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박지현이 민주당에서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애증의 인터뷰] "한숨을 위로하는 정치를 펼치고 싶어요"

등록|2022.12.22 13:39 수정|2022.12.22 13:56
<애증의 인터뷰>는 정치에 대한 '애증 전문가'인 정치인에게 정치를 대하는 마음을 들어보는 인터뷰입니다. 소속을 정하는 입장보다는 교차로에 서 있는 고뇌를, 정해진 답변보다는 평소 안고 있던 질문들을 들어봅니다.[기자말]
2020년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이 '추적단 불꽃'에 의해 폭로됐다. 두 명의 기자로 이뤄진 불꽃은 잠입 취재와 경찰과의 공조로 사건을 공론화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권은 'n번방 방지법'을 제정하며 재발 방지 요구에 호응하는 듯 했지만,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고 텔레그램 내 성착취는 반복됐다.

추적단 기자 '불'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정치인 박지현'이 되기로 했다. 박지현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고, 지방선거 기간에는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를 뒤따른 건 수많은 '논란'이었다. 당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는 '내부 총질'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박지현은 이것이 민주당을 위한 길이라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지난 14일 박지현을 만나, 짧고도 길었던 정치 경력 1년을 함께 돌아봤다.

박지현이 정치를 보며 느끼는 감정

❤️ "나는 정치가 한숨을 위로하는 일이라 좋다"
  

▲ "나는 정치가 한숨을 위로하는 일이라 좋다" ⓒ 애증의 정치클럽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면 받는 분들을 챙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내쉬는 한숨을 위로할 수 있어 좋아요."

💔 "나는 정치가 변화의 속도가 느려서 아쉽다"
 

▲ "나는 정치가 변화의 속도가 느려서 아쉽다." ⓒ 애증의 정치클럽


"가장 시계가 느린 곳이 여의도라고 하죠. 사회에선 이미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속도를 못 내고 있어요. 숙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도를 내야할 때도 있어야 해요. 모든 부분을 정쟁화해서 협상해야만 하는 모습이 아쉬워요."

💪 "나는 '정치인'이라는 단어의 인식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 "나는 '정치인'이라는 단어의 인식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 애증의 정치클럽


"정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이라고 하면 '정치인이야?'라는 부정적인 반응부터 나와요. 정치가 할 일을 마땅히 하는 정치인이 돼서, '정치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비대위원장이 되고 느꼈다, 권력을 써야 한단 걸"

- 정치인이 되시기 전에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추적단불꽃 활동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는 나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한 50대쯤 돼서 나도 정치 한번 해보고 싶다' 정도? 27살이라는 나이에 이렇게 정치 전선에 뛰어들게 될 줄도 몰랐고, 비대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는 건 더더욱 상상 못 했어요. 평범한 20대 대학생답게 내 알바 시급, 수업 듣고 취업하는 게 훨씬 중요했어요. 정치를 시작하고 그게 다 정치와 연관된 일인 걸 알게 됐죠."

- 기자라는 직업을 준비하신 이유도 정치와는 무관했던 걸까요?

"기자는 사회 문제를 발견해 공론화시켜 해결의 첫걸음을 떼는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고요. 근데 정치인은 기자가 발굴한 의제를 제도로 변화시키는 사람이죠. 두 가지 직업 모두 제가 바라는 '일의 정체성'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기자를 꿈꿀 땐 정치부보단 사회부에 관심이 있었고,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매진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죠.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라는 건 우리 사회에서 합의가 됐어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범죄가 일어나고 이전에 발생했던 피해 영상물도 계속해서 유포되고 있는 거예요. 이 뿌리를 끊어내는 건 결국 정치가 나서야 하는 일이거든요."

- 사실 활동가 때부터 하던 이야기를 정치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시잖아요. 현재 자리에서 나의 발언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비대위원장이 되고 나서 한 달쯤 지나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간담회를 연 적이 있어요. 활동가로 일할 때는 국회의원 한 명을 만나기가 힘들었는데, 위원장이 되고 '간담회 열고 싶어요' 한마디 하니까 자리가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렇게 권력을 써야 된다는 걸 느꼈죠."
 

▲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 애증의 정치클럽


- 앞으로 정치인 박지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비대위원장이 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그 분들은 현재 자신의 처한 상황의 해결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치인을 만나요.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제가 생각해봐도 다 타당한 이야기들이고 정치가 해야하는  일들이죠. 그런데 제가 약속을 하고 그 일을 하기엔 비대위원장 임기가 너무 짧은 거예요. 그동안의 약속들에 대한 부채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당 대표 출마도 했던 거고요.

앞으로 어떤 자리를 맡게 될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당장 제가 정치를 하면서 느꼈던 건, 나 혼자 해서 될 게 없고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세력,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포럼을 준비하고 있어요. 각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넓히면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주체가 되는 거죠."

'이상한 존재' 박지현의 시간 

-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신 것에 대해 '내부 총질'이라는 표현도 나왔는데요. 그동안 여의도의 문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오셨는지 궁금해요.

