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와 공공임대에 대한 윤 대통령 발언, 놀랍다
'서민 위해' 다주택자 세금 깎고, 공공임대 공급 중단해 집값 떠받친다?
▲ 국정과제 점검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패널들과 함께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한 발언들이 화제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다주택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과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다주택자가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나
윤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면서 나는 두 번 놀랐다. 한번은 저렇게 잘못된 말을 하는데 놀랐고, 다음번은 저렇게 그릇된 인식을 모든 국민들 앞에서 저토록 자신 있게 밝힌다는 데 놀랐다.
윤 대통령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임차인에게 (임대료 등의 형식으로) 전가된다는 본인의 주장에 무려 "시장의 법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윤 대통령이 사용한 '법칙'이란 말은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진리인 공리(公理)와 동일한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임차인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은 법칙이나 공리는 고사하고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다주택자들이 세금 전가를 임차인들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는 다주택자들이 임대료 등의 가격 결정을 언제나 자기 뜻대로 관철시킬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전세가격 폭락과 역전세난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주택자들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운 나머지 임차인들을 걱정해 전세를 낮추고 있다는 소린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윤 대통령이 입만 열면 말하는 시장이라는 곳은 수많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존재하고 정부 정책을 비롯해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허다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가격이 형성되는 장이다. 다주택자가 임대료 등의 가격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으며, 임차인들을 위한답시고 다주택자에게 중과세를 해봐야 다주택자들이 이를 전부 임차인들에게 전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곡학아세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폭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을 굉장히 선(善)으로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만.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다 보면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상당한 재정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 되고, 전반적으로 우리 경제의 부담 요인으로, 또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저희는 민간과 공공임대를 잘 믹스해서 공급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적의 드러낸 대통령
▲ 오체투지 나선 내놔라공공임대농성단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통과 촉구”내놔라공공임대농성단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공임대 예산안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적의(敵意)를 드러낸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본격화된 이래 여러 보수 정부들이 있었지만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후퇴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동의했고,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공공임대주택 확충이 민간 임대차시장에서 소외된 주거빈곤층에게 양질의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전체 주택시장의 주거안정성을 제고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윤 대통령은 한국사회가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누대에 걸쳐 이룩한 사회적 합의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공공임대주택을 세금 먹는 하마이자 경제 부담 요인이자 경기 위축 요인으로 폄하하고 있다.
우선 윤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노태우 정부 이래 공공임대주택 총량이 기록적으로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이는 LH가 신도시 및 택지개발지구 개발을 하면서 생긴 천문학적 이익을 재원으로 삼아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일종의 편법이자 정부의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재정으로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LH에게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건설 및 유지에 투입하는 재정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또한 세금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부건 납세자건 경제 부담요인 운운하는 소리는 성립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경기 위축요인으로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시각은 놀라움을 넘어 참혹한 수준이다. 아마 윤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이 늘어나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경기가 위축된다고 보는 듯 싶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공공임대주택을 경기 위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사람이 있었던가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다주택자 세금 중과 및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윤 대통령은 임차인을 근심(?)하며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감면을 추진할 뜻을, 정작 임차인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에 대해서는 관심을 끌 것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부는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조세, 대출, 재건축, 임대사업자 등 부동산에 관해 할 수 있는 정부 정책 모두를 부양 방향으로 풀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윤 대통령의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 발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쯤에서 정녕 궁금해진다. 윤 대통령이 꿈꾸는 대한민국에는 누가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나라에 중산층과 서민은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태경 기자는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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