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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이겼다" 쌍용차 노동자들, '470억 손배' 대우하청 노동자 껴안다

[현장] 국가 손배 원심 파기환송 대법 판결에 울먹인 그들 "노란봉투법 제정해야"

등록|2022.11.30 19:13 수정|2022.12.01 05:49

▲ 쌍용차 노동자들이 30일 대법원에서 진행된 국가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1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이 파기된 이후 기뻐하고 있다. 파업 이후 무려 13년, 2심 선고 이후 6년 만에 나온 결과다. ⓒ 김성욱


"원심 판결 중 헬기 및 기중기 손상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한다."

대법원이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발해 공장 점거 파업을 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경찰)가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들에게 11억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던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노동자들에게 10억 원대 손배 책임을 지운 1심, 2심과 달리 쌍용차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파업 이후 무려 13년 만, 2심 선고 후 6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그 사이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 30여 명이 사망했고, 피고 중에서만 3명이 세상을 등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오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 손배 청구 소송 상고심 재판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파업 당시 경찰의 폭력 진압이 '위법'했고, 여기에 노동자들이 저항한 것은 '정당 방위'였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특정한 경찰 장비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관계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용법과 달리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직무수행은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상대방이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면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과정에서 그 경찰 장비를 손상시켰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무집행으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 방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가 전체 노동자의 36%에 해당하는 2600여 명을 대량 해고하려 하자 노조가 이에 반발,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당시 경찰이 특공대와 헬기, 크레인까지 동원하며 파업을 과잉 무력 진압해 논란이 일었지만 경찰은 오히려 헬기와 기중기 등이 파손되는 손해를 입었다며 노동자 67명을 상대로 14억6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13년 1심에서 노조의 책임이 인정돼 13억7000여만 원 배상 판결이 났고, 2016년 2심에선 지급액이 다소 줄은 11억3000여만 원 배상 판결이 나왔다. 이날 판결 전까지 쌍용차 노동자들의 경찰 손해 배상금은 지연 이자를 합쳐 30억 원에 달했다.

앞서 지난 2019년 경찰은 쌍용차 파업 당시 폭력 진압에 대해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노동자들의 지속된 요구에도 손배소는 취하하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다.

"먼저 간 동료들에게…" 눈물 흘린 쌍용차 노동자들
  

▲ 30일 대법원 2호 법정을 나서는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과 노동자들. 쌍용차 노동자들이 이날 대법원에서 진행된 국가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1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이 파기된 이후 기뻐하고 있다. 파업 이후 무려 13년, 2심 선고 이후 6년 만에 나온 결과다. ⓒ 김성욱


뒤늦은 판결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13년 만에 이겼다." 이날 오후 2시께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선고를 들은 이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토해낸 외마디였다. 쌍용차 해고 사태 이후 먼저 세상을 떠난 30여 명의 동료들 얘기가 나오자 노동자들은 울먹였다. 어떤 이는 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201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중씨를 떠올렸다. 10년 여 투쟁한 끝에 어렵게 쌍용차에 복직한 노동자들은 이날 연차를 쓰고 판결을 지켜봐야 했다.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법원에 온 노동자도 있었다.

조문경(60) : "파업 때 옥상에서 쓰러진 채로 경찰 세 명한테 둘러싸여 곤봉으로 두들겨 맞는 장면이 유명한데, 제가 그 당사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 살아있냐고 묻던데… 겨울이 돌아오면 지금도 다리가 시립니다. 그때 경찰은 헬기에서 우리들에게 최루액을 엄청나게 뿌려댔습니다. 아마 산에 불이 나도 그렇게까지는 물을 안 뿌릴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최루액이 1급 발암물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대부분 동료들은 바빠서 오늘 못 왔죠. 저도 어제 밤 12시 20분까지 야간 근무하고 나서 오늘 연차 내고 왔어요. 잠도 못 자고. 부인한테 결과 나왔다고 말했더니 잘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녁에 같이 술 한잔 해야죠."


