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도 권리가 있다?
류변의 급진적 책 읽기 21회 <세상의 모든 권리 이야기 / 윌리엄 F. 슐츠 외 지음>
"또 권리 이야기야? 누가 변호사 아니랄까 봐 권리 되게 좋아하네." 어디선가 이런 불평이 들리는 듯하다. 이 시리즈 중 직접적으로 인권·권리를 다룬 것만 해도 이미 네 편이다
[관련기사]
-당신, 혹시 기후문맹이 아닌가요 http://omn.kr/1x2iz
-동물은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생각, 정말 당연할까 http://omn.kr/1xhgh
-강과 호수가 직접 법정에 설 수 있다면 http://omn.kr/1xr5b
-모든 존재의 존엄, 지구법학을 아시나요?http://omn.kr/21jqj
필자가 소개한 위의 책들은 기후-생태위기가 인권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모든 존재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공존의 시대를 열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세상의 모든 권리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관점에서 권리를 이야기한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시작으로 인권의 세기를 열었고 인권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테러·고문·언론 탄압과 같은 고전적 인권의 침해는 물론 기아·빈곤·소수자 혐오와 차별과 같은 구조적 인권 침해도 여전하다. 인권이 확고부동한 공존의 원리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인권에 대한 식자들의 회의와 무용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인권전문가인 저자들은 풀뿌리 인권 운동을 애써 외면하려는 염세주의적인 학계의 관점에 단호히 반대하며 인권의 가치를 옹호한다. 왜 권리가 중요한가? 저자들은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여정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저자들은 마사 누스바움이 정의한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한다. 누스바움의 '역량'이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의미한다.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삶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자유의 영역'을 보호해 주는 사회다. 신의 뜻이나 인간 이성에 의해 권리가 자명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공동의 선(善), '좋은 사회'의 구성 요건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바탕으로 권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는 인간 존엄성(비인간동물에게 적용할 때는 동물의 번성)을 향상하기 위한 조건과 좋은 사회에 대한 정의에 근거해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기 위한 거래적인 요구로 정의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반응하고 변화하는 역동성을 갖는다.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해 구성된다는 사실과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과정을 통해 점진적, 누적적으로 발전해왔음을 감안하면, 동물과 자연 심지어 로봇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다만 이 책에서 한 장씩 다루고 있는 동물권과 자연의 권리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위의 졸고를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로봇의 권리는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닐까? 하지만 저자들은 프로그래머나 운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리는 로봇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로봇 권리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한다.
물론 로봇이 사람처럼 자율성이 있다면 권리를 부여하고 자율적 결정에 대한 책임도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현재 로봇의 결정이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설정한 알고리즘에 따른 결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저자들의 주장은 다소 비약인 듯하다.
보다 시급한 것은 인간의 인종적·젠더적·비장애인중심적 편향이 AI에게 학습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와 로봇의 결정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윤리적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런 최첨단의 이슈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통상 인권 의제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부패를 주제로 한 장을 할애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제한하고 그 결과 존엄한 삶을 살 기회마저 빼앗고, 인권 증진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역량을 갉아먹으며, 약자의 희생 위에 강자를 배를 불린다는 점에서 인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따라서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살 권리를 새로운 권리로 인정해야만 반부패 운동에 강력한 호소력이 생기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존엄성과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젠더 권리와 장애인 권리의 발전 등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실제 또는 가상의 사례를 들어 권리가 어떻게 확장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하는지 보여주며, 좋은 사회를 위해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 질문한다.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롭기를 원하고, 모두의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받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결합해 풍부한 이론과 사례를 담은 이 책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관련기사]
-당신, 혹시 기후문맹이 아닌가요 http://omn.kr/1x2iz
-동물은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생각, 정말 당연할까 http://omn.kr/1xhgh
-강과 호수가 직접 법정에 설 수 있다면 http://omn.kr/1xr5b
-모든 존재의 존엄, 지구법학을 아시나요?http://omn.kr/21jqj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시작으로 인권의 세기를 열었고 인권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테러·고문·언론 탄압과 같은 고전적 인권의 침해는 물론 기아·빈곤·소수자 혐오와 차별과 같은 구조적 인권 침해도 여전하다. 인권이 확고부동한 공존의 원리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인권에 대한 식자들의 회의와 무용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인권전문가인 저자들은 풀뿌리 인권 운동을 애써 외면하려는 염세주의적인 학계의 관점에 단호히 반대하며 인권의 가치를 옹호한다. 왜 권리가 중요한가? 저자들은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여정에서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저자들은 마사 누스바움이 정의한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한다. 누스바움의 '역량'이란 한 사람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인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을 의미한다.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란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삶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자유의 영역'을 보호해 주는 사회다. 신의 뜻이나 인간 이성에 의해 권리가 자명하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공동의 선(善), '좋은 사회'의 구성 요건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바탕으로 권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는 인간 존엄성(비인간동물에게 적용할 때는 동물의 번성)을 향상하기 위한 조건과 좋은 사회에 대한 정의에 근거해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기 위한 거래적인 요구로 정의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반응하고 변화하는 역동성을 갖는다.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해 구성된다는 사실과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과정을 통해 점진적, 누적적으로 발전해왔음을 감안하면, 동물과 자연 심지어 로봇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다만 이 책에서 한 장씩 다루고 있는 동물권과 자연의 권리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위의 졸고를 참조해 주시기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로봇의 권리는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닐까? 하지만 저자들은 프로그래머나 운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리는 로봇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로봇 권리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한다.
물론 로봇이 사람처럼 자율성이 있다면 권리를 부여하고 자율적 결정에 대한 책임도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현재 로봇의 결정이 인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설정한 알고리즘에 따른 결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저자들의 주장은 다소 비약인 듯하다.
▲ <세상의 모든 권리 이야기>책 표지 ⓒ 시공사
보다 시급한 것은 인간의 인종적·젠더적·비장애인중심적 편향이 AI에게 학습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와 로봇의 결정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윤리적 알고리즘을 어떻게 설계하고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런 최첨단의 이슈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통상 인권 의제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부패를 주제로 한 장을 할애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부패는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제한하고 그 결과 존엄한 삶을 살 기회마저 빼앗고, 인권 증진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역량을 갉아먹으며, 약자의 희생 위에 강자를 배를 불린다는 점에서 인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따라서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살 권리를 새로운 권리로 인정해야만 반부패 운동에 강력한 호소력이 생기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존엄성과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젠더 권리와 장애인 권리의 발전 등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실제 또는 가상의 사례를 들어 권리가 어떻게 확장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권리가 좋은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하는지 보여주며, 좋은 사회를 위해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 질문한다.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롭기를 원하고, 모두의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받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결합해 풍부한 이론과 사례를 담은 이 책이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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