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장관의 그 '여덟 글자'로 훼손된 대통령의 법치
[取중眞담] 신년 특별사면의 이유 '잘못된 관행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잃은 것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굳이 없어도 될 여덟 글자였다. 그런데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7일 신년 특별사면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정 수행 과정에서 당시 직책·직무와 관련하여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질러 법의 심판을 받은 주요 공직자 66명을 특별사면한다"고 발표했다. 굳이 "잘못된 관행에 따른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순간적인 착오나 실수는 아니었다. 함께 배포된 법무부 보도자료에도 역시 같은 문장이 있었다.
윤 대통령의 "면목 없고 죄송"... 다시 보인 그 말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행. 오래 전부터 해오던 대로 한 행위 또는 관례에 따른 행위란 뜻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처럼 받은 일(최경환 전 부총리)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한 행위(이병호 전 국정원장,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가 그렇다는 말이었다. 양대 노총을 와해시키려했던 어용노조 설립(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국정원 돈으로 특정 정파에 유리한 방향으로 했던 안보교육(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국정원 불법 사찰(우병우 전 민정수석), 민간인 불법사찰 폭로 입막음(김진모·장석명 전 청와대 비서관) 등도 오래 전부터 해 오던 일이 됐다.
이뿐이 아니다. 국정원과 기무사의 댓글 조작(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이나 화이트리스트 사건(김기춘 전 비서실장)·블랙리스트 사건(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관행이 됐다. 국정농단 사건들도 한동훈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잘못된 관행' 이다. 원래 사법부의 판단은 분명 달랐었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선고문 중)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당선자 신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찾아간 자리에서 "면목이 없고 죄송했다"고 말했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하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했던 이유가 현 법무부 장관의 '여덟 글자'와 맞닿아있다. 국정농단 수사 주체이기도 했던 이들에게 '국정농단'은 일종의 관행이었고, 그와 같은 인식이 이번 사면 과정에서 "잘못된 관행에 따른 불법행위"였다는 말로 드러난 셈이다. 그로 인해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위법 행위"라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역사적 정당성은 크게 훼손됐다. 훼손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소한의 사법적 정의도 훼손... "그들만의 관행"에 면죄부
▲ 2022년 4월 12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대구 달성군에 있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자택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당선인대변인실 제공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 행위를 저질러..."
이는 원인이 잘못된 관행, 즉 시스템에 있다는 뜻도 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법의 심판이 시작된 '이태원 참사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 기자회견 당시 "주최가 없는 경우는 경찰이 선제적으로 군중 관리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이라면서 "용산구청에 잘잘못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참사 원인이 잘못된 관행인 만큼 불법행위를 따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는 지난 26일 구속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입장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는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이기 때문에 사전에 안전관리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박 구청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상과 직무유기다.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은 '잘못된 관행'의 불법 여부를 가릴 때 많이 쓰는 법적 잣대다. 이에 대해 이른바 '주요 공직자'들이 박 구청장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쓰는 '방패' 또한 잘못된 관행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그랬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전 정권에서도 이같은 관행이 존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는 타파해야 할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도 "이전 정부에서부터 청와대에서 국정원 자금을 전달받은 적이 있다"는 입장으로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다. 같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 '그들의 논리' 또한 그러했다. 이에 대한 당시 재판부 판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특수활동비를 대통령에게 주는 등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지의 판단은 국민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이 국민주권이고 재정 민주주의이며 법치주의다. 만약 이 돈을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고 대통령 등에게 줘도 되는지 국민에게 미리 물어봤다면 뭐라고 했겠는가.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만 아는 '그들만의 관행'일 뿐이지 국민이 널리 알고 시인하는 관행은 아니다."
▲ 2017년 3월 10일,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당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가운데 이 권한대행이 대통령 탄핵을 인용 결정을 선고한 뒤 퇴정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도 법무부는 이른바 주요 공직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흔히 쓰는 "잘못된 관행에 따라"를 이번 신년 특별사면 대상 사건들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가 앞장서 '그들만의 잘못된 관행'에 정치적 면죄부까지 발행한 셈이다. 그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사법적 정의마저 훼손됐다. 국민적 사법 불신이 더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시민에게 '불편한 진실'마저 공식화
사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사법 불신을 악화시키는, 그 자체가 이미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잘못된 관행'이다. 법치는 최고권력자가 아닌 법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법이 적용돼야 한다. 이런 원칙이 그동안 특별사면으로 무너져왔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른바 '힘있는 사람들'이 그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감안했다면 "잘못된 관행에 따라"라는 표현은 더더욱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 나라에서 '잘못된 특별사면 관행'을 줄곧 지켜봤던 국민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뒀다면 말이다. '잘못된 관행에 따른 것이라면 불법행위라도 사면이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국가가 나서서 아예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법치주의를 줄곧 강조했던 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한 신뢰와 권위마저 스스로 훼손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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