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렇게나 입맛이 달라도... 식판은 깨끗합니다

먹고 싶은 고기도, 라면도 다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하는 주말 점심

등록|2022.12.19 14:16 수정|2022.12.19 14:19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오늘 점심은 고기 먹을까?"

토요일 점심,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족들에게 한마디 툭 던져본다. 다들 '고기'라는 단어에 반가운 얼굴이다. 이럴 때 먹으려고 준비해놨지. 자신 있게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삼겹살을 꺼낸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지?

"뭐야, 소고기 먹는 거 아니었어?"
"엄마, 나는 오리고기!"
"아니야, 치킨 주세요."


가족은 서로 닮는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그렇다. 특히 첫째는 성격과 체질이 날 닮았고, 둘째는 남편을 두루두루 빼닮았다. 남편과 나는 외모는 다르지만, 가치관이 비슷하다. 그런데 식성만큼은 예외다. 네 명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달라도 너무 다른 가족들
 

▲ 아이들은 싫어하는 반찬이 있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나중엔 식판을 깨끗하게 비웠다. ⓒ 오지영


일단 고기 하나에도 이렇게 의견이 엇갈린다. 고기라는 단어에 서로 다른 고기를 떠올리다니. 정말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하지만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결국 나와 남편이 먼저 백기를 든다. 아이 둘은 끝까지 설전을 벌인다.

겨우 하나의 고기로 통일할라치면 이번엔 부위나 조리법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살이 많은 부위냐, 기름이 많은 부위냐. 굽느냐, 찌느냐, 튀기느냐. 소금으로만 간을 하느냐, 간장이나 고추장 양념을 하느냐.

이럴 때 주방장은 힘들다. 음식을 만들고 치우는 것도 힘든데, 메뉴를 고르는 단계에서부터 진을 빼기 때문이다. 종종 아이들은 '그럼 다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럼 매 끼니 계속 부엌 앞에 붙어있어야 할 테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타협안을 내놓는다.

"그럼 점심에는 오리고기 먹고, 저녁에는 치킨 시켜 먹자."

내 말에 둘째의 입술이 부루퉁 튀어 나왔다. 엄마는 형 말만 들어주고, 자기 말은 들어주지 않는 거라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게 이렇게까지 속상한 일인가 싶지만, 일단 둘째의 마음을 달래주기로 한다. 나는 쪼그려 앉아 둘째와 눈을 맞춘다.

"그게 아니라 치킨 가게가 이른 시간에 안 열어서 그래. 저녁이 되야 열거든. 이따 네가 좋아하는 치킨으로 시켜줄게." 내 옆에 있던 첫째가 그 말을 듣더니 "아, 나는 그 치킨 싫은데" 하고 투덜거린다.

우리 가족은 배달 음식을 시키는 날에도 대립 구도를 펼친다. 남편은 짬뽕, 첫째는 족발, 둘째는 치킨을 먹겠단다. 사실 나는 회를 먹고 싶었다. 최소한 중식인지 양식인지 정도는 타협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어디서부터 조율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외식도 쉽지 않다. 뭐 먹을까? 어디 갈까? 정하는 게 일이다. 그냥 가격이 좀 있더라도 마음 편하게 뷔페를 갈까 하고 있노라면 누군가 중얼거린다. '나는 그냥 집에서 먹고 싶어.'

간혹 이렇게 취향이 달라서 좋은 점도 있다. 예를 들면, 치킨을 먹을 때도 서로 좋아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남편은 가슴살을, 나는 날개 부위를, 첫째는 닭 다리를, 둘째는 그 외의 부위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으니. 어디 치킨을 시킬 것인지, 무슨 맛으로 시킬 것인지 정해야 한다.

어쨌든 오늘 점심은 오리구이로 정했다. 프라이팬에 오리고기를 굽고, 다른 프라이팬에는 둘째가 좋아하는 호박나물을 볶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냉장고에서 김치들을 꺼낸다. 남편이 먹을 묵은지, 내가 먹을 겉절이, 그리고 아이들이 먹을 백김치가 나온다.

아이들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주었다. 둘 다 식판을 보더니 한마디씩 한다. 나는 오리고기 안 먹을 건데 왜 줬냐, 나는 호박나물 별로인데 왜 이렇게 많이 주냐. 결국 내 인내심도 한계가 다다랐다.

"자꾸 그렇게 불평만 할 거면 둘 다 먹지 마. 엄마가 다 먹을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식판을 뺏길세라 식판을 꾹 잡는다. 그리고 슬며시 수저를 든다. 다들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한다. 메뉴를 타협하느라 오늘따라 유난히 밥 시간이 늦어져 배가 고팠을 테다. 어느새 둘째는 싹싹 비운 식판을 내민다.

"엄마 오리고기 더 주세요."

방금까지 절대 오리고기는 안 먹겠다던 둘째가 생각나서 픽 웃었다. 슬쩍 보니 첫째도 호박나물을 조금씩 집어먹고 있다. 갓 지은 밥, 방금 만든 반찬의 냄새, 그리고 옆에 앉은 누군가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면 입맛이 돌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먹어야 좋지
 

▲ 우리가족은 좋아하는 라면도 각자 달라서 다른 종류의 라면을 4개 끓인다. ⓒ 오지영


사실 메뉴를 고르고, 숟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옥신각신하는 우리 가족이지만, 막상 밥을 먹기 시작하면 모두가 불평 없이 잘 먹는다. 음식 대신에 각자의 수다가 반찬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요즘 나의 고민, 학교에서 재미있었던 일,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펼쳐 놓는다. 물론 여기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만 하지 않도록 조율은 필수다.

평일 점심은 나홀로 먹는 편이기에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주말의 점심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굳이 고르자면 나는 후자가 더 좋다. 음식보다도 가족들의 이야기가, 웃음이 더 맛깔난다.

아무리 닮은 가족이라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는 그런 부분들을 이해하고 맞추며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싶은 메뉴를 양보하기도 하고, 절대 안 먹겠다던 반찬을 맛보기도 한다.

비단 가족뿐 아니라 사회에서 마주하는 많은 이들과도 유사한 경험을 할 것이다. 서로 먹고 싶은 메뉴가 다를 때, 회의에서 의견이 나뉠 때, 서로의 성격이 상이할 때.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기를.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그 과정이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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