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윤 대통령이 띄운 선거제 개혁, 이걸 아셔야 합니다

[기획ⓛ] 중대선거구제는 선거제도 개혁의 희망? 그 전에 따져볼 것들

등록|2023.01.04 06:57 수정|2023.01.04 06:57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1. 복수공천으로 얼룩진 중대선거구제, 해결책은?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대선후보 시절부터 선호했던 중대선거구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승자독식의 양당 기득권 구조와 정치 양극화는 정치뿐 아니라, 대한민국 복합위기의 본질입니다. 이 구도를 반드시 깨야 합니다"라며 환영 의사를 밝히고, 김진표 국회의장도 "승자독식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바짝 서둘겠다"고 화답했다. 바야흐로 초당적인 선거제도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다수대표제'(plurality voting, 과반 득표 관계없이 1위 득표자가 당선)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소선거구제는 2등 이하에 던진 모든 표가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 체제라 누가 보아도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로 보인다. 역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의 사표율은 다음과 같다.
 

▲ 역대 총선과 사표 비율 ⓒ 참여연대


문제는 1명 뽑는 소선거구제 대신 3인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가 과연 "대표성이 강화"되며 "정치 양극화 구도를 깨는"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이 될 것인가이다.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비례성'이 확대되는가? 혹은 소수정당의 진입이 용이해져서 '다당제 정치개혁'이 보장되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2022년 6월에 치러진 동시지방선거는 잘 보여주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여야는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확대 도입의 효과 검증을 위하여 국회의원 선거구 기준 11개 선거구 내"에서 "3인 이상 5인 이하"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다는 법률 부칙을 통과시켰다.

'시범 실시' 결과는 어떠했는가?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구 기준 11개란 기초의원 지역구로는 총 30개였는데, 결론적으로 제3의 정당들은 1~3개 선거구에서 반사적 이익을 얻었을 뿐이다(관련 기사 : 중대선거구제 시범지역에서 벌어진 기막힌 일 http://omn.kr/1z805).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가 진보정당 등 제3당의 약진으로 귀결되지 못한 것은 소수정당의 역량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거대 양당의 무자비한 '복수공천'의 위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충남 논산시 '가' 선거구(5인 선거구)는 무려 더불어민주당 5명, 국민의힘 4명, 정의당 1명이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3명과 국민의힘 2명이 당선되었다. 이렇게 되면 당선자가 많으므로 형식적으로 사표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거대 양당은 자신의 지지율을 훨씬 초과하는 의석을 나눠먹게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해도 거대 양당이 이렇게 복수공천을 계속한다면, 결과는 늘 그렇듯이 '비례성의 난폭한 유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복수공천의 금지'가 올바른 해결책일까? 만약에 어떤 5인 선거구에 복수공천이 금지된다면 5개 정당이 사이좋게 1명씩의 당선자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각도에서의 '비례성의 유린'이라 말해야 한다. 이 5개 정당의 지지도가 각각 20%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복수공천이 있는 중대선거구제'도 '복수공천이 없는 중대선거구제'도 아니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나 2인 선거구제보다는 낫다 할 수도 있지만 그 우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응당 정당의 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야말로, '대표성을 강화'하고 '정치 양극화 구도를 깨는' 유일한 방법이다.

2. '다당제 개혁'이 아니라 '지지율대로'

현재에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무려 311개이다. 그 중 소선거구제의 개정을 주장하는 법률안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제안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현 양당정치 체제의 독과점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공생기득권을 축소하여 유권자의 민의를 제대로 수용하고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이상민 의원 등 19인, 2022.10.4.)