"저한테 비대위원장을 맡긴 건 앞으로 반성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의도였을 거예요. 지방선거 유세 현장을 다니면서 시민 분들을 만났는데, '180석을 줬는데 2년 동안 뭐 했냐? 뭘 잘했다고 우리가 또 표를 주냐?'고 많이들 말씀하셨어요. 면목이 없었죠. 그래서 사과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 약속을 지키고 변화하는 민주당이 되겠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런 것들이 결국 다 내부 총질로 비춰졌죠.

당 내에서 세 번의 광역단체장 성범죄 사건이 있었잖아요. 셋 다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 했어요.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선거라는 대의 앞에서 피해자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할 수 없나?'라는 분위기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정치의 본질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선이 아닌 '당선'이 우선이 돼버린 거예요.

적어도 제가 살아왔던 짧은 인생 동안 상식이라 믿어온 것들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걸 보면서 답답했죠. 당 내 인물들이나 지지자들에겐 제가 이상한 존재로 느껴진 것 같아요."
 

▲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 애증의 정치클럽


- 사과하는 것만으로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성이라는 반석을 튼튼하게 한 다음에 비전을 얘기할 수 있어요. 선거에서 비전만 얘기하는 건 이전에도 민주당이 계속해왔던 방식이었거든요. 차별금지법도 사실 15년이 지난 민주당이 지키지 않은 큰 약속이죠. 갑자기 '앞으로 뭐 잘하겠습니다' 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과연 이 말을 믿으실까 싶어요.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의 전략은 쇄신론이 아닌 견제론이었어요. '허니문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자는 거죠. 저는 견제론보다 쇄신론이 맞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고 그 점에서 제 생각과 당의 생각이 좀 달랐죠."

- 여의도 정치인이나 민주당이 밖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당대표에 출마한다고 하자, 국민 여론조사 지지율이 9% 가까이 나왔어요. 약 10명 중에서 3위였는데(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2022년 7월 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상대로 민주당 차기 당대표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당원 조사는 거의 꼴찌였죠.

제 지지도 뿐만 아니라, 일명 '검수완박' 강행 당시에도 당원들은 찬성률이 굉장히 높았지만 국민 여론조사는 좋지 않았어요. 검찰 개혁은 우리가 당연히 해결해야 할 아젠다지만, 이 시기에 이렇게 강행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던 거예요. 이 부분에 있어서 분명히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있다고 느꼈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선거에 이길 수 있는데, 민주당 적극 지지자들의 의견만 듣다 보니까 외연을 확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의도 바깥의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그게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 계속 민주당 안에서 이 일을 해나가려고 하시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어요.

"민주당은 민주화를 이룬 정당이고, 계속해서 서민과 중산층 옆에서 아픈 목소리를 들어온 정당이에요. 그 당이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또 당적을 바꾸기에는 제가 있었던 기간이 너무 짧으니, 일단은 조금 더 있어보겠다는 거죠. 또 결국에 다당제를 이루는 것도 권력이 있는 이 양당 안에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치'  

- 지난 1년이 인생에서 가장 고된 시간이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럼에도 정치를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적단불꽃 활동할 때도 힘들었죠. 그래도 당시에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라는 동력으로 버틸 수 있었어요. 정치권에서 더 힘들었던 이유는, 제가 생각했던 정치의 이상이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제가 디지털 성범죄자에게 공격을 받는다면 이해가 되겠는데, 우리 당 지지자들한테 공격을 받으니 굉장히 아프더라고요. 가족들을 모욕하고 신상을 터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진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정치라고 믿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정치인이 아닌 사람은 내가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 투표 말고 어떤 걸 해볼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는 게 워낙 많아서요. 정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여의도에서 하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잖아요? 우리 삶을 바꾸는 그 모든 역할이 저는 정치라고 봐요. 넓게 보면 제 추적단불꽃 활동도 정치의 일환이었고, 봉사활동이나 심지어 제가 생각하는 의제에 대한 독서 모임을 하는 것, 또 우리가 직접 정당에 가입해서 당원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국회의원들에게 의견을 전달한다다거나 하는 일들도 정치의 일환이죠. 더 나아가서는 시민참여조례나 시민자치회 같은 보다 직접적인 활동도 있고요.

연말이니만큼 보다 따뜻한 소식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대호 님도 여기 인터뷰 하셨었잖아요? 대호 님이 했던 '계단 뿌셔 클럽' 처럼,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분들을 위해 활동하는 일에 같이 참여를 해주셔도 너무 좋죠. 당장은 작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일들부터 우리가 짧은 시간, 작은 노력이라도 들여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삭막해졌을까를 생각을 해보면 각자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 삶이 안녕하지 않은데 내 타인의 안녕을 바라긴 힘들죠. 당장 내 밥벌이가 중요한데, 난민이나 이주 노동자 이야기, 기후위기,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타인을 위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점에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죠."
덧붙이는 글 뉴미디어 '애증의 정치클럽'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많은 소식은 https://lovehateclub.com/ 에서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