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설'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2023년부터 폐지되는 대입 '자기소개서' 쓰기를 돌아보며
'자소설'. 사람들이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소설에 빗대어 이르는 말인데, 조롱이 느껴지는 단어다. 나는 이 말이 자소서를 폄하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소 섭섭하기까지 했다. 특히 내가 지도해 온 대학 입학 자소서는 쓰는 사람도, 그것을 읽고 뽑는 사람도 몰랐겠지만 글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자소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2007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후 학생부종합전형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자소서의 비중도 커진 것이다. 대학 교수나 입학사정관들은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왔지만, 1차 합격을 결정하는 서류 중 하나이므로 학생 입장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수시 원서 접수가 9월에 이뤄지기 때문에 여름 방학 즈음은 늘 자소서를 지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자소서 쓰기를 지도해 왔는데 초창기에는 '글쓰기 지도'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의 '첨삭'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자소서 지도 수당을 받지만(처음부터 끝까지 봐주고 한 사람당 8만 원 받는다),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으레 고3 담임이라면, 혹은 국어 교사라면 자신이 담당하는 반 학생들의 자소서를 지도해줘야 하던 시절이었다. 한창 수시 전형의 비율이 높을 때는 20여 명의 자소서를 봐줘야 했고, 담임 추천서도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자소서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20여 개의 추천서도 써야 했다. 그래서 정말 자소서조차도 '첨삭'해야 하는 시기였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 전형이 줄어들어 지도하는 학생 수도 적어져서 지도다운 지도를 해 줄 수가 있다.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바로 학생부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과 다르기도 하고 닮아있기도 하다. 근거가 있어야 해서 무조건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게 다르고, 학생부 한 줄 기록을 몇 줄로 부풀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특히 각 항목마다 '배우고 느낀 점'을 써야 하는데 실제 배우고 느낀 점이 기억나는 학생은 많지 않아서 이 부분은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게 중요한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무척 역설적이어서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첫 줄, 첫 단어 시작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소서의 지도는 학생부를 아주 꼼꼼하게 읽고 쓸 거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학생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기 위해, 어쩌면 지원하는 학과에 맞춰서 기억을 발굴하기 위해 아주 길게 대화한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학교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때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하고 신이 나서 그 당시의 기억을 조잘대기도 한다.
올해 여름, 마지막으로 자소서를 지도한 학생 중 한 명은 종교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 학생은 자기가 3년 동안 조사하고 발표한 내용을 이야기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팀 과제를 수행하며 힘들었던 점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애타게 했던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은 문학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걸 다 기록해 놓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학생부에는 책 제목만 기록될 뿐이라서 비단 대입 전형을 위한 후회만은 아니었다. 그날의 대화는, 나중에도 그 내용을 떠올릴 수 있게 글을 써야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대화들을 통해 학생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 학교 생활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배우고 느낀 점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지만, 학생들의 잠재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그냥 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으면 자소서 쓰기의 절반 이상이 끝난 것이다. 이제는 대화한 걸 쓰기만 하면 된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학생의 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읽기 힘들 정도로 문맥이 안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소서를 그저 '자소설'이라고 하는 건 다소 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렇게 자소서에 대해 쭉 쓰다 보니 제대로 지도했다면 혹은 입시가 아니었다면 자소서기 지도가 더 뜻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제목은 '첨삭의 역사'라고 지었었는데 제목도 바꿨다.
사실 내년부터 대학 입학에서 자기소개서가 아예 사라진다. 수시 전형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학생들과 교사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자소서 쓰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사교육에 의지하게 된다는 논란도 쭉 있어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그동안 해왔던 자소서 지도가 그냥 첨삭이 아니었다는 깨달음도 생겼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학생들과 다양한 독서 모임을 해 왔다. 원하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읽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하는 모임이다. 보통 5명 정도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서로 인상 깊은 구절을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책 읽기 모임은 학생들의 시선을 배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것을 찾느라 더 꼼꼼히 책을 공부하다 보면 또 많이 배운다.
