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오다 삼 캤다"며 주신 것
사진 찍어 드리고 답례로 받은 인삼 사탕에서 느낀 어른의 맛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아니, 왼쪽으로 더 붙어보라니까!"
몇 달 전이었다. 북한산 국녕사 입구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불상, 국녕 대불 앞에서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네 분이 분주히 뭔가를 하고 계셨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찬찬한 말투가 7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신가 봤더니 그중 한 분이 치켜든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찍어 드릴까요?"
셀카봉도 없이 셀카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이 힘겨워 보여 말씀드렸더니, 그분들 중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초점을 맞추던 남자 어르신께서, "아이고~ 왜 이제야 내려왔어요!" 하며 반색하셨다. 그러더니 내게 핸드폰을 건네며 갑자기 내게 귀속말을 하는 듯한 모양새로 몸을 웅크리시더니 이렇게 속삭이시는 것이었다.
"저~기 안경 쓴 키 큰 남자는 그냥 빼고 찍어 줘요."
키가 작은 그분이 정말 나에게만 속삭인 말씀이었다면 아마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께서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하신 말씀이 설마 농담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다행히 뒤에 서 계시던 동년배 세 분(여자 두 분과 사진에서 빼 달라던 안경 쓴 남자 한 분)이 듣고는 박장대소하시는 걸 보고서야 따라 웃을 수 있었다.
사진 서, 너 장을 찍어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키 작은 그분이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메고 계시던 가방을 열어 뭔가를 주섬주섬 뒤지셨다.
"내가 오다가 삼밭을 지나쳤거든. 거기서 몇 뿌리 캐 왔어요. 사진 찍어 주신 보답으로 몇 뿌리 드릴게."
하시며 내게 손을 내밀어 보라는 것이었다. '삼'이라면... 지금 내게 인삼을 주신다는 말씀이신가? 천천히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갑작스러운 맥락을 따라잡지 못하고 난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찮아요~ 저 열이 많은 체질이라 삼이 안 맞아서요오!"
오직 어르신의 삼을 어떻게든 제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난 무례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었다. 그런데, 뒷걸음질 치던 내 손에 그분이 건네주신 건... 삼 뿌리가 아닌 '인삼 캔디'.
순간 난 아연해지고 말았다. 혼자 머쓱해져서 웃지도 못하고 서 있는 내 손바닥 위에 어르신은 인삼 캔디 하나를 올려놓으시더니, "이건 남편 거" 하시며 또 하나, "이건 아이 거" 하시며 한 개를 또 얹으셨다. 더 정신을 놓고 있다간 사돈의 팔촌 몫까지 챙겨가게 될 참이었다.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계시던 국녕 대불의 입꼬리가 왠지 살짝 씰룩거린 것 같기도 하고.
▲ 국녕사 국녕 대불국녕사 국녕 대불 ⓒ 정혜영
허둥지둥 감사 인사를 표하고는 거대한 국녕 대불과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하산하면서 어르신이 들려주신 인삼 캔디 하나를 까서 입에 쏙 넣어 굴려가며 맛을 음미했다. 인삼 캔디 특유의 쌉싸름한 달콤함은 당시의 내 기분을 구현해낸 맛이었다.
적어도 그분들이 내 연배였더라면, 마주한 그 모든 상황에 그토록 허를 찔리진 않았을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키 작은 어르신이 건네신 농담들은 그렇게 기발하고 처음 듣는 참신한 유머도 아니었는데 어째서 나는 그분의 유머에 그토록 무방비 상태였을까?
아마도 내가 그분에게서 전혀 '유머'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점잖은 어른에게 난 아마도 '유머' 보다는 '진지함'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말과 행동을 접하면 우리는 낯선 상대에게라도 일시에 긴장감을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풀린 긴장감은 서로 간의 방어벽을 허물고 쉽게 친밀감을 형성하게 만든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가 있던가. 유머는 세상 진지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자, 우리 모두가 갖고자 소망하는 성품이다. 어르신이 80에 가까운 백발의 노인이 아니라 유쾌한 어르신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의 '유머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학부모 교원 만족도 평가 결과를 살펴보다 서술란에서 ''어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발견하고는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제 저학년 학부모에게 '(뭔가 보고 배우고 얻을 것이 있을 거라 기대되는) 어른'으로 비칠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저으기 놀랐다.
난 그저 내 방식대로 매력적인 노인으로 늙어 가고 싶은데. 백발에 주름투성이일지라도 유머를 잃지 않는 국녕사에서 만난 어르신처럼 말이다. 타인이 내게 기대하는 어른의 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 사이의 적정선을 고민해봐야겠다.
이어령 선생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럭셔리한 삶이란 이야기가 많은 삶'이라고 하셨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라는 말은 오직 돈으로 모든 가치를 매기는 시대에 뼈를 때리는 말씀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셨지만 정작 본인은 지적인 것은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며 전 생애에 걸쳐 '진선미'를 추구하고자 하셨던 어른. 그런 선생의 말씀을 통해 진짜 어른의 삶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최근에 만난 두 분의 어른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어른상을 그려 보았다.
'주변 이들에게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내 이야기가 풍성한 어른'으로. 80세가 돼서도 90세가 되어도 내가 만들어온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주변 이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그보다 럭셔리한 삶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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