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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다른 선거법 개정안... 누구에게 유리할까

[기획②]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진짜 방법

등록|2023.01.05 04:42 수정|2023.01.06 09:06

▲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이틀 앞둔 2020년 4월 13일 국회 사무처가 21대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기사 수정 : 6일 오전 9시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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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띄운 선거제 개혁, 이걸 아셔야 합니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omn.kr/2285c ).

1.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떠오르고 있다

지난 1부에서 소선거구제 몇 개를 모아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살펴봤다. 특히 기초의회 선거제도와 같은 '단기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의 지지율을 초과하는 의석 독식이 계속됨을 알게 됐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정당명부식(party-list)의 형태로도 진행될 수 있는데, 그때 그것을 보통 '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부른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원 비례대표제는 다음과 같다. 비례대표 의석은 총 300석 중 47석이며, 47석을 배분하는 방법은 준연동형으로서 정당 지지율대로 300석을 나눈 다음에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수의 1/2를 배분하며, 각 정당은 한 개의 전국 단위 비례대표 명부를 제출한다. 여기서 비례대표 명부를 전국 단위 한 개로 제출하지 않고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로 따로따로 명부를 제출한다면, 그것이 곧 권역별 명부의 비례대표제가 된다.

현재 계류 중인 공직선거법일부개정법률안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많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 14인(2022.9.1.), 이상민 민주당 의원 등 19인(2022.10.4.), 김영배 민주당 의원 등 10인(2022.11.18.), 김상희 민주당 의원 등 11인(2022.12.23.),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 10인(2022.12.26.) 등의 법률안이 모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김두관, 이상민, 김영배 안은 현행 준연동형을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정할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전국 단위로 하던 준연동형 계산을 권역별로 각각 하는 것이다. 권역에 배정된 전체 의석을 그 권역의 정당 지지율대로 나눈 다음에 그 권역의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수의 1/2를 배분한다.

그에 반해 김상희, 박주민 안은 현행 지역구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모두 폐지하고 전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각 권역에 배정된 의석을 권역의 정당 지지율대로 나누면 정당에 배분될 의석이 결정된다.

또 하나의 차이는 개방형명부(open-list)와 폐쇄형명부(closed-list)의 차이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싫어하는 국민들 중에는, 비례대표제 명부와 순번을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당 리더의 공천 권력이 관철된다는 것이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이 점을 고려해 정당이 명부를 만들되 유권자가 후보에 투표할 수 있게 해 누가 당선될지를 유권자가 결정할 수 있게 열어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open(열린) list라 부른다.

그에 반해 현행 공직선거법 비례 명부는 유권자가 정당에만 투표할 수 있을 뿐 후보에게 투표할 수 없다. 그래서 유권자에게 closed(닫힌) list가 된다. 김두관, 김상희, 박주민 안은 개방형이고, 이상민, 김영배 안은 폐쇄형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표로 한 번 정리해 보겠다.
 

▲ 권역별 비례대표제 5개 법률안 비교 ⓒ 김찬휘

  2.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를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집중해 보자.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6개 권역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바 있다. 동시에 지역구 200, 비례대표 100으로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2배 이상 늘릴 것도 제안했다. 사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OECD 33개국 중 27개국이 채택하고 있는 표준적 선거제도다.
 

▲ OECD 38개국 선거제도 ⓒ 김찬휘


특히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전국 단일 명부를 하면 (큰 나라일수록)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고 수도권 중심으로 인물이 쏠릴 우려가 있다. 결국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지역 대표성도 살릴 수 있는 좋은 제도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대한 조건이 있다. 권역의 크기가 충분히 커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권역의 비례 의석이 9석이라면 한 정당이 10% 이상의 득표를 해야 1석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만약에 4석이라면 20%가 안정적 1석을 위한 득표율이다. 권역의 비례 의석이 2석이라면 심지어 33% 득표를 한 정당이 1석도 못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다른 정당 둘이 33.6%, 33.4%를 득표했다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33.34%가 안정적 1석을 위한 득표율이 된다.

이것을 '자연장벽'이라 부른다. 선거법에 규정된 '법적 진입장벽'(예컨대 현 공직선거법의 전국 득표율 3% 혹은 지역구 5석 규정)은 아니지만 권역의 의석수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장벽이라는 의미이다. 이미 보았듯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의 크기가 작을수록 1석을 위한 '자연장벽'이 높아진다. 따라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꾼다고 해도 권역의 의석수가 적으면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이 어려워지고 비례성은 추락한다.

