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 사회적 책임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
[주장]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기업분할, 합병에 대한 사회적 규제 강화해야
▲ 민주노총 배달플랫폼지부 배달노동자 300여명이 5월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배달료 거리 깎기 중단' 촉구 집회 및 오토바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10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카카오모빌리티 간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프로서비스 유료화 단계적 폐지 ▲대리 요금 수준 현실화 ▲취소 수수료· 대기료 정책 마련 ▲대리기사 심야 이동권 개선을 위한 협력 등이 주요 내용이다. 교섭을 시작한 지 1년, 카카오모빌리티가 대리운전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온 지 2년 만에 체결한 협약이다.
단체협약 체결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결과이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상당수의 협약 내용이 "구체적인 내용은 후속 논의한다", "함께 모색한다" 식이다. 배정 정책(알고리즘)에 대해서도 교섭 대상임을 확인한 것 외에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방기되고 있는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서 한국 역시 플랫폼 자본이 각 사업 영역에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고, 소수의 플랫폼 대기업이 플랫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경제'로 치달아가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기업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산을 플랫폼에 가입된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웃소싱 하고 있고, 중간 수수료를 취득함으로써 수익을 얻는다. "세계 최대 택시회사인 우버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가장 큰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는 소유한 부동산이 없다"라는 등 플랫폼 기업을 혁신의 상징처럼 얘기하지만 '독립계약자' 신분으로 내몰린 노동자가 없으면 단 한 푼의 이윤도 획득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 문제만이 아니다. 플랫폼 기업의 정보 독점 문제, 시장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불공정 거래 행위, '무료 이용→최소비용 부과→비용 인상'으로 이어지는 플랫폼 기업의 수익모델은 플랫폼 이용자이면서 정보의 원천인 시민들과 영세자영업자를 볼모로 삼고 있다.
시민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주권은 박탈되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플랫폼 기업에 더 강하게 속박되고 있다. 정보인권과 경제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정부는 오히려 플랫폼 자본의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한 규제 완화 방안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가운데 플랫폼 자본의 사회적 책임은 방기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외국의 논의 현황
▲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준) 조합원들이 4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안전베달제, 산업재해전속성기준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최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나,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특화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존의 CSR 논의에 더해서 긱 경제(gig economy)에서의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호, 알고리즘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 플랫폼 이용자의 정보 주권 및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일반정보 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 tion)' 통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무성에 대한 규범적 쟁점과 논의를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GDPR은 유럽의회를 통과한 후 2016년에 발효되었으며 2018년 5월부터 모든 조직이 준수해야 한다. 특히 일반정보 보호 규정은 정보 주체가 프로파일링에 반대할 권리,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 그들을 수집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있으며, 수집된 개인정보에 관해 통지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즉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업체가 수집한 자신의 정보뿐만 아니라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일감이 배분되고 통제되는지에 대한 알고리즘의 작동과정을 설명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2021년 1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노무 제공 플랫폼 기업을 노동법의 '사용자'로 추정하는 입법지침(안)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일정 요건 (5가지 기준 중 2가지 이상 충족)에 해당하면 노무 제공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아 소득을 얻는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 이 입법지침이 유럽의회를 통과하면, 회원국들은 2년 안에 이 지침에 따라 국내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이 지침(안)은 디지털 노동 플랫폼에 의한 알고리즘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작업 조건에 대한 인간의 모니터링을 보장하며 자동화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새로운 권리는 노동자와 진정한 자영업자 모두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2018년 3월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일자리De- cent Work in the Platform Economy'라는 보고서를 G7 Employment Working Group에 제출했다. 보고서에서는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정책 쟁점에 대해 불완전 고용, 낮은 임금, 미지급 임금, 고충처리 기구, 사회보장 적용 등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논의를 위해 노동자·사용자·정부 그룹이 각각 추천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의를 진행했고, 회의결과는 ILO 이사회에 보고됐으며, 이후 협약(Conventions)을 준비하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한국의 더딘 논의 수준
한국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현행법상의 규제로는 전자상거래법,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공정거래법 등이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관련 법률은 아직 없다.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및 시장에 대한 규율 법률안으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안'(공정거래위원회 발의),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전혜숙 의원 대표발의) 등 현재 국회에 11건의 관련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에 관한 법률안'(윤영찬 의원 대표발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류호정 의원 대표발의) 등 2건이 발의되어 있다. 류호정 의원 대표발의안은 알고리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 이해관계자가 설명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알고리즘에 관한 최소주의적 규제를 통해 공정 경쟁과 노동자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상임위 논의는 지지 부진한 상태이다.
플랫폼 노동자 관련 법률안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장철민 의원 대표발의,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 2개가 발의되어 있다. 두 법안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를 우선 '플랫폼 종사자'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후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경우 노동법을 우선 적용한다는 식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할 경우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다.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안은 장철민 의원 대표발의안이 갖고 있는 노동자성 배제 문제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제출된 법안이다. 하지만 노동자성 없음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있는 듯 보이나, 이 역시 플랫폼 노동자를 플랫폼 종사자로 우선 분류한 후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경우에 반대 입증 책임을 플랫폼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철민 의원 대표발의안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용자 책임에서 출발
플랫폼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핵심은 노동권 보장이다. 플랫폼 사용은 '방식'의 차이에 불과할 뿐 종속성은 더 촘촘해졌고, 노동력 활용을 통한 이익 실현이라는 기업활동 방식 역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플랫폼 뒤에 숨어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업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플랫폼 기업 사회적 책임의 출발이다.
사용자 책임 부과를 위해 우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정의 조항을 개정해서 노동자 범위를 원칙적으로 확장하는 것과 함께 외양상 다양한 고용 방식에서 초래될 수 있는 노동자성 오분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별도의 분류기준이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적용하고 있는 ABC 테스트, EU의 '플랫폼 노동에서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안)에서 제안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판단 기준" 등을 준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사례의 핵심은 판단 기준만이 아니라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 및 교섭 의무를 부과해야 하고, 검증과 감독을 담당할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알고리즘을 취업규칙의 하나로 정의하고, 단 체교섭 대상에 알고리즘을 명시해야 한다. 노동권만이 아니라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 유해정보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알고리즘에 대한 사회적 규제와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 노동자가 참여하는 감독, 검증 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기업분할, 합병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 간의 영업양도나 인수합병, 분사 등의 경영 활동은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 자체를 죄악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소비자,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들은 배제된 채 자본의 이해관계만을 앞세 워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경영 활동이며,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 독과점 규제, 우월적 지위를 활용한 부당행위에 대한 규제와 함께 플랫폼 기업의 특징인 변화무쌍한 기업분할·합병에 대한 규제 강화, 기업 이전 또는 모자회사 관계에서의 노동자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2월호 '한울림'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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