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엄마가 필요해요" 아들의 '공개 구혼'이 이어준 사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톰 행크스-맥 라이언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지금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볼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라디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과 날씨, 생활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을 많이 하고, 잠이 쏟아지는 오후에는 경쾌한 분위기의 방송들을 많이 편성한다. 청소년 청취자가 많은 밤 시간대에는 아이돌 스타들을 초대손님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 많이 진행된다.
라디오의 생리가 많이 변하고 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를 풍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청취자들의 사연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엽서나 편지, 전화에 의존하던 라디오 사연들은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을 거쳐 2000년대부터는 문자와 인터넷으로 점점 편리하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진솔하고 재미 있는 사연들이 전국의 많은 청취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 라디오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라디오에서는 하루에도 수 많은 사연들이 소개돼 전파를 타는데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거나 하나의 사연이 특정 개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때도 있다. 지난 1993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 노라 에프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라디오 사연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두 주인공의 사랑이 운명처럼 이뤄지는 과정을 담은 로맨스 영화다.
기자에서 작가, 감독으로 변신한 노라 에프론
시나리오 작가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에프론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뉴욕 포스트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면서 부모님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쓰던 부모님의 피를 물려 받은 에프론 감독은 여러 잡지사의 편집장을 거치며 시나리오를 써오다가 1983년 엘리스 알렌 작가와 함께 영화 <메릴 스트립의 실크우드>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면서 작가로 공식 데뷔했다.
1986년에도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 제프 다니엘스가 출연한 <제2의 연인> 각본을 쓴 에프론 감독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영화는 바로 1989년 신인배우 맥 라이언을 스타로 만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였다. 에프론 감독이 각본을 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북미에서만 9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고 에프론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주목 받는 작가로 급부상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89년 다이앤 위스트 주연의 <마피아>,1990년 조앤 쿠삭이 출연한 <나의 푸른 하늘>의 각본을 쓰며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에프론 감독은 1993년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배우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캐스팅해 연출에 도전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2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세계적으로 2억 2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기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다시 감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에프론 감독은 1996년 존 트라볼타 주연의 <마이클>을 연출해 1억 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1998년에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다시 한 번 캐스팅해 만든 <유브 갓 메일>을 통해 세계적으로 2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1990년 <볼케이노>를 함께 찍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유브 갓 메일>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2005년 니콜 키드먼과 윌 페렐 주연의 <그녀는 요술쟁이>를 연출한 에프론 감독은 2009년 메릴 스트립과 23년 만에 재회한 <줄리&줄리아>로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에프론 감독의 세 번째 대표작이 된 <줄리&줄리아>는 그녀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에프론 감독은 지난 2012년 6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인한 폐렴으로 7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실패 모르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조합
톰 행크스는 1994년 <포레스트 검프>부터 2002년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 10편 연속 북미 흥행 1억 달러 기록을 가진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였다. 온갖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던 톰 행크스지만 정작 정상적인 멜로영화의 남자주인공을 연기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톰 행크스의 커리어에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평범한(?) 멜로영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된 이유다.
