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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처럼 살던 부부... 아내가 암에 걸리자 남편의 반응

[리뷰]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등록|2022.12.19 13:45 수정|2022.12.19 13:45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왓챠


"당신이 좀 해줘."

그러자 남편은 아내 대신 부엌으로 향했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속 내용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석규 배우가 오랜만에 선택한 작품이다. 그에게 요리를 해달라는 아내는 김서형 배우이다. 그런데 아내 대신 부엌으로 향하는 남편의 사정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아내가 암에 걸리자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극중 부부로 등장하는 강창욱(한석규 분)과 정다정(김서형 분)은 그간 한 집에 살지 않았었다.
 
"남편과 아내, 이 둘이 꼭 특별한 관계여야 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속 강창욱의 내레이션으로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아내 얘기, 남편 얘기, 자식들 얘기가 바글바글하다. 내 새끼, 내 남편, 내 아내, 다들 자신의 '것'들이라는 존재들과의 아웅다웅이 넘쳐난다. 그런 사연들을 듣다 문득, 홀로 사는 아내, 남편 그도 아니면 싱글족들의 존재들은 어디서 자신들을 펼쳐내야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내와 남편과 자식이라는 '가족' 단위가 사회의 기초 단위인 듯 행세한다.

그런데 한 발자욱만 나서면 그 평범과 보통이라는 선 바깥에 많은 이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다. 강창욱과 정다정도 그런 사이였을 것이다. 글을 쓰는 남편,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내, 한때는 함께 출판사를 운영하는 동료이고 아내이고 남편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남남처럼 산다.

그렇다고 아예 남남은 아니다.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의사는 잘 챙겨먹어야 하는 아내의 병구완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했고, 쉬이 남에게 부탁같은 걸 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돌봐달라 했다. 그리고 남편은 두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의 아내, 그리고 현관 옆 방의 남편. 남편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다. 사랑? 의리?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두 사람이 싱거운 웃음을 날리듯, 강차욱과 정다정이라는 두 부부의 정체성은 뭐라 해야 할까?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왓챠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인문학자 강창래가 암투병중이던 아내를 위해 했던 요리 레시피를 글로 엮은 책이 원작이다. 글도 좀 쓰고, 아는 것도 많은 인문학자였지만 라면 밖에 끓일 줄 몰랐던 강창래는 어떤 음식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부엌에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 들어선 부엌이 어디 그리 만만한 곳인가.
 
'시금치 나물..... 익숙해서 사온 것일 수도 있다. 만들기도 간단하니까. 소금이나 간장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래야 하므로. 처음에는 비닐 장갑을 끼고 무쳤지만 요즘은 손을 잘 씻고 맨 손으로 무친다. 나물은 손맛이 빠지면 섭섭하다. '

암환자인 아내를 위해 정성껏 맨손으로 간조차 안 한 채 무친 시금치 나물, 어땠을까? 서둘러 출근하던 아내에게 한 술 뜨기를 권했는데, 시금치 나물을 한입 먹은 아내는 휴지를 찾는다. '도저히 못 먹겠다'. 간이 안 된 시금치 나물이라, 극 중 강창욱이 블로그에 올린 글은 그럴 듯했지만, 그의 정성과 상관없이 음식 좀 해본 이가 보기에도 먹을 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입맛을 잃은 아내를 위해 다음에 남편이 도전한 건 잡채이다. 여전히 간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 대로 해보기는 했는데 어쩐지 폼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창욱이 선택한 요리의 '픽'은 작은 고추가 맵다는 그 작은 고추이다. 작은 고추를 몇 개나 넣은 잡채, 붉은 빛이 더해지니 한결 요리가 산다. 그렇다면 맛은? 한 입을 먹은 아내는 사레들린 듯 기침을 해댄다. 요리 초보인 강창욱은 그 작은 고추가 얼마나 매운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외려 아내는 그간 입맛을 잃었었는데 매운 맛이 입맛을 돌게 한다며 기침을 하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아내에게 음식을 먹게 만든 건 잡채의 맛이었을까, 남편의 정성이었을까.

"니 아버지는 요리를 하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더 긴 거 같아."

아내가 웃으며 말하듯 강창욱의 요리는 여느 주부의 요리와는 좀 다르다. 암투병 중인 아내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인문학자인 그답게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좀 다르달까? 아내가 먹고 싶다던 제주도 돔베 국수를 위해서 그 유래부터 시작하는 폼새가 그렇다. 거기에 제주도 돔베 국수니 제주 돼지 주문을 필수이다. 이런 스타일의 자기만의 요리를 하고, 그 레시피를 블로그에 적는다. 그런데 그의 레시피를 읽은 이들은 슬프다고 한다.

가족? 식구?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왓챠


아내가 아파서 요리를 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담담하게 써내려가 그의 글귀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념에 젖게 만든다. 드라마는 강창욱이 쓴 그 블로그 글과도 같다. 서로 헤어져 살았던 부부 그리고 이제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 그런데 그들은 한 번도 이른바 '감정'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섭섭했던 것, 죽음이라는 관문 앞에 선 서러움, 우리가 이런 소재의 드라마들 속에서 늘상 접해왔던 감정의 분출이 이 드라마에는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한석규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공중파가 아닌 왓차 오리지널이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가 블로그 속 남의 삶을 엿보듯, 그렇게 강창욱과 정다정을 관조하게 된다. 그런데 블로그를 본 이들이 거기서 감정을 느끼듯, 외려 회차를 거듭할수록 서로 헤어져 살았다는 이 부부의 진득한 부부애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부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앞서의 '부부란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라는 그 특별한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엄마와 아버지의 그런 동거를 이해할 수 없는 이가 있다. 엄마와 자기를 두고 훌쩍 집을 나갔다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은 대학 입학 선물로 독립을 선언한다. 물론 아들의 반항은 엄마의 병세 앞에서 무기력하게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앙금이 당장 없어진 건 아니다.

드라마는 '식구(食口)',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정의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긴 간극도 보리 굴비를 통해 풀어간다. 아들을 위해 요리하는 아버지, 엄마를 위해 함께 요리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엄마의 미소. 엄마는 그저 자신을 병구완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 그녀에게는 또 다른 큰 그림이 있는 것일까?

남편에게 자신의 병구완을 맡겼지만 서로 떨어져 살았던 시간의 서먹함이 당장 해소되는 건 아니다. 남편이 만든 시금치 나물을 정색하며 뱉어내던 아내는 너무 매운 잡채에 긴장을 풀고, 몇 날 며칠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낸 돔베 국수에 얼굴을 핀다. 분리되었던 가족이, 관계가 주방의 남편이 만들어 내는 음식들을 통해 조금씩 다시 가족이라는 자리를 찾아간다. 여전히 그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돌아가지만 한결 가족같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얼까? 드라마를 보다 문득 되묻게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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