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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도 놀란 '담장을 넘은 소녀'

조선시대 시인 금원의 이야기가 담긴 두 권의 책

등록|2022.12.10 11:45 수정|2022.12.10 11:45

<담장을 넘은 소녀> 표지<당장을 넘은 소녀>는 금원이 쓴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쓴 청소년 소설이다. ⓒ 다른


지난 10월, 김미승의 <담장을 넘은 소녀>가 간행됐다. 작가도 밝혔듯이 이 책은 조선시대 시인 금원이 쓴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열네 살 금원이 여행길에서 만난 자연 풍경과 혹시 만났을지도 모를 인물들을 나름대로 그려 보면서' 쓴 소설이다.

작가는 금원이 유명 시인들이 머물렀던 거처도 탐방하고 득음을 위해 수련하는 소리꾼도 만나며 학문과 예술에 대한 견문을 넓혀가는 구성을 하고 있다. 특히 소박하게 살아가는 민초들과의 만남, 김삿갓으로 짐작되는 시적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금원이 당대의 현실에 기반한 자신만의 시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조선 시대 여성으로서 감히 꿈꿀 수 없었던 금강산 여행을 계획하고 실현해 낸 금원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에도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듯이 금원처럼 도전하는 자는 무엇인가를 성취할 것이다.

'남장 여인 금원의 19세기 조선 여행기'는 최선경 작가가 펴낸 <호동서락을 가다>를 통해서도 세상에 알려진 바가 있다. 이 책 또한 금원의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유람기의 내용을 따라가며 평을 곁들여 금원의 일생을 추적하고 있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최선경의 <호동서락을 가다> 표지최선경의 <호동서락을 가다>는 금원의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라 할 수 있다. ⓒ 옥당


14살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34에 유람기를 남긴 시인 금원

서녀로 추정되는 금원(錦園, 1817~1850년 이후)은 14세 되던 해(1830년) 남장을 하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와서 34세 되던 해(1850)년에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남긴 조선시대 문인이다. '호동서락'은 지금의 충청 4군인 제천, 단양, 영춘, 청풍에서 시작하여 관동의 금강산을 거쳐 규당학사 김덕희의 소실이 된 후 관서 지방에 동행했다가 다시 낙양(서울)로 돌아왔기 때문에 '호동서락기'라 이름 한다고 했다.
 
"평생을 돌이켜보니 맑은 곳에서 놀고 기괴한 곳을 돌아다니며 이름난 곳 거의 다 보았으니 남자가 할 수 없는 것을 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내 분수에도 족하고 소원 역시 보상되었다고 할 것이다. (중략) 생각건대 지나간 일과 경관은 눈 깜짝하는 한순간의 꿈이니, 진실로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금원을 알겠는가!" - <호동서락을 가다> 중에서 

금원은 <호동서락기> 말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곁들인 기행문집을 남긴 이유를 밝힌 셈이다. 신분의 한계에 대한 자탄과 소원 성취에 대한 자족감, 문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로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출신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것과 문명국에 태어난 것은 다행이나 여자로 태어난 것과 한미한 집안에 태어난 것은 불행이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기녀로 알려진 것으로 봐서 자신도 신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일찍부터 했을 것이다.

금원은 어릴 때 병약하여 부모가 여자로서 할 일을 배우게 하지 않고 문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글쪽으로 재능이 뛰어났는지 오래지 않아 경사(經史)를 대략 통하고 고금의 문장을 배워 어릴 때부터 자주 시문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계례(성인이 되었다는 의미로 여자가 쪽을 찌어올리고 비녀를 꽂는 의식)를 올리기 전 부모를 설득하여 금강산을 비롯한 승경을 보고 돌아오겠다고 오랜 간청 끝에 허락을 받아 유람 길에 올랐다. 이는 당대 여인들이 사회적 규제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만큼 어린 나이임에도 독보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호동서락기〉의 마지막 부분은 남편 김덕희가 벼슬에서 물러나 한강변에 있는 용산 삼호정에서 거처할 때 '삼호정시사'라는 시회를 주도하며 생활했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그때 함께 했던 문사들이 연천 김이양의 소실인 운초, 송호 서태수의 소실인 박죽서, 주천 홍태수의 소실이며 금원의 동생인 경춘, 화사 이상서의 소실인 경산이다. 이들은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 당대 시단의 주류였던 남성 문인들과도 시로서 교유했다.
 
