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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라'던 중고생 100원 버스, 3년 걸려 만들었죠"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아파트에서 KTX까지... 생활서 의제를 찾다, 최미희 순천시의원

등록|2022.11.15 14:15 수정|2022.11.15 14:15
"농민수당을 만든 사람", "우리를 위해 밥도 굶어준 사람", "배지 없이도 구의원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 동네에서 아이스팩을 모으고, 중고생 100원 버스를 만들고, 은행ATM기 설치 서명을 받으며 당선된 진보당의 지방의원들. 그러나 당선의 기쁨도 잠시, "진보 지방의원은 뭐가 다른데?" 더 큰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배지를 달고 더 바쁘게 뛰고 있는 지방의원들의 분투기를 담습니다.[기자말]

▲ 최미희 의원 ⓒ 신하섭


순천시의회 최미희 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중고생 100원 버스'다. 공보물의 가장 첫 문장도 '중고생 100원 버스 실현한 사람'이었다.

"시민들은 순천을 교육도시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하지만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 비해 여건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제가 순천 교육참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중고생 100원 버스'가 나왔지요."

'중고생 100원 버스'는 교통카드로 100원만 부담하면 지역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나머지 금액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가계 경제를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2019년 신안군에서 최초로 시행한 '청소년 버스요금 무료' 제도가 광양과 고흥 등으로 뻗어나갔지만, '왜 버스요금을 세금으로 내줘야 하느냐'란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생활을 바꾸는 것, 그리고 학생들이 내가 이 지역에서 존중받는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 저는 이런 게 진보정치라고 생각하거든요. 도입하는 과정에서 '안 될 거다, 포기해라'는 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중고생 100원 버스'가 우리 생활을 변화시키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지요."

공감대를 얻기 위해 학생, 학부모와 토론회를 여러 차례 열고 시민들의 지지를 모았다. 이를 힘으로 순천시장과 교육장에게 제도 실현을 약속받았다. 2021년 시행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100원 버스가 실현되고 학생들의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지역 경제 순환에도 기여했지요. 저는 이런 것이 진보정치의 효능감이라고 생각해요. 도로를 만들고 큰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와닿게 시민의 생활을 바꾸는 것이니까요."

세 번 만에 다시 의회로 돌아온 '집념의 진보정치인'

최미희 의원은 2010년 민주노동당 왕조1동 지역구 출신으로 순천시의원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통합진보당, 2018년에는 민중당 후보로 출마해 두 번 낙선했다. 그리고 2022년, 다시 순천시의회로 돌아온 그에게 지역 언론은 '집념의 진보정치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주변에서 낙선했다고 하면 아깝다며 '무소속으로 나오지, 당을 바꿔보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진보정치를 위해 다른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었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주민들께서도 '오로지 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믿음직하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최 의원의 지역구(순천시 바선거구)에서는 세 명의 시의원을 뽑는다. 민주당만 내리 세 명이 당선되던 이곳에서 최 의원은 2등으로 당선됐다. 관내 투표에서는 1등이었다.
 

▲ 최미희 의원은 의정활동을 통해 '생활밀착형 진보'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 순천시의회


'야무지다'는 수식어

최 의원은 목포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전남대를 졸업했다. 이후 '광주보다는 순천에 더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수전자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내고 순천우리여성회의 초대 회장도 맡았다. 순천장애인부모회 초대 회장도 그였다.

"제가 살아온 삶이 그랬어요. 노동자로, 여성으로, 또 장애 부모로 살며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요. 우리 삶 속의 불편함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사회복지 정책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공감 능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시민들은 그에게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아래 입대의) 회장까지 맡겼다.

"제가 의원 안 하고 있을 때 '아까운 사람이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거나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순천에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 시민사회와 함께 활동을 쉬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거라도 시켜보자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회장이 되고 아파트 앞에 새로 공사가 있어서 소음 분진 문제에 대한 간담회와 의견수렴을 2년 동안 52회를 했어요. 하나를 결정해도 간담회를 세 번은 하고, 설득하고 수렴하고. 이런 과정들이 주민들께는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아요."