다음은 이상민 안과 김영배 안에 따른 각 권역별 비례 의석을 인구비례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다. (지역구 내 무소속 당선자가 없다고 가정하고, 잔여배분이나 조정의석 변수는 고려하지 않을 때) 지역구 당선자가 없는 소수 정당이 몇 %를 득표해야 해당 권역의 비례 의석 1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를 표시했다.

[이상민 안]
 

▲ 이상민 안에 따른 권역별 자연장벽 ⓒ 김찬휘


경기와 서울도 만만치 않은데, 부산 이하는 사실상 양당 외에는 비례의석이 불가능하다.

[김영배 안]
 

▲ 김영배 안에 따른 권역별 자연장벽 ⓒ 김찬휘


김영배 안은 권역이 6개라 이상민 안(권역 17개)에 비해 권역의 크기가 크고, 지역구 의석도 더 많아 전체 의석이 많아져 자연장벽이 낮아진다. 하지만 중대한 함정이 있다. 김영배 안에는 공직선거법 제189조 ① "의석할당정당" 규정, 즉 '전국 득표율 3%" 혹은 "지역구 의석 5'이라는 '법적' 장벽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도 적용이 된다. 그에 반해 이상민 안은 이 법적 장벽을 46석 전국비례대표(병립형)에만 적용하고 127석 권역비례대표(연동형)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김영배 안은 결국 전국 '법적' 장벽에 권역별 '자연' 장벽이라는 이중적 장벽이 존재한다. 즉 이상민 안은 서울에서 4.35%를 득표한 정당이라면 1석이 보장되는데, 김영배 안에 따르면 서울에서 3.34%를 득표하고, 동시에 전국 득표율이 3%를 넘어야 서울에서 1석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행 공직선거법보다도 비례의석을 얻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현행은 전국 득표율 3%만 넘으면 무조건 1석이 생기는데, 김영배 안에 따르면 전국 3%에 권역별 자연 장벽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김영배 안이 법이 된다면 전국적 지명도가 높은 소수 정당은 권역별 자연 장벽에서 걸리고, 지역 조직력이 높은 소수 정당은 전국 득표율에서 걸려 넘어질 것이다.

김두관 안은 더 심한데, 3% 규정만 삭제하고 지역구 5석 이상 장벽은 존속된다. 즉 거대 양당에게만 유리한 전국 장벽만 남긴 것이다. 즉, 어떤 정당이 권역별 자연장벽을 넘었다 하더라도, 소선거구제 지역구에서 1등 당선한 사람이 5명이 안 되면 비례 의석 단 한 석도 얻을 수 없다.

3. OECD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성을 높이려면 비례 의석의 비중이 커져야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입장벽을 높여서 많은 정당을 장벽 아래로 떨구는 제도라면, 당연히 비례성은 추락하게 돼 있다. 전국 명부를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법적' 진입장벽이 없다면, 그 제도는 매우 비례성이 높은 좋은 선거 제도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에 1/150, 즉 0.67%만 얻으면 국회 1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원내 정당이 17개지만, 이 나라가 "정당이 난립해서 정치가 불안정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원내 정당의 수가 많으면 정치가 불안정해진다는 터부는 박정희 시대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다.

터키는 100% 권역별 비례대표제인데 전국 10% 득표율 등 몇 가지 '법적' 진입장벽이 더 있다. 터키는 한국에서는 정당법 제42조 ②항("누구든지 2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에 따라 만들 수 없는 '선거용 정당연합'을 만들 수 있음에도, 이중 삼중의 장벽으로 인해 두 개의 정당연합과 한 개의 정당만이 의회에 진출했다.

실제로 정치 선진국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대개 별도의 전국적 '법적' 장벽을 두지 않는다. 권역 법적 장벽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없는 나라가 훨씬 더 민주주의가 발전한 정치 선진국이다.
 

▲ OECD 정치선진국의 진입장벽 ⓒ 김찬휘

 
결론적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해 '비례성'을 높이려면, ①권역의 크기가 충분히 커서 '자연' 장벽이 낮아야 하며 ②전국 '법적' 장벽을 이중 적용하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의 '개악'이 되는 것이다. 장벽이 높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결국 '비이양식' 중대선거구제와 마찬가지로, 거대 양당만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될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선거제도개혁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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