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죽을까 걱정... 정부가 국민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줬다
70년만의 최고치 물가 상승에 대처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세심함
▲ 카를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 설치가 한창이다. ⓒ 한소정
오스트리아 빈에도 겨울이 왔다. 지난주 초, 쌀쌀해진 바깥 날씨에 패딩을 꺼내 입었다. 집 근처 카를 광장에선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곧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입김을 불며 글뤼바인을 마실 것이다.
평안하기만 했던 해가 언제 있었을까 싶지만, 올해는 어디나 쉽지가 않았다.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어려웠던 것에 더해 올해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과 인플레이션 문제가 대두됐고,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에너지 문제도 불거졌다.
당장 겨울이 닥쳤으니 에너지 문제는 더 크다. 지난여름 내내 오스트리아 매체들은 이번 겨울 한파를 어떻게 날 것인지 집중 보도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올해 상반기 전기요금 상승률이 1.5%정도로, 이웃 국가들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이지만(유럽통계청 기준, 독일 2.7, 프랑스 7.1, 덴마크 57, 스페인 32.2, 이탈리아 38퍼센트) 전반적인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공급 차질로 동사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였다.
70년만의 최고치 물가상승... 돈주는 정부
▲ 지난 6월 14일 마이클 루드비히 비엔나 시장이 '비엔나 에너지 보너스 22'를 설명하고 있다. 루드비히 시장은 이 지원으로 인해 비엔나 가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비엔나시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미 여러 정책을 시작했다. 가구별로 150유로의 '에너지 쿠폰(Energiegutschein)'을 나눠줘 전기요금 납부를 위해 쓸 수 있게 했고, 지난 9월부터는 이른바 '기후 보너스(Klimabonus)'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본래 기후 위기 대처의 일환으로 오스트리아 정부가 추진했던 세금 개혁과 부속 정책에 속한다. 탄소세를 거두어 그 일부를 기후 위기가 초래한 결과를 오롯이 감당하는 시민들에게 환원한다는 개념이다.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로 시민들의 고통과 위기감이 커지자 이를 돕기 위해 당초 계획보다 많은, 성년 1인당 500유로, 미성년 1인당 250유로를 일괄 지급했다. 9백만 가까운 주민에게 48억 유로 규모의 예산이 쓰였다.
여기서 말하는 주민이란 2022년 중 6개월 이상을 오스트리아에 주거지를 두고 산 사람을 일컫는다. 이미 관세청에 계좌가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계좌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쿠폰의 형태로, 따로 신청 절차 없이 일괄 지급이 되었다. 수령되지 않은 쿠폰이 지급 대상 대비 1퍼센트 수준이라는 보도를 보니, 긴급히 실시된 첫 정책으로는 꽤 순조롭게 시행됐다. 기후 보너스는 앞으로 매년 1회씩 시행될 거라고 한다. 이번 보너스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를 감안해 큰 규모로 이뤄진 거라, 앞으로 예산 규모는 축소되겠지만, 탄소세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세금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 집의 경우, 관세청에 계좌가 등록되어 있던 남편과 아이의 몫은 남편의 계좌로, 그렇지 않았던 나는 쿠폰으로 받았는데, 이 쿠폰은 슈퍼마켓을 포함한 여러 지정된 업체에서 현금처럼 쓰거나 계좌로 이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가까운 우체국 계좌로 이체했는데, 번거롭지 않고 처리도 빨랐다.
시민 살리기 프로젝트는 여러 방향으로 계속되고 있다. 빈 정부도 형편이 더 어려운 가구에 각각 500유로, 200유로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엔나 에너지 보너스 22(Wiener Energiebonus 22)' 등 취약 계층을 더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정부는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회사에 다음 해 봄까지 일반 가구에 요금 미납을 이유로 공급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두텁게 지원을 하면서도, 혹시라도 미납을 하는 상황이 오는 경우 난방이 끊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자세에 대해 감탄이 나올 정도다.
▲ 지난 10월 25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연합 교통통신에너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로버트 하벡 독일 경제기후부 장관(왼쪽)과 레오노어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기후환경부 장관(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유럽의 에너지 장관들은 가스 등 에너지 위기 대책을 논의했다. ⓒ 연합뉴스
물론, 오스트리아 정부도 모든 영역에 지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당장 개별 가정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나도록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라 대학 강의실이나 기업 사무실 등의 난방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때문에 인플레이션과 난방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인 단체들의 반발도 있다. 최근 비엔나 공과대학(Technische Universität Wien) 학생 수 천 명은 "정부가 예산을 확충하지 않으면 강의가 화상으로 전환되고 연구 활동이나 실험 장비 유지 등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이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5일, 과학부 장관은 대학 예산에 1억5천만 유로를 추가 편성한다고 밝혔다.
어려운 겨울을 나면서도 우리 사회가 꾸리고 가야 할 다른 것들을 더불어 보살필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정책들을 보완하고 새로운 방안을 고안하며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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