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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움보다 일상이 중요" 나문희 철학 관통한 이 영화

[인터뷰] 뮤지컬 영화 <영웅> 속 조 마리아 역 맡은 배우 나문희

등록|2023.01.04 17:15 수정|2023.01.04 17:15
 

▲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모친 조마리아를 연기한 배우 나문희. ⓒ CJ ENM




"엄마라면 내 자식이 10살이든 쉰살이든 우선이거든. 근데 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의병대장으로 끝까지 싸워라, 목숨도 바치라고 하잖나. 생각은 쉽지만 그걸 행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그분을 끝까지 표현하려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뮤지컬 영화 <영웅> 속 조마리아는 배우 나문희의 몸을 입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야욕을 막아내려 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다. 역사적으로나 다른 작품에서나 잘 알려진 조마리아 여사를 두고 나문희는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실천력을 가진 인물로 해석하고 있었다.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인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배우 나문희를 만나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었다.

노래 연기, 딸에게 직접 레슨 받아

14년 간 장기 공연 중인 원작 뮤지컬을 보고 일찌감치 영화화하기로 한 윤제균 감독의 의지 때문일까. 60년을 훌쩍 넘긴 연기 경력의 나문희에게 여러 차례 테이크를 요구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힘들진 않았지만, 그땐 제 나이도 있고 장면 자체가 어려운 장면이라 힘들게 했다"며 나문희는 촬영 현장 일화부터 전했다.

"윤제균 감독님은 제가 출연한 <하모니> 제작자기도 했고, 그때 잘 대접해주셨다. 다른 배우가 섭섭했을 수도 있지만 아, 날 믿는 게 있구나 싶었지. 나도 감독님을 믿었다. 이번에 조마리아 역할을 하라고 해서 맡았다. 막상 영화가 나오니 보람 있더라. 노래도 라이브로 해야 했는데 음정보단 가사와 감정에 집중하려 했다. 아들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하고, 이후에 여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그 생각을 많이 하며 준비했던 것 같다."

오랜 경력에서 처음 경험하는 뮤지컬 영화였기에 걱정도 나름 있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전공한 큰 딸에게 레슨을 받은 사연을 전하며 그는 "그래도 음악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집안"이라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려진대로 나문희는 1961년 성우로 데뷔해 라디오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고, 명동에서 유명했던 '메트로'라는 음악감상실에서 DJ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땐 참 가난했던 때였다. 시간제로 오전 중에 DJ를 하면 어떻겠냐 해서 잘은 모르지만 책도 읽어주고 그랬다. 그때 음악 공부를 참 많이 했다. 시집가서는 애들이 음악 레슨을 받으니 제가 아는 것만큼 알려주기도 했다. 겨우겨우 벌어서 지원해줬지. 이번에 딸이 영화를 보고 와서 펑펑 울었다더라. 옆 사람도 너무 울었다며, 영화 좋았다고 말해줬다."

<아이 캔 스피크> 그리고 <영웅>에서 나문희는 연기로나마 일제 강점기를 살아냈다. 1941년생인 그는 유년 시절 일부가 그 역사에 속해 있기도 하다. 그 감흥을 묻는 말에 "그 시기를 제대로 경험한 건 아니지만, 하늘이 우리나라를 많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하잖나"라고 말했다.
  

▲ 영화 <영웅>의 한 장면. ⓒ CJ ENM



지평을 넓혀가다

수많은 작품을 거쳤고, 2017년엔 <아이 캔 스피크>로 연기 인생 사상 처음 주연상을 받는 등 여러 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크고 작은 부침을 경험한 나문희다. "연기 자체가 즐겁진 않지만 연기를 지금도 참 좋아한다. 준비할 땐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든데 현장에 가면 철없이 아직도 신이 난다"며 여전한 애정과 열정을 드러냈다.

"배우로서 중요한 건 평소 삶인 것 같다. 평소에도 제대로 살아야 하고 관찰을 잘해야 한다. 평소의 삶이 연기에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이든 매력이 있으면 한다. 현실적으로 공감도 가야 하고. 이것저것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건 하기 싫다. 그리고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하고 싶다. 아주 신인이라도,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기분이 좋다.

<아이 캔 스피크> 이전만 헤도 열등감이 많았다. 자꾸 누군가와 경쟁하려 했는데 그렇게 상을 받고 나니 여한이 없어졌달까. 달라진 것 같다. 이젠 누구와 경쟁 안 해도 괜찮은 것 같다. 윤여정 배우를 보면 샘이 나면서도 좋다. 어디 가서도 자기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이순재 선생님이 참 훌륭한 것 같다. 수원에 가면 나혜석로(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나문희의 고모할머니다-기자 주)가 있잖나. 대학로에 이순재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 외 일상은 단촐하고 간결하게 유지한다는 게 나문희의 인생 철학 중 하나였다. 음식 쓰레기는 꼭 직접 버리고, 쓰레기를 수거하시는 분에게 항상 관심을 가지며, 대중목욕탕에 가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며 그는 "사치스러움이 아닌 아주 일상적인 걸 자유롭게 하며 지내려 한다. 찌개 하나도 직접 끓일 줄 알아야 그게 연기로 잘 묻어난다. 버스도 타고, 시장도 다닌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그는 예능 <뜨거운 씽어즈> <진격의 할매>에 출연하기도 했고, 심지어 MZ 세대 상징처럼 여겨지는 SNS 플랫폼 틱톡에 영상을 올리는 틱톡커로도 활약 중이다. 평소엔 보통 한국 할머니들처럼 <인간극장> < 6시 내고향 > 등을 즐겨보고, 클래식 등 고전음악을 듣는다던 나문희는 '유연성'을 강조했다.

"예능 프로야 나름 도전이라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제가 나서서 끌고 갈 재주는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뜨거운 씽어즈>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많아서 잘할 수 있었는데 <진격의 할매>는 지금만큼 한 것도 다행인 것 같다. 틱톡은 지금 소속사에서 제안해서 한 거다. 처음엔 망설였는데 매니저가 한번 해보시죠 하더라.

매일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좋다. 안 움직이면 뭐 하나를 하더라도 끙끙 앓다가 하게 되는데 이게 생활이 되니까. 젊은 사람들 감각도 익히게 되더라. 그걸 촬영하는 날엔 유쾌함이 든다. 물론 새로움에 두려움은 항상 있다. 근데 겁 없이 하는 면도 있다. 내게 닥치는 건 일단 해보려고 한다. 현장에서도 유연성이 중요하다. 다들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그럴수록 나이 먹은 저나, 모든 할머니들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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