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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남았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몽골의 '티로드'

[동몽골여행 10] 몽골 야생양과 야생염소를 보호하는 '처이르 복드' 산

등록|2022.11.29 09:24 수정|2022.11.29 09:46

▲ 처이르복드 산 입구에 세워진 아르갈 상 모습. 처이르복드 산에는 야생양인 아르갈과 야생염소인 양기르가 살고 있어 몽골정부에서 보호하고 있다. ⓒ 오문수


10여일간의 동몽골여행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로 귀환하는 길에 잠시 점심을 해먹기 위해 들른 곳은 '처이르복드' 산 근처. 그동안 험난한 여정과 외국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오지의 유목민 게르에서 이틀을 지내며 행복했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잠시 멈췄는데 뜻하지 않은 장면을 만났다.

몽골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몽골에서 초원과 가축만 보고 온 사람은 "몽골에 뭘 볼 게 있어서 가느냐?"고 타박하지만 사전에 공부하고 간 사람의 눈에는 몽골이 달리 보인다. 따라서 여행을 떠나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공부가 필요하고 그래야만 여행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처이르(Choyr)'는 고비숨베르아이막에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처이르에는 야생양인 '아르갈'과 야생염소인 '양기르'가 멸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에서 지정한 보호구역이 있다.   
  

▲ 처이르복드 산 정상에 야생동물 몇마리가 보여 망원렌즈로 촬영해 확대해 보니 야생염소인 양기르 세 마리였다. ⓒ 오문수

   

▲ 처이르복드 산 중턱에 새겨진 조각상으로 몽골인들의 기도처이다 ⓒ 오문수


수많은 바위가 널려있는 험준한 바위산은 아르갈과 양기르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풀밭이 있어 야생양과 야생염소가 먹고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위 때문에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 저리거씨의 설명에 의하면 "러시아군이 이곳에 주둔했을 때 아르갈과 양기르를 많이 잡아 먹어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몽골 정부에서 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산 정상에 야생동물 몇 마리가 보여 망원렌즈로 촬영해 확대해보니 야생염소인 양기르 세 마리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떼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떼를 구경하다가 산자락으로 가니 낙타 여러 마리가 등에 짐을 메단 조각상이 나타났다.

중국에 '차마고도'가 있었다면, 몽골에는 '녹차의 길'이

고비사막이라 살아있는 낙타가 흔한데 왜 초원에 낙타조각상이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몽골어와 영어로 된 안내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몽골어는 읽을 수 없어 영어로 적혀 있는 설명 첫 문장은 '녹차의 길(The Tea Road)'이다.

녹차는 현재 세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음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 세계인들이 즐겨마시던 음료는 아니다. 녹차가 유럽에 전해지기 전까지 녹차는 동양인들이 마시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음료였다.

녹차에 대해 최초로 "잎을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한 역사적 기록은 진(265~420) 시대의 것이다. 중국 최고의 번성기였던 당 시대에 상류층, 학자, 승려들 사이에서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송나라까지 이어진 차의 유행은 점차 중산층과 노동 계급에까지 확산되었다.

당 시대에 교역이 번창하면서 차는 고대 대상로를 통해 수출되었다. '차마고도'는 윈난과 쓰촨, 티베트, 미얀마까지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실크로드'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까지 이어졌다. 이후 시베리아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티로드'도 열렸다. 다음은 안내판에 적힌 '티로드' 설명문을 정리한 내용이다.
  

▲ 중국남부에서 생산한 녹차를 낙타에 싣고 유럽에 전하기 위해 이 길을 따라 몽골과 러시아를 경유해 문물이 오간 '티로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오문수


낙타를 이용하는 '티로드'는 동양과 서양문명을 잇는 가교가 됐다. 자료에 의하면 '티로드'는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몽골을 경유해 러시아를 거쳐 대영제국까지 13,000㎞에 달했다. 이 교역로는 해상무역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의 길로 '티로드' 주변에 위치한 나라들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몽골을 통과하는 지정된 길에는 20여 개의 역이 있었다고 믿어지며 처이르 복드 산 뒤편에도 역이 있었다. '캐라반'은 일명 '대상(隊商)'이라고 불리며 낙타나 말 등에 짐을 싣고 떼지어 다니면서 특산물을 팔고 사는 상인의 집단을 뜻한다. 이들은 사막이나 초원, 비단길과 같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가로질러 다니므로, 도적 떼로부터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모여 다녔다.

녹차를 운반하는 핵심 운반 수단은 낙타다. 유목민에 의해 수세기 동안 길들여진 낙타는 참을성이 강하다. 잘 훈련된 낙타는 날씨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에 90㎞를 간다. 추운 계절에 장거리를 가는 캐라반은 인간과 동물에게는 도전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출발 15일 전에 훈련을 마치고 10월 초에 출발한다. 잘 훈련받은 낙타는 70~100일 정도는 쉽게 여행한다.
  

▲ 바닷길이 열리기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티로드'는 중국 남부에서 출발해 몽골과 러시아를 거쳐 영국까지의 1만 3천길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낙타 조각상이 보이는 이 길은 아시아와 유럽문명을 이어준 중요한 가교역할을 했다. ⓒ 오문수


캐라반에는 보통 15마리 이상의 낙타가 참여하고 최소 3명의 여행자가 동반된다. 맨 앞에선 리더는 전방에 있는 장애물을 확인하고 마지막 낙타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방울소리의 리듬에 변화가 생기면 캐라반은 즉각 이동을 멈춘다. 'Seat Arranger'라 불리는 중간과 맨 마지막 동행자는 짐이 잘못되지는 않았는가를 책임진다.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몽골과 러시아를 거쳐 영국까지 이어진 '티로드'는 해상무역이 발달함에 따라 사라졌다. 동서양의 가교역할을 하며 인류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티로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낙타와 대상들의 흔적만 남아있어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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