최 의원은 변화를 만들어 온 과정이 비교적 평화로웠다고 기억한다. 시민들을 만나 설득하고, 기구를 만들고, 서명운동하며 권한이 있는 집행부가 이를 수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현했다. 지난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었지만 그 힘은 컸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최미희에게 '야무지다'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 최미희 의원의 가슴에는 직접 만든 이름표가 달려있다 ⓒ 신하섭


아파트, 어르신, KTX부터 슈퍼마켓까지

선거공보물의 첫 페이지에는 후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담긴다. 최 의원의 첫 장에는 아파트 사진이 들어가 있다. 진보정치인에게는 흔하지 않은 구성이다.

"순천 지역민의 70%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20년 넘은 낡은 곳도 많고, 그러다 보니 개선할 곳이 많지요. 입대의 회장을 하면서 다른 아파트까지 불러 회장단 모임을 꾸렸어요. 그곳에서 논의되었던 내용들입니다."

최 의원의 의정활동은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파트(공동주택) 활성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설유지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관리직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쉼터와 인권 강화 등도 놓치지 않았다.

어르신들에게 미용과 목욕비를 지원하는 '건강 바우처' 사업도 지역의 이발소, 미용실 사장님들과의 모임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어르신들께는 복지를, 지역 상인과도 공생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업이다. 최근 발의한 '전라선 수서행 KTX 운행 촉구 결의안'은 지역민들의 교통 불편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KTX-SRT 통합을 촉구해 철도 공공성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중학교 배정 문제나 어린이집 교사 문제도 최 의원이 바꿔낸 사안들이다. 쏠림으로 인한 교육 불균형과 원도심의 낙후 현상을 해결하고, 보육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며 '생활밀착형 진보'의 모습을 실현했다는 평가다.

"저는 진보정치의 의제는 우리 생활 곳곳에 다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 민주노동당 시절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통해 보편적 교육과 보편적 복지로 가야 한다고 외쳤던 것처럼요. 지금의 진보정치도 마찬가지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곳에 살며 아이들을 교육하는 부모를 위해서 여건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죠."

최 의원은 1호 조례로 동네 슈퍼마켓을 지원하고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안을 준비하고 있다.
 

▲ 최미희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지역의 수많은 주민들이 함께 자리했다. ⓒ 최미희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 끝났다고 해외연수 갈 수 없다"

민주당 일색의 순천시의회에서의 고충은 없을까.

"있었죠. 의원 25명인데 두 명은 진보당(최미희, 유영갑), 두 명은 무소속, 한 명은 국민의힘이고 스무 명이 민주당이에요. 원을 구성할 때 제가 행정자치위원장으로 출마하려고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려고 애를 썼는데, 민주당에서 이미 정해뒀다고 만나주지도 않더라고요. 이런 진영 논리들이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지요.

'여순 10.19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렸을 때도, 관련 특별법이 단순히 한두 의원의 것이 아니라 지역 시민들의 힘을 모아 만든 것임에도 의원들끼리 활동 기한을 줄이고, 인원만 생색내기로 늘리려고 했습니다."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계획되었던 해외 연수를 가장 먼저 취소하자고 한 것도 최 의원이었다.

"애도 기간이 지났으니까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1월 6일부터는 애도 안 할 거냐 물었어요. 의원들이 시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대변해야, 앞으로 다시는 이런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야 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는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안 가게 되었지요.

저는 1인 시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을 때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지나시는 시민분들도 침울하게 보시고. 그런데 오늘은 손을 흔들어주시거나, 클랙슨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애도와 함께 문제 해결을 열망하는 마음이 모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태원 참사 추모 1인 시위를 하는 최미희 의원 ⓒ 최미희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삶

최미희 의원이 생각하는 '생활진보'란 무엇일까.

"생활을 함께하는 것, 그리고 그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 제 삶이 그랬어요. 늘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삶이었습니다. 근데 저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다 그럴 것 같아요. 버스 노선을 바꾸는 것부터 주거 문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전부 다요.

진보정치라고 하지만 주민의 힘으로, 주민과 함께, 그리고 주민에게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주는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주장하면 너희는 이해하고 나와 함께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주민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것, 이게 진보정치가 현재의 생활정치에서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 최 의원은 '집념의 진보정치인'이라는 별명에 '너무 감사하다'며 밝게 웃었다 ⓒ 신하섭

덧붙이는 글 진보당은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 장진숙)를 두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기획은 지방자치위원회 편집팀에서 공동 취재해 기고한 글입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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