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영 강습 받던 날, 내가 거짓말 한 이유
수영도, 영어도 남이 배운 것만 봐서는 절대 늘지 않습니다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수영 가기 전날 엔 유튜브를 검색했다. 자유형 팔 돌리기, 자유형 호흡법 등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동작을 찾고 몇 번씩 영상을 돌려봤다. 처음엔 자세 잡는 법을 배우며 방법과 순서를 머릿 속에 새겼다. 다음엔 디테일한 동작을 하나씩 따라해 봤다. 물 속에 있다고 상상하며 내 몸을 움직였다.
▲ 유튜브로 수영을 배웠다. 물에 들어가니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수영은 물 속에서 배우는거다. ⓒ 이영실
수영장에 도착하면 전날 유튜브로 배운 동작을 연습했다. "고개를 어깨에 기대며 옆으로 눕듯이 몸통을 돌립니다. 자연스레 얼굴이 물 밖으로 나가면 입으로 숨을 들이 마시고 오른팔과 함께 제자리로 옵니다." 머릿속에서 영상을 재생하며 하나씩 따라했다.
호흡법 하나를 익히는데도 몇 주가 걸렸다. 고개를 자연스레 어깨에 기대기, 그 상태를 유지하며 옆으로 몸을 돌리기, 가라앉지 않고 옆으로 누운 자세를 유지하기, 다시 몸을 제자리로 돌리기 등 호흡 동작을 자잘하게 나누었다. 몸이 하나의 동작을 배우고 기억하는데만도 여러 날이 걸렸고, 이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수영을 빨리 배우고 싶어 매일 수영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그만큼 수영 실력이 빠르게 늘 줄 알았다. 머리로 이해 한다고 몸이 수영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영상을 보고 빠르게 진도를 뺀다고 해도 내 몸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머리로 배운 건 모두 제로였다. 이론과 실제를 오가며 알게 됐다. 수영을 잘하고 싶다면 유튜브를 볼 시간에 물 속에 뛰어 들어야 했음을!
내가 만든 것만이 나의 것이다
물 밖에서 배운 수영을 말하다보니 애증의 영어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영어는 내게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였다. 영어가 필요한 직장에 취직할 것도 아니고, 영어 못해도 내 삶은 불편이 없는데 왜 그렇게 포기가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엄마가 되어 또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엔 영어 공부하는 아이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할 땐 책부터 찾아본다. 먼저 시도해 본 사람의 이야기,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이다. 영어도 그랬다. 영어 공부에 성공했다는 책은 모조리 읽기 시작했다. 듣기만 했는데도 귀가 뚫리고 입이 트였다는 말에 솔깃했고, 골치 아픈 영문법 없이도 영문법을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에 팔랑거렸다.
"방법이 조금 틀려도 끈기가 있으면 성공하나 방법이 좋아도 끈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영어 공부법 탐독 끝에 만난 백신 영어라는 책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방법만 찾고 정작 실천하지 않는다는 맥락의 글이었다. '너 말이야. 너!' 공부는 안 하고 영어 공부법만 탐하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 길로 영어 공부법을 말하는 책과 이별했다.
▲ 나만의 영어공부법을 찾기 위해 한 장 한 장 공을 들였다. ⓒ 이영실
바로 영문법 책을 사서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든 문장을 영작했다. 매일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읽고, 영어 일기를 써 나갔으며,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책에서 배운 영어 공부법을 적용하기 보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닥치는대로 시도하고 몸으로 익히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이렇게 영어 실력을 올리는 노력을 하며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놀이터에서 만난 노란 머리 아이의 부모와 수다도 떨어보고, 여행 박람회에서 외국인 가이드에게 원하는 질문을 하며 무려 30분이 넘는 긴 대화를 해 보기도 하고, 서울에 놀러온 외국인 친구의 투어 가이드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외국인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남의 영어 공부 수기만 쫓았더라면 전혀 얻을 수 없는 경험이며 능력이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알게 됐다. 책에서 말하는 영어 공부법은 그들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님을. 나의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물 속에 뛰어들 듯 풍덩 그 세계로 뛰어 들어 하나하나 내가 얻어내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알아야 진짜다
"접영 한 번 해 보세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요?"
"그럼 안 하실 거예요?"
독학으로 수영을 배운 후 처음으로 강습에 갔다. 실력 파악을 위해 네 가지 영법을 한 번씩 해 보라 하셨는데, 접영에서 막혔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물만 먹다가 포기 했던지라 해 본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다른 영법을 충분히 잘하고 접영도 본게 있으니 가능할 거라며 강사님은 무작정 출발을 외쳤다.
못한다는데 왜 자꾸 그러나 싶었지만 열심히는 했다. 영상에서 본 기초 자세, 다른 사람들이 멋지게 물을 차고 나가는 모습 등을 떠올리며, 돌고래가 된 것처럼 두 다리로 물을 찼다. 계속 발로 물을 밀다보니 무언가 알 것 같았다. 두 발이 물을 누르고 올라가는 느낌, 몸이 S자를 그리며 웨이브를 타는 느낌, 두 팔로 동시에 물을 밀어내는 느낌과 그 순간 몸이 앞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오! 이건가봐!!
잘 모르겠던 감각들이 밀려옴과 동시에 평영을 배울 때가 생각났다. 평영은 발바닥으로 물을 밀어내는 능력이 관건이라 했지만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그 느낌을 알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고 평영이 익숙해진 다음에야 그 설명과 느낌을 이해하게 되었다.
몸으로 배우는 일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백번 설명을 해봐야, 머리가 아는 것이지 몸이 아는 것이 아니니까. 강사님은 물 속에서 직접 부딪치며 얻는 감각이 진짜란 걸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연말 결산 시즌을 맞아 한 해를 리뷰하자니, 지나간 일들이 한 올 한 올 일어난다. 특히 배움에 관한 생각들인데, 올해의 키워드가 배움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배웠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지식과 정보를 흡수했는데, 공부하러 다니느라 피곤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분주히 움직여 얻은 게 무어냐는 질문엔 마음이 무겁다. 지난 1년의 나는, 수영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유튜브만 반복해서 보든,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서 남의 공부법만 탐하든, 과거의 나와 별 다를 게 없어서다. 내가 원했던 건 머릿속을 꽉 채운 지식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공부에 열심인 나에게 왜 현장에 뛰어들지 않느냐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다시 보니 '뛰어들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힘들고 싶지 않아서'가 나의 진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진심을 마주하며 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음을, 뛰어들어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다시 시작하기 좋은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uccessmate)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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