다 좋은 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도록"이란 표현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어떤 정략적 의도에서 다당제 구조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례대표제'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여의도 정치'의 속셈이 담겨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양당제를 원하면 양당제가 맞는 것이며, 심지어 일당만을 원하면 일당제가 맞는 것이다. 국민이 정말로 양당제를 원한다면 '다당제 개혁'은 필요 없다. 국민이 양당제를 원하는데도 뭔가 인위적으로 다당제를 '만들려고' 애쓴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뭔가 "양당 기득권 구조"의 한 축을 이루는 특정 정당이 꾀하는 '정치공학'으로 생각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다당제 정치개혁'을 위한 것이라 명명하는 것은 소수정당 입장에서도 매우 불편하다. 지지도 받지 못하는 소수정당이 뭔가 떼를 쓰거나 '시혜'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현 제도에서 민의는 왜곡되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민의 그대로 의석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거대 정당에게 의도적으로 페널티를 주고 소수 정당이라고 불합리한 혜택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차별도 특혜도 없이 지지율대로 의석을 나누자는 것이다. 민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엄청난 표를 쓰레기통에 처넣는 '제도적 폭력'을 교정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이다.
 

▲ 2020년 21대 총선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 김찬휘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33.35%의 정당 지지율로 60%의 의석을 얻었고, 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은 21.88%의 지지를 얻고도 4%의 의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러한 부당한 민의의 왜곡이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혁의 기본 원칙은 '다당제 개혁'이 아니라 '지지율대로'이다. 지지율에 맞게 의석수를 나눠 가지는 것이 표를 던지는 유권자의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비례성'의 원칙이다. 비례성이 얼마나 높아지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대표성"이 얼마나 강화되는가, 바로 이 잣대로 선거제도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평가해야 할 것이다.

3. '소선거구제 아웃'은 부정확한 슬로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그건 특정 선거구에서 몇 명을 뽑는가를 말할 뿐이다. 제도개혁은 '어떻게' 뽑을까를 말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라 해도 뽑는 방법에 따라 ▲정당명부식(정당 지지율대로 의석을 나눔. 보통 '권역별 비례대표제'라 부른다. 2부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단기이양식(투표할 때 후보에 대한 선호를 1, 2, 3, 4, 5 순으로 표시하는 선호투표, 아일랜드 하원 선거) ▲단기비(非)이양식(4인 선거구라면 1, 2, 3, 4등이 당선) 등으로 나뉜다. 어떤 방식의 중대선거구제인가에 따라 선거 결과의 비례성은 크게 다르고, 이중 한국의 기초의회 선거에서 진행되는 '단기비이양식의 비례성'이 가장 약하다.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는 사실상 소선거구제 합치기에 불과하다. 소선거구제로 운영되던 AB동과 CD동, EF동, GH동을 합쳐 하나의 4인 선거구를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AB동의 1등, CD동의 1등, EF동의 1등, GH동의 1등이 각 지역 연고를 기초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ABCDEF동에서 두루두루 2등 하는 후보가 AB동의 1등을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2022년 논산시 '가' 선거구처럼 나눠먹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제3의 정당이 양당 복수공천의 틈바구니를 뚫고 당선될 가능성은 아주 작을 것이다.

현재 계류 중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로의 개정을 주장하는 것이 많다. 예컨대 이상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2022.10.4.)에 따르면 지역구 127석이 4~5인(부득이한 경우 3명 이하)의 중대선거구로 바뀌게 된다. '생활권역‧행정구역형 대선거구제'를 표방한 전재수 의원 대표 발의 법률안(2022.12.01.)에 따르면 지역구 253석이 4~9인의 선거구(부득이한 경우 3명 이하)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생길까?

전재수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국 253개의 국회의원지역선거구의 상당수가 거대 양당의 소위 '텃밭'으로 평가되어 공천하는 순간 사실상 당선이 보장되는 효과를 낳음으로써 국회의원을 선출직이 아닌 정당의 임명직화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음."

그렇다면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로 바뀌면? 소위 '텃밭'에서 텃밭이 아닌 정당의 당선이 발생할 것이다. 즉 전재수 의원이 속한 영남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후순위로, 호남권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후순위로,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런 법률안의 의도이다.

즉 '어떻게' 뽑는가를 말하지 않고, 그냥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키우자는 주장은 거대 양당 나눠먹기에 불과하다. 이것은 둘이 합쳐서 지지율 67%인 정당이 90% 이상의 의석을 독식하려는 또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당선되는 사태를 두 정당은 '지역주의 완화'로 포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비례성의 유린'에 불과하다.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는 절대 '개혁'이 아니다.

그렇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표현되는 정당명부식 중대선거구제는 어떨까? 그것은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