"시문서화로 매일의 일을 삼고 산수풍월과 연운화조(烟雲花鳥:안개와 구름, 꽃과 새)로 집을 삼아 날마다 그 속에서 노래하고 읊조리며 오로지 가슴속 번민을 쏟아내어 무료한 기운을 불사른다. 하지만 용모는 은화하고 부드러우며 단정하여 면복(최고의 예복)을 입고 옥을 찬 것 같다. 내어놓아도 함부로 흐르지 않고 즐겨도 거칠지 않으니, 신령스러운 지혜가 촉발되어 시문으로 나타난 것이 이 책이다." - <호동서락을 가다> 중 인용

<호동서락기>의 후기를 쓴 금원의 동생인 경춘의 서평이다. 기녀의 신분임에도 함부로 살지 않았고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여자로 태어나 재주가 뛰어나도 쓰이지 못하니 그 번민을 시문으로 표현했다는 탄식이며 시인이었던 자신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금원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감탄은 추사 김정희의 뒤늦은 고백에서도 발견된다.

추사 김정희도 놀란 금원의 문학적 재능
 
"금원의 제문을 얻어 읽어보니, 그 문장이 정에서 나온 것인지, 문장에서 정이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 아파하며 곡진하고 도타운 슬픔과 애통함이 족히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두 번째입니다. 어찌 이처럼 기이한 글이 있단 말입니까? <중략> 화장을 짙게 한 여인의 기미는 한 점도 없고 옛날 여사(女士)의 요조한 품격만 있어, 턱 아래 3척의 수염을 휘날리고 가슴속에는 5,000자의 글을 담고 있는 제가 곧장 부끄러워 죽고만 싶을 뿐입니다." - <호동서락을 가다> 중에서 

추사는 금원의 글을 보고 자기 가문에 재능 있는 사람을 일찍 알아보지 못한 탄식을 하며 '비단 같은 작은 마음속에 거대한 바다와 높은 산을 감추고 있어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글을 남길 정도였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산도> <단발령망금강산도>는 단발령에서 처음 금강산을 접하는 장면을 그린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담장을 넘은 소녀>는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금원이 성년을 앞둔 어린 시절에 금강산의 명승을 유람하고 한양 선비들의 백전(백일장)도 구경하고 다녀와서 죽서, 경춘과 함께 시회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하는 부분까지 일단락을 짓고 있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망금강산도>를 보면 단발령에서 보는 금강산의 비경을 진경산수로 보여주는데 금원도 저 그림 속 사람들처럼 무리 속에서 감탄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담장을 넘은 소녀>를 쓴 김미승 작가는 시인으로 등단하여 꾸준히 수준 높은 시를 써오면서도 <꿈을 파는 달빛제과점>, <검정 치마 마트료시카>, <저고리 시스터즈>, <세상에 없는 아이> 등 '이야기 보따리'를 광폭으로 한창 풀어내며 선굵은 청소년 역사 소설을 써오고 있다. 역사적 인물인 금원의 이야기를 청소년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새롭게 소개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금원은 자신이 후대에도 전해질 줄 알았을까

금원은 <호동서락기>에서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금원을 알겠는가?'라고 했는데 신분의 한계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시와 글을 남겼기에 우리는 뒤를 이은 최선경과 김미승 같은 작가들에 의해 금원의 삶과 문학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호정시사>의 동인이었던 운초는 <호동서락기>에서 "아! 후세 사람으로 금원은 여중호걸이다. 문장은 그 나머지 일이니, 오히려 뛰어난 재질과 세상을 뛰어넘는 학식을 볼 수 있다" 하였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애정어린 평에 의해 우리는 금원의 성품과 호방했던 삶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호동서락기>의 발문을 쓴 죽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록 작은 책이지만 파도가 성대하게 만 리에 출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시는 모두 27편으로 거문고가 울리듯 쟁쟁하는 소리가 있다. 시와 문은 그 사람의 목소리와 말씀 일부인즉 어찌 금원을 알기에 충분하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단산에 내리는 비만으로도 가히 전체를 상상할 수 있으니 이를 진귀하게 여길 만하다." - <호동서락을 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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