 선거전략이었다. 육지에서 내려온 젊은 여성이 도지사가 되겠다고 등장한 것이 이질적이지만 그 등장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녹색당에 투표한 거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총선에서 고은영이 다시 서울에 올라가 선거운동을, 정치를 한 것을 보며 제주에서 성공해도 성공이 아니고 국회에서 정치를 해야 성공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우리 안에도 있던 것 같다.

2022년 지방선거는 제주도민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마음 하나를 건드리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순정 후보도 그렇고, 이건웅 후보도 그렇고, 저도 그렇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서사를 주목하는 정당은 지금까지 많았지만 여성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토호 세력이나 남성 지역 유지들의 문제들만 문제로 다뤄졌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주 녹색당이 제주의 중년 여성이 겪는 문제, 청년 여성이 겪는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선거 전략 차원에서 본인을 '페미니스트 여성청년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하면서도 늘 고민이다. 지역에서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거나 얼마나 훌륭한 며느리였는지 후보의 남편이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고민은 되지만 이해도 된다.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신현정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누구의 딸, 손녀, 동생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권자에게 호소할 때도 내가 누구의 어머니이고 며느리인 것이 더 쉽기 때문에 그러지 않나 싶다. '괜당 정치'라고 부르는 혈족 중심 정치를 여기선 무시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 후보라면 그런 거 지양해야하는 거 아니야?'라는 물음도 스스로에게 한다. 선거는 폭력적인 공간이다.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페미니스트 세력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강박도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계속 충돌하는 시간을 가졌다."

- 괜당 정치가 과거에 비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여전히 제주에서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18년 고은영 후보는 최초의 여성후보이자 이주민 후보였다. 제주에 많은 이주민이 들어왔고 이주민 후보가 이만큼의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 정치 지형, 괜당 정치 지형이 변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주대학교에만 1만 표가 있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육지 출신 총학생회장이 나온다면 그때 제주의 정치판도가 굉장히 바뀔 것이다. 2019년에 제주대 입학생 비율 중 이주민이 50%를 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남자 고등학교 카르텔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주민의 유입이 지역의 모습, 마을 내부의 문화, 투표의 경향 등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주에서 여성 총학생회장은 나온 적도, 출마한 적도 없다. 페미니스트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스피커의 정체성 하나만으로 균열을 내는 게 아니라 내용으로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정치에 없는 것, 생태와 기후, 차별금지와 평등,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진보정당이 페미니즘 때문에 망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뀐 평가일 뿐"
   

▲ 2022년 제주도의회에 혐오표현방지 조례 제정을 촉구했다 ⓒ 신현정


- 지방선거 기간에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청년 정치'가 급부상했다. 

"지금의 청년정치를 어필하는 방식은 '청년도 정치할 수 있다' 방식 안에서 '우리에게도 기득권이 될 권리를 달라'로 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기득권이 될 권리를 달라가 아니라 '누구나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 미묘한 차이에서 후자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다.

정당에서 청년 정치인을 키울 준비는 안 되니 외부에서 눈에 띠는 청년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청년 정치를 내세운다. 녹색당도 준비가 안됐지만 민주당, 국민의힘도 안되니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런 흐름에 시민단체 사람들조차 동참하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지역구 청년 후보가 선거 끝나고 제주시장 비서실로 들어갔다. 그것을 비판하지 않고 넘어가는 문화를 어떻게 봐야할까, 왜 비판하지 않을까.

신지예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에 들어가면서 한 인터뷰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보수정당에서 왜 페미니즘 할 수 없냐(할 수 있다)'고 답한 것에 동감한다 하더라. 그런데 저는 그게 왜 '간택'되고 편입되는 방식으로 펼쳐져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본인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하기는 어려울까."

- 진보정당이 이제는 다른 선거전략, 다른 정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들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양당 중심의 선거제도도 문제지만, 진보정당도 부족한 점이 있다. 이를테면 지역구에 후보가 한명인데 진보정당 지지후보 타이틀을 붙이는 경우다. 과정을 통해 선출한 후보인 것처럼. 유권자들이 그걸 모를까.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한다'가 아니라, 한 지역의 여러 후보들이 출마해서 검증할 수 있게 어떤 과정들을 거치고 차이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확장해야 한다. 서로 날카롭게 묻고 차이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연대할 수 없을 때는 깨기도 하고 하면서 시도를 해야 나중에 정말로 진보 정당간의 선거연합, 선거연대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 진보정당이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는 평가가 안팎으로 있다.

"진보정당이 페미니즘으로 잘 될 때는 망했다고 하지 않는다. 녹색당에서도 2018년에는 아무도 문제라고 하지 않았는데 2020년 총선이 잘 안되니 페미니즘이 문제라고 한다. 결과에 따라 바뀐 평가일뿐이다.

지역에서는 여성정치인,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정치인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페미니스트 선언이라도 한 정치인이 손에 꼽힌다. 선거 후에 지역당에 페미니즘 모임이 생겼다. 각자의 삶에 페미니스트로서의 경험을 나누며 지역에서 다양한 세대의 페미니즘 경험을 이야기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출발이라면, 나중에는 정말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 앞으로 정치는 계속 할 생각인가.

"'페미니스트 도의원'을 내세웠던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다. 선거 때 미처 못 했던, 관광 문제와 여성의 삶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책임 있게 이어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의 출마 이후 정치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출마하는 젊은 여자가 있어야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구나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출마도 해보고 싶고, 도의회로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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