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피격 사건을 독재정권 '용공 조작'에 빗댄 검찰
"월북보다 실족 가능성 크다"며 문재인 정부 '월북 결론' 맹공
▲ 서욱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공용전자기록 손상 등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서욱 전 장관이 법원 건물을 나오는 순간 피격 공무원 고 이대준씨의 친형 이래진씨가 서욱 전 장관을 향해 욕설을 하며 달려들자 법원 직원들이 제지했다. ⓒ 권우성
"우리사회에서 통념상 자진월북 행위를 했다는 건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행위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여러 경위로 국보법 위반이나 간첩 혐의로 처벌 받은 사례에 대한 재심 절차가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억울하게 처벌 받은 분들이 명예회복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29일 기자들과 만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언급을 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용공 조작 사건의 재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었던 고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과거 자행된 용공 조작 사건에 빗댄 셈이다.
검찰은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본 문재인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며 반대로 뒤집었다.
검찰 관계자는 "(월북이 아니라) 실족 가능성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다"면서 "남북 관계에 악재가 된다고 예상돼 서훈 전 안보실장 등이 '보안유지'라는 미명 하에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다"라며 "나아가 공무원이 자진월북 했다가 피격사망한 것이라고 몰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공무원 피격사건은 2020년 9월 22일 밤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어업지도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대준씨가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실종된 뒤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등산곶 해안에서 조선인민군의 총격에 숨진 사건을 말한다.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지만,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해경과 국방부는 '이대준씨의 월북 시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결론를 뒤집었다.
검찰, 서해공무원 자진월북 부인... "국정원도 같은 판단"
▲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티타임에서 검찰 관계자는 평소와 달리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볼 수 없는 근거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 고 이대준씨가 배에서 이탈할 때 선박에 비치된 방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지 않았다
▲ 당시 바다 유속이 성인 남성의 평균 수영 속도(시속 2㎞)보다 빨라 원하는 방향으로 수영이 어려웠다
▲ 수온이 22도 수준으로 낮아 장시간 수영이 어려웠다
▲ 고 이대준씨가 가족과의 유대가 끈끈했다
▲ 고 이대준씨의 신분이 안정적인 공무원이었다
▲ 북한에 대한 동경이나 관심을 보였던 정황이 보이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이씨가 실족한 곳에서 최초 발견된 지점까지의 거리는 27km"라며 "쉽게 말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경기 일산호수공원까지에 해당하는 거리다. 이처럼 먼 거리를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자진 월북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국가기관 4곳 가운데 국정원을 포함한 2곳이 사건 조사 뒤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이 불명확하다고 보고했다"면서 이씨의 실족 가능성 판단이 검찰만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님을 강조했다.
또 검찰은 이씨가 2020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께 북한 해역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 중국어 간자체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에 대해 "해상에 떠다니던 것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2020년 10월쯤 해양경찰청 등이 서해를 수색하다 구명조끼 2개와 구명환 1개를 수거했는데, 구명조끼 하나가 이씨가 입고 있었던 것과 중요한 특징이 같았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유엔 연설, 월북 단정 동기 중 하나"
▲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서 14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권우성
검찰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이 고 이대준씨의 북한 해역 발견 사실을 인지하고도 정부 차원에서의 아무런 구호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시점과 겹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 호소 UN총회 기조연설이 이씨의 '월북몰이' 동기 중 하나라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현재 검찰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진행했냐'는 질문에 "서면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서훈 실장 이상의 인물이 혐의가 있을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날 검찰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장관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박 전 원장에게 국가정보원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를 적용했다. 구체적으로 국가정보원 직원들로 하여금 관련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
서욱 전 장관에 대해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허위공문서작성 혐의 등을 적용했다. 관련 첩보 등 5600여 건 삭제케 하고 2020년 9월 24일 이대준씨가 자진월북한 것이라는 취지로 허위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자료 등을 작성해 배부케 했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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