맥 라이언에게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1990년대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었다. 맥 라이언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후 1994년 <남자가 사랑할 때>와 1995년<프렌치 키스>, 1998년 <시티 오브 엔젤> <유브 갓 메일>에 차례로 출연하며 1990년대 최고의 로맨스 배우로 군림했다. 당시 맥 라이언은 그녀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쟁드라마 <커리지 언더 파이어>마저 세계흥행 1억 달러로 이끌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 샘(톰 행크스 분)은 부인과 사별 후 시애틀로 이사 왔지만 여주인공 애니(맥 라이언 분)는 볼티모어에 살고 하이라이트 장면이 된 두 사람의 만남은 뉴욕에서 이뤄졌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원제는 < Sleepless in Seattle >로 직역하면 '시애틀에서 잠 못 자는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국내 수입 과정에서 감성적으로 제목을 바꿨고 이는 서울관객 23만 흥행으로 연결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두 사람의 실질적인 첫 만남이 이뤄지는 엔딩 장면은 실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촬영됐다. 뉴욕의 야경을 배경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하트가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를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50편 이상의 영화 음악을 맡아 5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마크 샤이먼이 맡은 감미로운 음악 역시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다. 특히 셀린 디옹이 부른 'When I Fall in Love'는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애니는 고전영화 마니아로 나오는데 매일 밤 자기 전에 친구와 함께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영화는 바로 1957년 캐리 그렌트와 데보라 카가 주연을 맡은 <러브 어페어>였다(멜로영화의 고전 <러브어페어>는 1994년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다). 두 주인공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한 영화의 내용 때문에 애니가 더욱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아쉽게 일찍 활동 접은 천재 아역배우
맥 라이언의 사랑스러운 연기와 로맨스 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의 진행 때문에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애니는 굉장히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엄연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음에도 저 멀리 시애틀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라디오 사연에 공감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망설이고 그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약혼자 몰래 시애틀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의 약혼자 월터는 끝까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애니의 선택을 존중해주며 애니를 보내줬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애니의 멋진 약혼자 월터를 연기한 빌 풀만은 1996년 최고흥행작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과 싸우러 가는 군인들에게 멋진 연설을 했던 미국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배우로 유명하다. 지난 2020년에는 음악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에도 출연했다.
사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샘의 아들 조나에 의해 이뤄졌다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시애틀로 이사온 후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아빠를 위해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 새 엄마가 필요하다고 '공개구혼'을 했고 아빠 대신 애니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마지막에도 조나가 가방을 전망대에 두고 오지 않았다면 샘과 애니의 극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할리우드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일찌감치 활동을 접으며 대중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샘의 아들 조나를 연기했던 로스 맬링거도 마찬가지였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통해 MTV영화제 주목할 만한 신인 후보에 올랐던 맬링거는 1998년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 일찍 활동을 접었다.
라디오의 생리가 많이 변하고 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라디오를 풍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청취자들의 사연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엽서나 편지, 전화에 의존하던 라디오 사연들은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을 거쳐 2000년대부터는 문자와 인터넷으로 점점 편리하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진솔하고 재미 있는 사연들이 전국의 많은 청취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 라디오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잔잔한 스토리에도 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주)디스테이션
기자에서 작가, 감독으로 변신한 노라 에프론
시나리오 작가였던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에프론 감독은 대학 졸업 후 뉴욕 포스트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면서 부모님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쓰던 부모님의 피를 물려 받은 에프론 감독은 여러 잡지사의 편집장을 거치며 시나리오를 써오다가 1983년 엘리스 알렌 작가와 함께 영화 <메릴 스트립의 실크우드>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면서 작가로 공식 데뷔했다.
1986년에도 메릴 스트립과 잭 니콜슨, 제프 다니엘스가 출연한 <제2의 연인> 각본을 쓴 에프론 감독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영화는 바로 1989년 신인배우 맥 라이언을 스타로 만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였다. 에프론 감독이 각본을 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북미에서만 9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고 에프론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주목 받는 작가로 급부상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89년 다이앤 위스트 주연의 <마피아>,1990년 조앤 쿠삭이 출연한 <나의 푸른 하늘>의 각본을 쓰며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에프론 감독은 1993년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배우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캐스팅해 연출에 도전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2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세계적으로 2억 2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기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다시 감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에프론 감독은 1996년 존 트라볼타 주연의 <마이클>을 연출해 1억 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1998년에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다시 한 번 캐스팅해 만든 <유브 갓 메일>을 통해 세계적으로 2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1990년 <볼케이노>를 함께 찍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은 <유브 갓 메일>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2005년 니콜 키드먼과 윌 페렐 주연의 <그녀는 요술쟁이>를 연출한 에프론 감독은 2009년 메릴 스트립과 23년 만에 재회한 <줄리&줄리아>로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에프론 감독의 세 번째 대표작이 된 <줄리&줄리아>는 그녀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에프론 감독은 지난 2012년 6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인한 폐렴으로 7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실패 모르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조합
▲ 샘(오른쪽)과 애니는 조나가 전망대에 가방을 두고 온 덕분에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 (주)디스테이션
톰 행크스는 1994년 <포레스트 검프>부터 2002년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 10편 연속 북미 흥행 1억 달러 기록을 가진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였다. 온갖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던 톰 행크스지만 정작 정상적인 멜로영화의 남자주인공을 연기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톰 행크스의 커리어에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평범한(?) 멜로영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 된 이유다.
