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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명상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행위는 명상으로 보지 않아

등록|2022.11.22 09:46 수정|2022.11.22 10:36
미국에서 출가해서 현재 분당 보라선원에서 명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여러분이 불교하면 아마도 전통 사찰에서 멋진 원목 좌탁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스님을 상상할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중국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차를 마셨는데, 전세계로 차 마시는 문화가 전해지는데 불교의 역할이 컸습니다. 한국과 일본도 불교에 의해서 차 마시는 문화가 발전했다고 합니다.

예부터 중국 선종 전통에서 좌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수행승들은 잠을 떨쳐내기 위해서 차를 마셨습니다.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우아한 옷을 입고, 예법과 격식에 맞춰서 차를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예로 중국의 선원에서 한국의 안거처럼 선칠이란 집중수행을 하는데, 매일 오후 큰 통에 차를 준비해서 좌선하는 스님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거기엔 우아한 다기나 원목좌탁은 없습니다.

사실 이런 전통은 중국 선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백장 선사의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백장 선사는 큰 도량을 세우고 많은 선승을 지도했습니다. 당시 스님들은 함께 생활하면서 농사짓고, 자급자족했는데, 차나무도 직접 재배해서 차를 마셨습니다.

백장선사는 공동체가 효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규율을 제정해서 "백장청규"로 정리했는데, 각종 차를 올리는 방법과 자리 배치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보아도 불교와 차를 마시는 문화는 큰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광륜사에서 주지스님과 차담스님들과 명상가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다. ⓒ 현안스님


좋은 차에는 좋은 영양소가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차를 마시면 몸속 기혈의 순환을 돕습니다. 어떤 차는 효과가 너무 좋아서, 마시자마자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를 마시면서 열감이 느껴져서 땀이 나거나, 기혈이 잘 순환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녹차나 우롱차는 찬 성질이 있습니다. 종일 좌선을 집중적으로 하면 몸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그때는 이런 찬 성질의 차를 마시면 좋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커피를 선호합니다. 커피는 더 강렬하고 빠르게 각성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커피와 설탕은 강렬한 각성 효과를 준 후 기운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무기력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면에 차를 마시면 서서히 잠에서 깨도록 해주면서, 그런 무기력감은 없습니다.

 
명상을 집중적으로 온종일 하는 경우 변비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잘 숙성된 보이차나 신선하고 좋은 녹차를 음용하면 배변에 도움을 줍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명상하는 이들에게 차는 매우 이롭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선을 수행하는 사람 즉 전문적 명상가는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행위를 명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명상하는 이유는 선정의 힘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선정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소리, 맛, 냄새 등을 따라서 밖으로 달려나가는 마음을 단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효과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삼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명상법은 단기적,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겠지만, 여러분이 명상을 진지하게 여기고, 명상으로 더 큰 발전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은 명상에서 원하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그러므로 명상하는 방법으로 차의 향과 맛을 느끼는데 집중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바른 명상이란 명상 주제 즉 호흡, 염불, 화두 등에 마음을 모으고, 다른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가부좌로 앉아서 다리의 불편함과 아픔을 참으세요.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리면서 더 오래 앉는 연습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명상하던 도중 '음... 향기로운 녹차 한잔하고 싶다!', '보이차가 가격이 얼마나 할까?', '기분이 더 좋은 명상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올라오면 그냥 무시하십시오.

명상은 원래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명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갈고 닦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명상할 때에는 열심히 갈고 닦고, 그런 후 즐거운 휴식 시간을 갖고, 차를 음미하세요. 그때 차의 향과 맛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바른 명상법을 배워서 수련한다면, 여러분은 예전보다 차를 훨씬 더 잘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동시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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