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태원 영상 350개' 분석한 WP가 주목한 시간과 장소

108힙합라운지·세계음식거리 특정, 참사 전후 분석...'법 집행기관 하향식 문화' 지적도

등록|2022.11.18 14:07 수정|2022.11.18 14:32

▲ 서울 이태원 참사 원인을 분석한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 워싱턴포스트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압사 참사'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비상 대응 실패로 인한 '구조 지연' 탓이라는 미국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현지시각) 350개 이상의 현장 영상과 사진, 목격자들의 증언, 전문가의 검토 등을 토대로 참사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보도했다.

WP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긴급신고 전화를 바탕으로 10월 29일 오후 6시 28분부터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골목이 "위험할 정도로 혼잡해졌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첫 신고 전화가 오고 몇 분 만에 사람들이 다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경고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오후 10시 8분부터 10시 22분까지 최소 16건의 119 긴급 전화가 더 걸려 왔고, 당시 현장 영상에 따르면 5명의 경찰관이 의식을 잃은 희생자를 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라며 "몇몇 경찰과 다른 사람들이 군중이 유입되는 방향을 바꾸려고 해봤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후 10시 39분이 되어서야 골목의 양쪽 끝을 폐쇄했고, 30분이나 늦게 골목의 출입 통제가 이뤄진 탓에 그때까지 계속 골목으로 보행자가 유입되면서 구조 활동이 방해를 받아 사망자가 늘어나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경찰이 광범위한 대응을 하기까지 11분이 더 지났다"라고 지적했다.

WP는 "이날 사고로 거의 200명이 다쳤고, 지금도 7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라며 "이태원 참사의 사상자 규모가 최근 미국 휴스턴의 야외콘서트(2021년 11월)와 인도네시아 축구 경기장(2022년 10월)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의 사상자를 넘어섰다"라고 전했다.

"이태원 지역 상인들, 참사 며칠 전부터 지하철 우회 요청"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있다. ⓒ 권우성


WP는 "이태원은 핼러윈 주말이면 평소에도 수만 명의 젊은이가 모여드는 곳"이라며 "코로나19 방역 규정이 풀리면서 지역 상인들은 올해 더 많은 인파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오후 10시가 되자 레스토랑과 술집이 모여있는 세계음식거리에서 해밀턴호텔 옆 골목으로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그곳에 있는 108힙합라운지에서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라며 "오후 10시 8분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일부는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의 압박을 호소했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10시 17분 세계음식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골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밀려들어 왔다"라며 "한 남성은 군중에서 탈출하기 위해 해밀턴호텔 뒤쪽에 있는 표지판을 타고 올라가려고도 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은 사람들 일부가 서로 밀치다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위로 다른 사람들이 쓰러졌다고 말했다"라며 "이것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도미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WP는 한국 언론을 인용해 "지역 상인들은 참사 며칠 전부터 이태원역에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해 핼러윈 주말 동안 지하철 열차가 이태원역을 우회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서울교통공사는 공식적인 요청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라며 "전문가들은 골목에서 가장 가까운 (이태원역) 출구를 폐쇄했다면 당시 혼잡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라고 덧붙였다.

"너무 늦게 도착한 구조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WP는 "전문가들은 따르면 군중 밀집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을 빨리 꺼내 압력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골목 양쪽 끝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그러나 현장 영상에 따르면 구조대원들이 이를 하는데도 26분~31분이 걸렸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후 10시 22분 사람들은 이미 골목의 가장 혼잡한 지점에 서로 겹쳐 있었다"라며 "현장에 있던 5명의 경찰관은 군중의 무게로 인해 사람들을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와중에도 세계음식거리에서는 인파가 계속 유입되면서 혼잡을 가중시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에 있던 김백겸 이태원파출소 경사는 사고 지점에서 비명을 듣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며 "그가 확성기를 들고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뒤로 물러나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라고 전했다.

WP는 "이태원의 교통 체증 탓에 구급차와 지원 인력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라며 "결국 구조대원들은 차량에서 내려 걸어서 이동했고, 영상을 보면 오후 10시 34분까지도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오후 11시 22분이 되어서야 구조대원들이 골목에서 부상자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을 끌어내고 이태원로와 인접 지역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라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경찰은 사고 이전과 전개 당시의 대응이 모두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수사를 받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분명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 작년과 달랐던 이태원
 

마스크 벗는 류미진 총경'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전 인사교육과장(총경)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왼쪽은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 남소연


WP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이번 참사는 완전히 예방할 수 있었다(completely preventable)"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2021년 핼러윈 주말에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투입된 경찰의 엄격한 통제 속에 사람들이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질서 있게 이동했다"라고 "하지만 3년 만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올해 핼러윈 주말에는 그런 예방 계획이 없었고, 대신 경찰은 성범죄나 마약 사용을 단속하기 위해 137명의 인력을 투입했다"라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영욱 세종대 교수는 "한국의 경찰 당국은 수만 명이 모이는 잦은 시위와 군사 정권의 역사로 인해 군중 통제 및 감시를 위해 철저한 훈련을 받는다"라며 이번 참사에 대응이 미흡했다고 꼬집었다.

영국 노섬브리아대학의 군중 전문가인 마틴 아모스 교수도 "이태원 참사 같은 압사 사고는 일단 벌어지면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며 "당국의 최우선 목표는 처음부터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이태원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은 한국의 법 집행 기관의 하향식 문화를 보여준다"라며 "한국의 일선 공무원은 법률이나 규정에 있지 않는 한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사건에 대비하거나, 매뉴얼에 없는 예방 계획을 제안할 요인이 없다(no incentive)"라고 비판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