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딱딱 책임론', 동의할 수 없다
[주장] 참사 원인 '보고공백', 왜 생겼나... 국정조사로 구조적 원인 찾아야
▲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안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 ⓒ 오마이뉴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열린 어느 세미나에서 '세월호 작가기록단'으로 재판과 청문회를 방청하며 느낀 것을 발표했다. 나는 그즈음 사회학에 유행하던 'OO사회'라는 개념을 가져와 참사 당시 상황에 '보고(報告)사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월호 선원과 해경은 승객을 구조하기보다 자기들 '윗선'인 해운사와 해경 지휘부에 보고하기 바빴다. 윗선은 빨리 보고하라고 현장 직원을 채근했다. 심지어 청와대도 "VIP에게 보고해야 하니 다른 일보다 먼저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경비정장에게 요구했다. 법정에 선 선원과 해경은 '상황을 위에 보고했으니 내 책임은 다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상부 역시 더 높은 상부에 다시 보고할 뿐 보고받은 정보를 이용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지 않았다. '보고사회'는 보고를 원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기괴한 현상에 붙인 이름이었다.
10.29 이태원 참사에 이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도 보고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그 양상은 반대다. 이번에는 보고가 아예 사라졌다. 적시에 보고받고 행동했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은 보고체계에서 누락됐다. 이름 붙이자면 이것은 '보고공백사회'다.
사고가 접수된 밤 10시 15분을 기준으로, 관할 용산서장은 11시가 넘어 사태를 인지했다. 서울경찰청장은 11시 36분에 용산서장에게 전화로 보고받고 상황을 알았다. 서울경찰청 112 상황관리관은 당직실을 비웠다가 서울경찰청장보다 늦게 보고받았다. 지방에 있던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전달된 건 자정이 넘어서다.
행정안전부장관은 11시 20분에 보고받았고, 이는 국정상황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11시 1분보다 한참 뒤다. 용산구청장은 내부 보고가 아니라 상인의 문자를 받고서 상황을 인지했다. 이 사이 희생자들은 1시간 이상 골목에 끼어 서서히 죽어갔다.
▲ 핼러윈 인명사고 긴급상황점검회의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긴급상황점검회의에서 보고 받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보고공백이 벌어진 결과는 컨트롤타워 부재였다. 컨트롤타워는 현장에 간 구조 세력들이 협동할 수 있도록 기관 간 공조를 지원해줘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소방·경찰·의료·지자체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골든타임을 날려버렸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어야 할 기관장과 고위 공직자들은 너무 늦게 보고받아 적절한 조치를 못 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그 보고체계를 만들고 관리하는 책임은 그 공직자들에게 있다. 현장에서 고투하다 과실을 저지른 직원과 하급 기관장이 책임을 덮어쓰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방기한 고위 공직자들은 보고공백을 이유로 책임을 피해도 될까?
그런데 왜 이런 보고공백이 벌어졌나? 한 가지 이유는 비싼 돈을 들여 갖춘 정부 재난안전통신망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현장과 상부의 거리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보고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 고위 간부들이 현장 보고를 받고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는데, 아예 보고를 안 받으면 책임도 과연 사라질까?
'보고사회'와 '보고공백사회'는 둘 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만 후자는 더 심각하다. 고위 공직자들이 책임을 회피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되돌려 말하면 이 보고공백이 책임 회피의 이유가 돼선 안 된다. 보고공백을 방치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공백이 발생한 구조적 원인까지 찾아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행안부가 경찰국을 만들며 경찰 조직 통제를 강화하려 한 것이 구조적 원인은 아닐지 하는 의문도 풀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 구조적 원인도 찾아야
▲ 이태원 참사를 수사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1층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 서울상황센터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한국의 재난조사는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검경이 빠르게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검·경은 빠른 수사로 진상조사를 마치고 형사 처벌할 책임자를 가려내는데, 여기에는 사태의 책임이 정부와 기업의 상층부로 번지지 않도록 조기 진화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재난조사는 수사와 조사를 분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조사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원인까지 찾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 후 구성된 나사(NASA) 조사위원회는 기술적 문제와 나사 운영진의 관행을 지적하는 한편 백악관과 의회의 최고위 정책결정자들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들이 "자신들 결정의 역할을 인식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유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 의회가 주도해 만든 9.11 조사위원회는 조사에 소극적인 행정부와 힘겨루기에서 이겨 조지 부시 대통령의 비공개 증언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공개 증언을 끌어냈다. 9.11 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며 서문에 "(조사의) 목표는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교훈을 얻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후 정부·국회·민간차원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국회사고조사위원회가 가장 권위 있는 성과를 냈다.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지역 주민 1명과 전문가를 위원으로 포함해 7개월간 활동하면서 간 나오토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 등 정부와 기업의 최상위 책임자의 공개 증언을 받아냈다. 국회조사위원회는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규제포획'을 짚었는데, 규제 당국이 규제 받아야 할 기업에게 포획돼버려 기업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뜻한다. 위원회는 규제포획으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붕괴되었고, 사전 대책을 세울 여러 차례 기회도 날렸다고 지적했다. 또 이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사람만 교체한다고 사고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해외 재난조사 사례는 대형재난 진상조사에서 놓치면 안 될 관점을 알려준다. 대형재난에는 구조적 요인들이 있으며,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밝혀야 책임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근본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참사의 직접 원인에만 집중해 현장 인력과 중간 관리자의 과실을 문책하는 것을 넘어, 어째서 예상할 수 있는 인파사고를 정부와 지자체가 전혀 대비하지 못했는지, 어째서 보고공백이 발생하고 국가 재난대응체계가 그리 허술했는지 구조적 원인까지 밝혀야 한다.
그러려면 검·경 수사에 종속된 진상조사 방식으론 어렵다. 경찰의 셀프 수사, 단선적 인과관계만 묻는 사법적 조사는 한계가 있다.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면 초당파적으로 위원을 구성해 추진하는 국회 국정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책임이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의 관점은 책임을 현장 대처 실패라는 직접 원인과 사법적 책임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재난의 구조적 성격을 가릴 뿐 아니라, 그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결정권자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윤 대통령의 태도에 힘입어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망언을 일삼고, 국무총리는 참사를 빗대 농담하고, 대통령실 수석들은 사적 대화라고 주장하지만 국정감사장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을 나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책임에서 면제하는 '딱딱 책임론'에 동의할 수 없다. 반대로 모든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이 져야 한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보고공백으로 상징되는 재난대응체계 실패에 어떤 구조적 원인이 있는지 밝히고, 정부 조직문화와 시스템의 관행과 결함을 총체적으로 살펴 대책을 마련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러려면 정부 고위층도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는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윤 대통령에게 요청한다. 사법적 수사로 말단 공무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을 그만두고, 국정조사를 수용해 온전한 진상규명을 실시하라.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모두 조사를 받겠다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도 조사받겠다고 나서라.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통치권자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당 공동대표입니다. 이 글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박상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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