채희국(52) : "사실 너무 떨렸어요. 법정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냥 마냥 미뤄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만약에 오늘 판결이 잘못 나오면 우리는 또 고통을 당해야 되니까. 그건 너무… 무서우니까. 노동자가 해고되면, 생활고 겪고, 가정 무너지고, 인간 관계 파탄 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거든요. 그래서 너무 많은 쌍용차 사람들이 돌아가셨고요.

고인이 된 김주중씨 생각이 나요. 돌아가시기 6개월 전인가. 저한테 힘들다고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거든요. 그분이 원래 그런 말 하시는 분이 아니라서. 항상 밝고 활기 찼던 분이셨으니까. 그때 더 위로를 못해준 게 너무 미안해요. 오늘 이 자리에 못 오신 분들이 많아요."

원성재(47) : "울컥했죠. 힘들었던 분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 더 안 나오네요."

김득중(53) : "무거웠던 마음이 풀려서 지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에만 6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13년 동안 저희들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마음을 모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한상균(60) : "제가 한 달 뒤 정년 퇴직입니다. 저승에서 오늘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을, 먼저 간 우리 동지들. 그 가족들. 그들과 함께 오늘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 서세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2009)>의 한 장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경찰이 노조원들을 과잉 진압하는 모습이다. 경찰은 10년이 지난 지난 2019년 7월 26일에야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 서세진

▲ 2009년 8월 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장기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해 경찰과 사측이 강제진압작전에 나선 가운데 차체2팀 공장 옥상에 진입한 경찰특공대가 휴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470억 손배'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안아준 쌍용차 노동자들

쌍용차 노동자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경찰의 소 취하를 촉구했다.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판결 직후 "이미 경찰이 폭력 과잉 진압에 대해 사과했고 인정했음에도 소를 취하하지 않아 이 자리까지 왔다"라며 "경찰은 즉각 소를 취하해 이 고통을 끝내라"고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도 입장문을 내고 "파기 환송심까지 끌고 갈 이유가 없다"라며 "국가는 하루 빨리 모든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오늘 판결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손배가압류로 보복하는 행위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 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 문제가 본격화된 것이 쌍용차 사태 이후다.

김득중 지부장은 "아직도 여전히 노동자들이 손배 가압류로 죽고, 고통 받는 현실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라며 "쌍용차에 제기됐던 47억 원(경찰과 사측이 제기한 손배의 총합으로, 이후 사측은 취하함) 손배 가압류가 멈추지 않고, 오늘날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470억 원 손배로 늘어난 현실을 보고 너무나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노조법 2, 3조를 개정해 더 이상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13년이란 고통의 긴 터널에 헤매는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2009년 파업 당시 쌍용차노조 지부장이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국회 앞에는 더 이상 노동자가 저항하다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이 평범한 주장을 하는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라며 "반드시 손배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하겠다"고 했다.
 

▲ 쌍용차 노동자들이 30일 대법원에서 진행된 국가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1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이 파기된 이후 기뻐하고 있다. 파업 이후 무려 13년, 2심 선고 이후 6년 만에 나온 결과다. ⓒ 김성욱

 

▲ 쌍용차 노동자들이 30일 대법원에서 진행된 국가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11억 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이 파기된 이후 기뻐하고 있다. 파업 이후 무려 13년, 2심 선고 이후 6년 만에 나온 결과다. ⓒ 김성욱


이날 법정에는 지난 6~7월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했다가 대우조선으로부터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받은 하청 노동자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지회장도 함께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법정에서 선고가 나자마자 눈물을 보였다. 김 지회장은 "쌍용차 동지들이 이 투쟁을 포기했다면 아마 우리도 지금처럼 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지회장은 쌍용차 노동자들 앞에서 "쌍용차부터 계속해서 노동자들에게 대물림 되고 있는 고통, 손배 가압류의 문제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김득중 지부장, 한상균 전 위원장 등 쌍용차 노동자들이 김 지회장을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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