이외에도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정말 좋은 책들, 좋은 저자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다양한 행사를 연다. 르포 작가 은유도 와 주시고, 최영미 시인도 와 주셨다. 우리 학생들은 참 복이 많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수시 전형이 줄어들어 학생부 기록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학생들의 참여율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참여하는 단 몇 명의 학생들이 있어서 정말 재미가 넘치는 일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해 본 적이 없다. 글쓰기 선생님을 모셔서 진행한 적은 있지만 직접 해 본 적이 없다. 자소서가 사라진 지금,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대학 입시를 위한다는 명목은 빼고, 소규모라도 아이들을 모아서, 자소서처럼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웃고 울게 해 주자. 그러면 나의 첨삭의 역사는 글쓰기 지도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자소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2007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후 학생부종합전형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자소서의 비중도 커진 것이다. 대학 교수나 입학사정관들은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왔지만, 1차 합격을 결정하는 서류 중 하나이므로 학생 입장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수시 원서 접수가 9월에 이뤄지기 때문에 여름 방학 즈음은 늘 자소서를 지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자소서 쓰기를 지도해 왔는데 초창기에는 '글쓰기 지도'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의 '첨삭' 수준이었다.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바로 학생부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과 다르기도 하고 닮아있기도 하다. 근거가 있어야 해서 무조건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게 다르고, 학생부 한 줄 기록을 몇 줄로 부풀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특히 각 항목마다 '배우고 느낀 점'을 써야 하는데 실제 배우고 느낀 점이 기억나는 학생은 많지 않아서 이 부분은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게 중요한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무척 역설적이어서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첫 줄, 첫 단어 시작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소서의 지도는 학생부를 아주 꼼꼼하게 읽고 쓸 거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학생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기 위해, 어쩌면 지원하는 학과에 맞춰서 기억을 발굴하기 위해 아주 길게 대화한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학교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때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하고 신이 나서 그 당시의 기억을 조잘대기도 한다.
▲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 픽사베이
올해 여름, 마지막으로 자소서를 지도한 학생 중 한 명은 종교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 학생은 자기가 3년 동안 조사하고 발표한 내용을 이야기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팀 과제를 수행하며 힘들었던 점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애타게 했던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은 문학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걸 다 기록해 놓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학생부에는 책 제목만 기록될 뿐이라서 비단 대입 전형을 위한 후회만은 아니었다. 그날의 대화는, 나중에도 그 내용을 떠올릴 수 있게 글을 써야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대화들을 통해 학생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 학교 생활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배우고 느낀 점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지만, 학생들의 잠재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그냥 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으면 자소서 쓰기의 절반 이상이 끝난 것이다. 이제는 대화한 걸 쓰기만 하면 된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학생의 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읽기 힘들 정도로 문맥이 안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소서를 그저 '자소설'이라고 하는 건 다소 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렇게 자소서에 대해 쭉 쓰다 보니 제대로 지도했다면 혹은 입시가 아니었다면 자소서기 지도가 더 뜻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제목은 '첨삭의 역사'라고 지었었는데 제목도 바꿨다.
사실 내년부터 대학 입학에서 자기소개서가 아예 사라진다. 수시 전형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학생들과 교사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자소서 쓰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사교육에 의지하게 된다는 논란도 쭉 있어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그동안 해왔던 자소서 지도가 그냥 첨삭이 아니었다는 깨달음도 생겼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학생들과 다양한 독서 모임을 해 왔다. 원하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읽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하는 모임이다. 보통 5명 정도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서로 인상 깊은 구절을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책 읽기 모임은 학생들의 시선을 배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것을 찾느라 더 꼼꼼히 책을 공부하다 보면 또 많이 배운다.
이외에도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정말 좋은 책들, 좋은 저자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다양한 행사를 연다. 르포 작가 은유도 와 주시고, 최영미 시인도 와 주셨다. 우리 학생들은 참 복이 많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수시 전형이 줄어들어 학생부 기록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학생들의 참여율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참여하는 단 몇 명의 학생들이 있어서 정말 재미가 넘치는 일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해 본 적이 없다. 글쓰기 선생님을 모셔서 진행한 적은 있지만 직접 해 본 적이 없다. 자소서가 사라진 지금,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대학 입시를 위한다는 명목은 빼고, 소규모라도 아이들을 모아서, 자소서처럼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웃고 울게 해 주자. 그러면 나의 첨삭의 역사는 글쓰기 지도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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