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부동산 세금 줄이려고 조세법률주의 흔드나
[분석] '공시가격 현실화율' 조정은 꼼수... 공시가격에 임대차가격도 추가해야
▲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 및 2023년 보유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23 ⓒ 연합뉴스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관한 공청회가 11월에 두 번 열렸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란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이므로, 현실화율을 낮추면 세액이 줄어든다. 11월 4일에 열린 제1차 공청회에서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년에는 올해 공시가격을 동결해서 쓰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1년간 검토해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11월 2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제안보다 더 강화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였다.
11월 22일 열린 제2차 공청회에서는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자고 제안하였다. 23일에는 행정안전부가 1주택자의 내년 재산세를 2020년 이전 수준으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도 27일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관련 자료집에서, 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할 방침이라고 하였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부동산 세금 감축'을 위해 정부 관련 부처들이 이미 의견을 모았고 공청회는 요식 절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세금 줄이기, 조세법률주의 원칙 무시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는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세액은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하여 결정된다. 별다른 사정이 없으면 과세표준은 과세 대상의 가치와 같아야 한다. 소득세면 소득액, 부가가치세면 부가가치액이 과세표준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세금의 과세표준은 부동산 가액이 되어야 한다.
또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약칭: 부동산공시법)은 공시가격을 '적정가격'이라고 하고(제1조), '적정가격'이란 토지, 주택 및 비주거용 부동산에 대하여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제2조)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행정부가 공시가격에 '공시가격 현실화율'로 가공하여 과세표준을 정한다면 헌법의 조세법률주의는 무색해지고 만다.
행정부가 부동산 세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재량 수단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 외에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과세표준을 시세에 맞추기 위해 해마다 5%씩 인상하도록 하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폐지하고 2009년부터 지방세법 시행령으로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정할 수 있게 바꾸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가 싫다면, 이런 편법과 꼼수가 아니라 법률로 세율을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부동산공시법의 '적정가격'도 실은 반쪽짜리다. 부동산 가격에는 교환가치를 나타내는 매매가격과 사용가치를 나타내는 임대차가격이 있다. 매매가격과 임대차가격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다면 둘 중 하나만 평가하면 되지만, 두 가격 간의 비례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매매가격은 미래의 임대차가격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인데, 환산 과정에 할인율 즉 금리가 작용한다. 사용가치가 변하지 않아도 금리가 내리면 매매가격이 올라가고 금리가 오르면 매매가격이 내려간다. 또 완전경쟁시장과는 달리 현실시장의 매입수요에는 정상수요 외에 비정상적인 '가수요'도 작용하여 매매가격에 영향을 준다. 가수요란 투기, 영끌 등의 동기로 생기는 수요를 말한다.
부동산공시법이 정하는 적정가격은 매매가격에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국공유재산 임대료를 정하거나 수용 보상에 필요한 임대가치는 공시지가에 적당한 비율을 곱해서 산출한다. 예를 들어 국유재산법 시행령에서는, 토지의 연간 사용료를 공시지가의 5% 이상으로 하되 경작용 또는 목축용 토지는 1% 이상, 주거용은 2%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적정가격'에 임대차가격이 빠져있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사용한다.
반쪽짜리 공시가격에 임대차가격도 추가하면?
▲ 정부가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춘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완화하기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과 주택 재산세 부과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2022.11.23 ⓒ 연합뉴스
부동산 세금에는 취득세, 양도소득세와 같은 거래세와 종합부동산세, 재산세와 같은 보유세가 있다. 거래세는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삼고 보유세는 임대차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다. 부동산 사용가치는 변함이 없는데도 금리 하락이나 비정상적인 가수요로 인해 매매가격이 상승하여 보유세가 올라간다면, 납세자로서는 억울하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현재는 거래세만이 아니라 보유세도 매매가격인 '적정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또 공시가격은 부동산 관련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등 수십 가지 제도의 기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매매가격은 팔든지 담보대출을 할 때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는데, 매매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가 오른다면 역시 당사자가 억울해할 수 있다. 부동산 공시가격에 매매가격 외에 임대차가격도 추가하여, 각 제도의 목적에 따라 두 가격 중 적절한 가격을 기준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억울한 부담 문제가 해소되므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이나 공정시장가액 비율 같은 편법을 합리화할 명분도 없어진다.
덧붙이는 글
대구지역 인터넷 매체 <평화뉴스>에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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