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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에게 편지쓰기' 두 달 후 벌어진 일

소설 '해리엇' 한윤섭 작가의 아주 특별한 답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다

등록|2022.12.29 19:01 수정|2022.12.29 19:01
두 달 전, 교내 가을 독서 행사로 '좋아하는 작가에게 편지쓰기'를 했다. 편지지를 나눠주자 아이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쓰면 작가 선생님이 볼 수 있어요?"

원래 계획은 아이들이 쓴 편지를 도서관에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편지쓰기를 독후 활동의 하나로만 여기지 않고, 편지의 본래 목적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듯했다. 그렇지. 편지를 썼으면 전해야지. 나는 계획을 약간 바꾸기로 했다.

"우리 편지를 다 쓰면 복사를 해서 복사본은 전시하고, 원본은 작가 선생님께 보내자."
"우와! 정말요?"


작가에게 편지를 쓴 아이들
 

▲ 아이들이 쓴 편지입니다. ⓒ 진혜련


아이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자신이 쓴 편지를 작가 선생님이 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나 보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연필을 꼭 쥐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나는 아이들이 뭐라고 썼을지 궁금해 편지를 쭉 읽어보았다. 어쩜. 아이들의 편지에는 진심과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내가 작가라면 편지를 받고 무척 기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선생님들이 순간 너무 부러워졌다.

우리는 작가의 주소를 모르니 책 뒷장에 나와 있는 서지정보를 참고해 출판사 주소로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보내는 사람에는 각자의 이름과 학교 주소를 썼다. '책가방 없는 날'(체험 학습 위주의 수업을 하는 날)에 아이들과 다 같이 편지를 갖고 학교 근처 우체국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우표를 사서 봉투에 붙인 후 두근거린다는 표정으로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그후로 한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선생님, 편지 왔어요?"

아이들은 기다렸다. 부디 답장이 오기를. 하지만 교무실 우리반 우편함에는 각종 기관에서 오는 광고물만 쌓여있을 뿐 편지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도 좀 속상했다. 형식적으로라도 잘 받았다는 내용을 담은 인쇄물 하나쯤은 보내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어디에서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 날, 메신저로 교무실에서 쪽지가 왔다.

"선생님. <해리엇> 작가님이 통화하고 싶다고 연락하셨어요. 번호 남기셨으니 전화해 보세요."

<해리엇> 작가님이라니! 나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정해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다. 그중 아이들이 가장 좋았던 책으로 뽑은 책이 <해리엇>이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아이들 못지않게 이야기에 빠져 진한 감동을 받는다. 바로 작가님께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푸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판사를 통해 전해 받다 보니 아이들의 편지를 이제야 받았습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 미안합니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들과 잠깐이나마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나는 그만 너무 좋아 발을 동동 굴렀다. 편지를 잘 받았다고 직접 연락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작가님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동화책 창작뿐만 아니라 연극도 연출하시고 대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느라 무척 바쁘신 걸로 안다. 그런데도 편지를 보낸 아이들의 마음을 소중히 받아주시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자 하셨다. <해리엇>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작가님에게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가장 경이로운 답장을 받은 아이들
 

▲ 작가님은 편지를 보낸 아이들의 마음을 소중히 받아주셨습니다. 줌을 통해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진 모습입니다. ⓒ 진혜련


다음날 우리는 온라인 화상회의 줌(zoom)을 통해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졌다. 작가님은 먼저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해리엇>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을 설명해주셨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데려온 거북이가 175년을 살고 숨졌다는 신문 기사를 우연히 보고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일, '찰리'라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스무 번도 넘게 다녀온 경험 등을 책만큼이나 재밌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이들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껏 답변해주셨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써보세요.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쓰려고 하면 어렵거든요.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을 쓰면 잘 쓸 수 있어요."

"작가님의 어릴 적 꿈은 뭐였나요? 작가였나요?"
"아니요. 형사가 되고 싶었어요. 작가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작가라는 직업이 멀게 느껴졌죠. 작가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갔는데, 이 시간을 결코 잊지 못하도록 만든 작가님의 말이 있었다.

"작가님은 책을 쓸 때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책은 작은 것에서 시작돼요.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는 피어나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이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답니다."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져 탄성을 자아내며 말했다.

"와! 우리의 이야기도 책이 될 수 있대!"

이번 작가와의 만남은 단순히 즐거웠던 이벤트가 아니다. 이 경험은 분명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보게 할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책을 펼칠 때 조금 설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흘러나올지도 모르니까. 가을날 우표를 붙여 보낸 편지에 우리는 이토록 경이로운 답장을 받았다.
 

▲ 작가님을 만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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