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지은 집의 최고 매력, 다신 아파트로 못 돌아가
[어쩌다 집짓기-마지막회] 어쩌다 '두 번째' 집짓기를 꿈꾸며
▲ 스무 살 시절의 반짝거리는 마음을 집짓고 다시 찾게 됐다. ⓒ 최지희
세상이 반짝거리던 스무 살, 길모퉁이 알록달록 전구로 치장한 타로 가게에서 오천 원짜리 점을 봤다. 까칠한 수염이 제멋대로 범벅인 아저씨는 능글거리며 '평생 남자들이 득실거릴 팔자'라고 말했다. 가게 비닐 천막 사이를 빠져나오면서 속없이 반짝반짝 설렜다. 오 예쓰!
점괘는 정확했다. 타로 아저씨 말대로 내 주변에서 평생 얼쩡거릴 남자는 (형제만 넷인) 남편과 아들 둘까지, 도합 셋이 기본값으로 세팅됐기 때문이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오늘의 즐거움을 미루거나 단념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점점 철이 들었지만 반짝거리던 내 세상은 빛을 잃어 갔다.
▲ 우리 집 빨래 건조대에는 항상 남자들 옷이 가득 걸린다. ⓒ 최지희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잃은 덕분에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됐다. 이왕지사 내려놓지 못할 봇짐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내일보다는 지금, 가끔 철없어도 괜찮은 다정한 삶을 살자는 결심.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과 대면하면서 마침내 오답을 각오할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의 시작이 집짓기였다. 그렇게 집 짓다가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마흔 넘은 나이에 꿈을 찾아 나서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집짓기는 일종의 자기계발(?)이었던 셈이다. 비록 '대출'의 영역까지 야무지게 계발하게 되리라 미처 예상하진 못했지만.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집 때문에 빚이 생겼고, 가계 수입은 줄고 얼굴의 주름은 늘었는데 왜 때문인지 마음은 다시 반짝반짝해지고 있었다. 마치 스무 살 때처럼. 그 이유를 한동안 찾지 못하다가 집짓기에 관해서 물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알게 됐다. 다른 삶, 다른 인생을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반짝거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들뜬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함께 꿈꾸며 설렜다.
그래서 또 결심했다. 그래, 이 좋은(?) 집짓기를 나만 할 순 없지. 행복 나눔을 실천하는 박애정신 충만한 집짓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현실적 어려움으로 집짓기를 주저하는 친구들을 '컴 온, 컴 온' 독려했다. 시간과 장소가 허락할 때마다 '집 짓고 사니 겁나 좋음요', '땅 보러 같이 가줄까'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가 됐다.
▲ 시골 주택에 살다보니 소소한 즐거움에 오늘이 행복하다. ⓒ 최지희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 좋은 집짓기를 생에 한 번만 할 순 없지, 라는 지경인지 경지인지 모를 깨달음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무릇 깨달음은 나눠야 제맛이다. 남편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여보, 만약에."
"(경계) 왜? 뭐가?"
"아니, 만약이라니까. 진짜 만약에 다시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 짓고 싶어?"
"만약에?"
"당연하지. 어휴~ 어떻게 또 집을 짓겠어? 말도 안 되지."
"하긴. 그렇다면 음... 더 깊은 숲속에 작은 단층집."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남편도 이제 나처럼 더 이상 아파트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집이 좋아서 퇴근하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오고 싶다던 남편의 말은 백 퍼 진심이었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투망 던질 타이밍에 찌나 쳐다보며 자빠져 있을 내가 아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슬쩍 봐 둔 땅이 있는데 말이야, 그게 어디냐면, 여...보오?"
싸늘한 눈빛을 쏘아대며 홱 돌아서는 남편의 (익숙한) 등짝을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열일하는 무릎 연골에 단층집을 선물할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반짝거린다.
오케이, 좋았어. 어쩌다 '두 번째로' 지을 집은 숲속 오두막 단층집! 너로 정했다. 그 집은 부디 출세하고 떼 돈 벌어서 빚 없이 지어 볼 테다. 집짓기에 나서면서부터 수십 번째 이어지는 그놈의 낭창한 '결심'을 오늘도 기어이 하고야 말았다.
※ '어쩌다 집짓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어쩌다 집짓기' 연재 글은 기사 발행 후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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