맥 라이언에게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1990년대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었다. 맥 라이언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후 1994년 <남자가 사랑할 때>와 1995년<프렌치 키스>, 1998년 <시티 오브 엔젤> <유브 갓 메일>에 차례로 출연하며 1990년대 최고의 로맨스 배우로 군림했다. 당시 맥 라이언은 그녀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쟁드라마 <커리지 언더 파이어>마저 세계흥행 1억 달러로 이끌었다.
사실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 샘(톰 행크스 분)은 부인과 사별 후 시애틀로 이사 왔지만 여주인공 애니(맥 라이언 분)는 볼티모어에 살고 하이라이트 장면이 된 두 사람의 만남은 뉴욕에서 이뤄졌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원제는 < Sleepless in Seattle >로 직역하면 '시애틀에서 잠 못 자는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국내 수입 과정에서 감성적으로 제목을 바꿨고 이는 서울관객 23만 흥행으로 연결됐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두 사람의 실질적인 첫 만남이 이뤄지는 엔딩 장면은 실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촬영됐다. 뉴욕의 야경을 배경으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하트가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를 상징하는 명장면이 됐다. 50편 이상의 영화 음악을 맡아 5번이나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마크 샤이먼이 맡은 감미로운 음악 역시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다. 특히 셀린 디옹이 부른 'When I Fall in Love'는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애니는 고전영화 마니아로 나오는데 매일 밤 자기 전에 친구와 함께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영화는 바로 1957년 캐리 그렌트와 데보라 카가 주연을 맡은 <러브 어페어>였다(멜로영화의 고전 <러브어페어>는 1994년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다). 두 주인공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한 영화의 내용 때문에 애니가 더욱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아쉽게 일찍 활동 접은 천재 아역배우
▲ 샘의 아들 조나 역의 아역배우 로스 맬링거는 1998년 <톰 소여의 모험>을 끝으로 공식활동을 접었다. ⓒ (주)디스테이션
맥 라이언의 사랑스러운 연기와 로맨스 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의 진행 때문에 크게 부각되진 않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애니는 굉장히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엄연히 자신을 사랑해주고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음에도 저 멀리 시애틀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라디오 사연에 공감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망설이고 그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약혼자 몰래 시애틀까지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의 약혼자 월터는 끝까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애니의 선택을 존중해주며 애니를 보내줬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애니의 멋진 약혼자 월터를 연기한 빌 풀만은 1996년 최고흥행작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과 싸우러 가는 군인들에게 멋진 연설을 했던 미국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배우로 유명하다. 지난 2020년에는 음악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에도 출연했다.
사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샘의 아들 조나에 의해 이뤄졌다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시애틀로 이사온 후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아빠를 위해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 새 엄마가 필요하다고 '공개구혼'을 했고 아빠 대신 애니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마지막에도 조나가 가방을 전망대에 두고 오지 않았다면 샘과 애니의 극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할리우드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일찌감치 활동을 접으며 대중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샘의 아들 조나를 연기했던 로스 맬링거도 마찬가지였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통해 MTV영화제 주목할 만한 신인 후보에 올랐던 맬링거는 1998년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 일찍 활동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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