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책임'... 대통령, 심각성 알고는 있나

[주장] 경찰국 설치, 책임까지 높여... 행안부장관 등 문책은 '막연한 책임 지우기'가 아니다

등록|2022.11.09 11:38 수정|2022.11.09 11:38

▲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두고 간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있다. ⓒ 유성호


이태원 참사로부터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의 근본 원인이 '국가의 부재'에 있었음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사과는 했지만, 국가권력의 잘못과 무책임에 기인한 참사였음을 국민들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 그의 모습은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의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면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는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 대국민담화에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의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라며 "무엇보다 사고 원인의 파악과 유사 사고의 예방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참사 원인 파악에 주력하겠다고 했지만, 참사 6일 뒤인 지난 4일 조계사 위령법회에서 내놓은 메시지에는 국가의 책임에 대한 직접적 시인이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국가와 대통령의 책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10월 29일(토요일) 밤에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형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두루뭉술하게만 언급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비극을 막겠다고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자신과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발생한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참사 뒤, 대통령의 사과는 누구를 향하는가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위령법회에서 합장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사과의 뜻을 전하는 방식도 직접적이지 않다. 국민들을 정면에 놓고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종교 집회에 참석해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종교인도 국민의 일원이지만, 그러나 국민에게 먼저 해야 할 사과를 종교인들 앞에 가서 하는 것은 이치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아 보인다(관련 기사: 윤 대통령 "비통·죄송한 마음"... 공개석상 첫 '죄송' 발언 http://omn.kr/21hgz ).

다음날(5일) 열린 한국교회 이태원 참사 위로 예배에서도 윤 대통령은 비슷한 화법을 구사했다. "무한한 책임감으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저와 정부가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겠다" 등 향후 상황에 대한 자신과 국가의 역할을 밝혔을 뿐이다. 10월 29일 참사의 책임 소재는 언급하지 않았다.

4일 불교, 5일 기독교에 이어 6일 천주교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는 하지 않고 종교 신도들과 성직자들 앞에서 슬픔을 표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뒤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는 굳은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며 경찰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국민들 앞에 보여줬다.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표현도 여러 번 사용했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경찰들을 나무라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기 책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민심의 심각성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참사 열흘이 지나도록 책임자 문책을 하지 않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안부장관 등을 경질하라는 목소리에 대해 7일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강행했던 '경찰국' 설치... 권한뿐 아니라 책임도 높였다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현안질의에 출석해 답변하는 모습. ⓒ 남소연


하지만 참사를 근거로 적어도 행안부장관을 문책하는 것은 결코 막연한 일이 아니다. 이번 참사에 대해 직접적 책임이 있는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다름 아닌 행안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 제34조는 행안부장관의 임무로 지자체 사무, 치안·경찰 사무, 소방 사무 등과 더불어 재난안전 사무 등을 열거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업무들이 이처럼 하나 같이 행안부장관과 연결되기 때문에, 적어도 이상민 장관을 문책하지 않고는 국민 여론에 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장관이 주도한 '행안부 경찰국 설치'는 이번 참사와 이상민을 한층 강하게 묶고 있다. 종전에는 행안부장관이 국가경찰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찰 사무에 관여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일선 경찰과 국민적 반발을 무시하고 강행한 지난 8월 2일의 경찰국 설치 및 경찰청장 지휘규칙 시행으로 인해 행안부장관과 경찰은 한층 긴밀하게 됐다. 8월 2일 조치는 경찰에 대한 행안부장관의 권한만 높이는 게 아니라, 경찰로 인한 행안부장관의 책임까지 함께 높여줬다.

정부조직법과 경찰청장 지휘규칙의 존재는, 적어도 '이상민 행안부장관 문책'만큼은 윤 대통령 막연한 책임 지우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막연하지 않은 일을 막연하다며 회피하는 것은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의 문책 요구를 막연한 책임 지우기로 규정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이번 참사의 책임 소재에 대한 그의 인식을 드러낸다. 행안부장관 등에 대한 문책이 '막연한 책임 지우기'라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은, 이들에게서 구체적 책임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냐는 대통령의 생각을 표출시킨다. 행안부장관에게서 구체적 책임을 발견하기 어렵다면, 행안부장관을 지휘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서도 구체적 책임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책임' 소재는 어디인가... 그 발언에 깔린 견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3개 종교를 순회한 뒤에 나온 7일 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막연한 책임 운운'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7일 이전에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일련의 발언을 했는가를 느끼게 만든다.

그가 대통령인 자신에게도 명확한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7일 이전의 각종 발언에서 국가권력과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명확한 시인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랬기에 7일 회의에서 대통령 자신이 아닌 경찰들을 나무라는 장면을 연출하게 됐으리라 볼 수 있다(관련 기사: 비공개 회의서도 경찰 질타, 윤 대통령 "납득이 안 된다" http://omn.kr/21iot ).

그런데 이번 참사에선 국가권력과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 잘못이 명확히 드러났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권력이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 인과관계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막연한 문책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지금 정부를 향해 쏟아지는 문제제기는 '막연한 문책'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국가시대의 국가권력을 담당하고 있다. 당연히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명령을 받고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민을 대표한다. 국민의 안전이 시스템 미비로 인해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와 고위급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은 막연하지 않고 당연하다. 굳이 현대사회를 들먹이지 않아도 통용되는 상식이다.

이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열흘이 지나도록 자신과 국가권력의 잘못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번 일의 책임 소재에 대해 그가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과 국가권력은 국민들이 당한 변고에 대해 인과관계를 따질 필요 없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하다고 볼 수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