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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상] 말(語)에도 그늘진다

제5회 <오마이뉴스> 통일염원 글짓기 수상작, 박성빈(홈스쿨, 시)

등록|2022.12.13 15:04 수정|2022.12.13 15:05
나 시집올 때 기억나?
이뻤지, 그러니까 결혼했지.
우리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이렇게 보고 얼마나 좋아.
곧 둘 다 죽겠지, 뭐.

말에도 그늘이 지는 줄 처음 알았다.

지금 살고 있는 데가 어디라고 했지?
물어 뭐해. 같이 가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알아는 놔야지. 개성이랬지, 개성?
살아서 보니 좋아, 영감 보지도 못하고 죽을 거면 내가 왜 산 거야?
그렇지, 나도 이제 원 없어.

짧은 말 몇 마디에
비 맞은 단풍 같은
설움이 내려앉았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
만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지지 않는 건데.

살아있는 거 알았으니 됐어.
이제 제사상 대신 생일날 미역국 끓여 놓을게.

내 걱정 말고 잘 사슈.

겨우 이태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졌다
이틀을 만났는데

이산가족 상봉이 10분 후면 종료된다는 방송이 이어지고
노부부는 거친 손을
오래오래 놓지 못했다.

말에도 그늘이 지는 줄 처음 알았다.

박성빈(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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