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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놀이' 기대했단 아이 말에, 울컥했다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⑦] 나는 다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을까

등록|2023.01.04 12:35 수정|2023.01.04 15:35

마을 방과후 활동_공동체 놀이 시간에 돼지 씨름을 같이 하고 있다. ⓒ 장영진


2022년 2월 26일 마지막 조합 행사를 마치고 터전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던 4월, 나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마지막 터전 졸업식 때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졸업장과 수료증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3월 중순부터 언제 가야 하나, 날짜를 고민하다 미루고 미뤄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힘들어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고,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바삐 지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였다. 아이들을 다시 마주하는 게 어려웠다.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헤어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제누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의 모습을 봤을 때 왠지 안타까운 마음과 허탈한 마음이 들까 봐,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든다 한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을 느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방과후 활동_1, 2학년 하교지도. 아이들과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져서 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이다. ⓒ 장영진


아무튼, 어렵게 마음을 다잡고 학교로 갔다. 학교 정문 앞 지킴이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할 때였다.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건물 현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까이 오자 예전 터전에서처럼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팔을 벌렸다. 늘 그랬다는 듯이 아이들이 "안테나!" 하며 뛰어왔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포옹하며 안부를 물었다.

"오늘 왜 왔어? 무슨 일 있어?"
"뭐야? 왜 온 거야?"
"아니, 저번에 졸업식 때 못 온 아이들 수료증이랑 선물 전해주려고 왔어. 겸사겸사 너희들 얼굴도 보고."


인사를 나누고 한두 마디 했을까? 모처럼 만나러 온 내 마음도 모른 채 아이들은 금세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댔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친구들을 구경하느라 바빴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 자기 것의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참았을까, 학교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짠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아이고 이젠 아이들에게는 학교, 학원, 스마트폰뿐인 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안다. 이 열기는 몇 개월이면 식을 걸 말이다. 처음 몇 개월 정도만 푹 빠졌다가 얼마 되지 않아 흥미를 잃겠지만 그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어지는 걸 어쩌랴. 아이들을 지켜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 때였다. 6학년 아이 하나가 나에게 오더니 말했다.

"안테나, 나랑 얼음 땡 하자"
"엥? 웬 얼음 땡? 지금 그게 하고 싶어? 갑자기?"
"응, 요즘에 계속하고 싶었는데 못했어."
"근데 그걸 지금까지 참았어? 애들한테 같이 하자고 하면 되지."
"아니, 애들이 요즘 게임 한다고 잘 안 해."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듣다가 그게 아니라며 단지, 게임 한판 하고 하려고 했는데 안 기다린 거라며 투덜거렸다.

"어차피, 태권도 가면 피구 하잖아."
"피구 말고 다른 공동체 놀이가 하고 싶은 거라고."


예전 터전에서 말싸움하듯 금세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아이들끼리 옥신각신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옆에서 4학년 아이가 한마디 한다.

"그래서 공동체 놀이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에이, 괜히 기대했네."

갑자기 '기대했네'라는 말을 듣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왜 그런 걸까? 생각하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 와중에 스마트폰을 보느라 대화에 신경도 쓰지 않는 아이 몇몇이 보였다. 씁쓸한 마음도 같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일정에 따라 이동했고 공동체 놀이는 다음을 기약했다.
 

마을 방과후 활동_아이들과 놀이 시간에 줄 씨름을 하는 중이다. ⓒ 장영진


'다음에 꼭 놀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말했던 마지막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에이 괜히 기대했네.'

아이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공동체 놀이? 즐겁게 놀던 기억? 친구들과의 시간? 갑자기 그중에서 어떤 것도 아이에게 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에 잠시 생각을 멈췄다. 멈추지 않으면 당장에 아이들과 약속을 잡을 거 같았다. 하지만 약속을 잡는다 해도 이제 나에겐 그런 시간과 공간이 없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뛰어놀던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는 왜 그렇게 아이들의 모습과 말들이 떠올랐을까? 왜 그렇게 마음이 쓰이고 답답해했을까? 아마도 '하제누리 공동육아방과후'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이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닐까? 나에게 공동육아방과후는 어떤 곳이었을까?

처음 '하제누리'에 왔을 때 아이들과 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재밌게, 잘 놀기 위해선 그냥 놀기만 하면 안 됐다. 건강한 신체와 더불어 공동체로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 사회성도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수성과 다른 교육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일상에서 녹아들어야 했다. 다양한 생활 교육을 통해 아이들만의 생활문화 또한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 문화 안에서 자유롭게 놀고 생활하면서 아이답게 성장해 갔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은 없다.
 

마을 방과후 활동_단오날 창포물에 아이들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 장영진


조합을 정리하기 5년 전부터 향후 미래에 대해 예측을 했었다. 가입 예상 인원부터 인건비 및 운영비, 보육료 산출 등을 통해 어려움을 예상했으나 뾰족한 돌파구를 찾는 건 어려웠다. 홍보팀을 꾸려 지역에서 활동도 하고 학교에 진출해 마을연계사업도 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들 또한 모색했으나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비인가 돌봄 기관일 뿐이라 어느 곳에서도 재정적인 지원이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긴 시간 동안 토론을 거친 끝에 조합을 정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정리는 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이곳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또 허망하기도 했다. 어디 가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력이지만, 아이들, 부모들과 함께 지내온 삶과 교육적 가치들이 한순간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고, 또 다른 현장으로 갔을 때 나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도 앞섰다.

'나는 다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을까?'   교사로서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고민. 아이들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어떤 것들로 채워야 할지 계속 생각하고 부모님들과 함께 노력했다. 어른의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대상. 이 어려운 과제를 안고 10년 동안의 시간을 지내왔다. 그런데 그곳이 사라진 후 아이들은, 그리고 나는 과연 어느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일까?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시간은 어디에 남겨 있는 것일까? 과연 나는 공동육아방과후가 아닌 다른 현장에서 일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다시 친구들과 공동체 놀이를 하며 뛰어노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터전'이라는 공간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아이들과 나는 잃어버린 게 참 많은 것 같다.


글_장영진(별명:안테나)
지붕 위 안테나가 전파를 전달하고 연결하듯, 아이들과 마음을 연결하고 함께 즐거운 일상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전) 인천 좋은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하제누리 초등방과후 교사
덧붙이는 글 * 인천에 자리하고 있던 하제누리 마을 방과후는 2022년 2월에 문을 닫았다.
* 돌봄 노동자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는 1월 12일 극장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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