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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사건 67건의 실록 7권에 담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55] 사법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점검해보는 임상(臨床)보고서

등록|2022.12.07 18:39 수정|2022.12.07 18:39
   

▲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렸던 한승헌 변호사 ⓒ 연합뉴스


짧은 재조와 사개추위의 활동을 마치고 본가인 재야로 귀환한 그에게 일은 여전히 많았다.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을 확고히 다지고, 원장의 정년 임기가 연장되었음에도 미련없이 훨훨 털고 나오면서, 그리고 사개추위에서의 역량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평가가 뒤따랐다. 한국에서 고위직을 떠난 후 '인기'가 높아진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나이 70고개를 넘어섰다. 다행히 건강은 탈이 없었다. 바쁘게 살다보니 병이 들래야 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뒷날 <자서전>에서 1992년 봄에 위암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외비'로 한 것은 여러 사람에게 문병인사 등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뜻이었다. 다행히 초기라서 수술을 받고 경과도 좋아서 보름만에 퇴원하였다.

이 '사건' 말고 체중은 젊어서부터 줄곧 55킬로그램을 유지해왔다.

"내 몸의 허점을 아는 듯 겨울엔 가끔 감기란 놈이 찾아오는데, 어쩌다 오래 가는 수도 있다. 이럴 때, 자네 감기 아직도 안 나갔느냐고 친구가 물으면, 내 감기는 주한미군이네. 한번 들어오더니, 나갈 줄을 몰라. 이런 대답으로 웃고 나면 감기도 따라 웃다가 나가버리곤 한다." (주석 1)

2006년 11월에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전 7권이 범우사에서 간행되었다. 이를 그는 자신의 '숙원사업'이라 했다. 100건이 넘는 시국사건 중에 67건의 실록을 일곱 권의 책에 담았다.

한승헌변호사변론사건실록간행위원회(위원장 박원순 변호사)가 준비하고, 범우사가 '창사 40주년 기념출판'한 <한승헌변호사 변론사건 실록①~⑦>은 권당 500쪽이 넘는 방대한 기록이다.

개인 한승헌의 문집이라기보다 1967~2005년 한국인권운동사, 한국사법사, 한국정치사의 자료이고 증언록이다. 박원순 간행위원장은 <세월은 가도 역사는 남는다>는 간행사에서 "이제 후세를 향해 외쳤던 한 변호사의 변론이 다시 우리와 다음의 세대를 향해, 이 실록을 통하여 더욱 가슴에 남고 그 시대의 정의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는다. 한 변호사 - 그는 당시의 법정에서는 연전연패했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라고 평한다.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는 축사 <변론사건 실록, 감사합니다>에서 "올바른 우리 현대사의 서술을 위해 귀중한 사료를 잘 간수했다가 세상에 내어놓는 한승헌 변호사의 꾸준한 노력과 높은 지성과 투철한 역사의식을 높이 사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해 마지 않습니다."라고 치하했다.
 

▲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 한승헌 지음 / 창비(좌), 사법부_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 한홍구 지음 / 돌베개(우) ⓒ 창비/돌베개



한승헌은 머리말 <변호사의 또 다른 책무로서>를 통해 간행의 의미를 밝힌다.

나는 이 실록물을 통하여, 이 나라의 험난했던 역사 속에서, 특히 분단과 독재의 칼바람 속에서 권력의 핍박을 받고 감방에 갇히거나 심지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의 고난을 사건기록을 중심으로 역사에 입력해두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실록이 지난 한 시대의 아픔과 권력의 무도함 그리고 그런 불행으로부터 주권자와 민주주의를 지켜주었어야 할 사법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점검해보는 임상(臨床)보고서가 되었으면 한다.

이 <…실록>을 준비하면서 법정과 구치소(또는 교도소)에서 서로 뜻을 같이 했던 많은 분들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변호인의 쓸모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자문도 잊지 않았다. 많은 시국사범들이 무죄임을 확신하면서 동시에 유죄판결이 나오리라는 점도 확신해야 했던 지난 날의 기막힌 사법현실 속에서 나의 변호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의 변호는 그들에게 무슨 효용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들에게 얼마쯤의 위로와 격려라도 되었을까?

벌거벗은 권력의 독기와 맞서거나, 아니면 그 앞에서 기죽기 쉬운 '피고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를 보내고 그리고 법정 안팎의 진실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는 '진실의 전달자'가 되자고 나는 다짐했다. 이 실록의 간행은 내 그런 다짐의 작은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석
1> <자서전>, 37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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