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소를 나서 방문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내과 전문의 송홍석
경기도 시흥 북부에 위치한 매화동은 저소득층 독거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은 지역 복지관과 함께 매화동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진료하고 있다. 복지관 이용자, 경로당과 통장, 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방문 진료 신청을 받고 의사, 간호사, 회복지사가 함께 방문하여 건강과 돌봄, 복지 문제를 살피고 지역 자원을 통해 해결하려 애쓴다. 그동안 필자가 방문 진료를 해오면서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방문 진료를 하며 만난 노인들 이야기
한 70대 노인 부부 가구에 방문한 적이 있다. 거실에 들어섰을 때 반갑게 맞아주셨던 할머니는 매우 야위셨지만, 혼자 걸으시는 데는 별문제 없어 보였다. 말씀도 곧잘 하시고, 우리를 보시고는 생글생글 미소를 짓기도 하셨다.
"2년 동안 집 밖에 나간 적은 딱 한 번뿐이었어. 자기 방에서도 잘 나오려 하지 않아. 밥도 하루에 한 끼 먹나 봐. 어지럽대. 치매약도 거를 때가 많지…."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건강해 보였지만, 할머니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듯 보였다. 까칠하게 대답하고 행동한다고, 함께 살지만 각방을 사용하고, 식사도 따로, 약도 따로 먹고 각자 따로 생활한다고 하셨다. 치매로 기억력이 떨어진 할머니는 스스로 약을 챙겨 드시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활동량이 거의 없어 식사량도 많지 않았다. 문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공적 돌봄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식사와 복약과 집 밖 활동을 도와줄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건 당연했다. 이에 따님을 통해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하실 수 있도록 복지관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한번은 혼자 사시는 80대 같은 95세 할머니 댁에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일주일 째 지속되는 두통으로 방문 진료를 요청하셨고, 혈압을 재보니 200/100mmHg로 매우 높았다. 약을 확인해보니 근처 의원에서 처방받은 혈압약과 관절통약은 있었다.
"할머니, 근데 혈압약은 왜 안 드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건강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안 먹지~"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혼자 병원에 다니신다고 한다. 우리는 할머니께서 혈압관리를 잘 하실 수 있도록, 댁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와 근처 의원에 할머니의 건강 사정에 대해 알려드리기로 하였다.
노부부 모두 건강이 여기저기 좋지 않은데, 병원 갈 형편이 안되어 신청한다는 방문 진료 의뢰가 들어왔다. 이에 복지관 사회복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70대 중반인 할아버지의 건강이 특히 좋지 않았다. 작년 겨울부터 손이 말리는 느낌이 들었고 왼팔은 경직되고,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고 우측 다리 감각은 떨어지고, 좌측 허벅지는 꼬집어도 모를 정도로 감각이 떨어졌다 하신다.
"가장 불편한 것은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이고 점점 악화되는 것 같다. 올해 초에는 우측 팔이 안 움직였고, 최근 몸이 앞으로 쏠리고 넘어진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다."
동네 한의원에서 목 디스크 같다며 한달 동안 치료받다 병원비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하셨다. 중풍이 의심되었지만, 병원비 부담으로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B형간염과 고혈압도 있어서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도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슬하에 두 아들이 있지만 둘 다 빠듯한 수입에 도와줄 형편이 안됐다. 할머니의 보장성 보험 가입으로 기초생활수급권 신청도 탈락하였다. 기초노령연금과 노인 일자리 수입 100만 원으로 버텨야 하는, 그야말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구였다.
방문 진료 후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의료비 지원제도'의 지원을 받아 정형외과와 신경과에서 MRI 등의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척추질환도, 중풍도 아니었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들이었다. 할아버지의 증상은, 작년까지 초등학교 당직 기사로 일하다가 체력검사에서 탈락하여 작년 10월 직장을 그만둔 이후 생긴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노인 일자리마저 잃게 되면 소득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과 그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계속 가지고 계셨다.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아픈 이들의 삶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돌보기
진료실 밖으로 나가면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 오지 못하는 이들, 경제적 사정으로 병원 이용이 장벽으로 다가오는 이들,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으로 병원에 오지 않은 이들의 삶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
보수되지 않아 페인트가 곳곳에서 떨어져 나간 낡은 임대아파트 속 어둠침침하고, 좁고도 높은 계단을 올라 그분들을 만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함께 논의한다. 때론 도로변 가건물이나 컨테이너 건물에서 거주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방문하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확인되었고, 확인된 필요는 도울 수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지만 코로나19로 병원 가기가 두려워 약을 먹지 못했던 환자, 대화 중 치매의 소견을 보여 치매 진단 후 치매안심센터로 연계했던 환자, 파킨슨병으로 인한 보행장애로 집안 낙상사고가 자주 일어나 보조기 착용을 지원했던 환자 등 돕고자 모이면 도움이 가능했다.
아픈 이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디서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많은 사회구성원이, 홀로서기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들의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매우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요인들을 삶의 현장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경험과 훈련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에 '함께 기여하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돌봄 노동'이 존중되고, '돌봄' 복지가 더 확대되는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방문 진료를 하며 만난 노인들 이야기
"2년 동안 집 밖에 나간 적은 딱 한 번뿐이었어. 자기 방에서도 잘 나오려 하지 않아. 밥도 하루에 한 끼 먹나 봐. 어지럽대. 치매약도 거를 때가 많지…."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건강해 보였지만, 할머니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듯 보였다. 까칠하게 대답하고 행동한다고, 함께 살지만 각방을 사용하고, 식사도 따로, 약도 따로 먹고 각자 따로 생활한다고 하셨다. 치매로 기억력이 떨어진 할머니는 스스로 약을 챙겨 드시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활동량이 거의 없어 식사량도 많지 않았다. 문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공적 돌봄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식사와 복약과 집 밖 활동을 도와줄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건 당연했다. 이에 따님을 통해 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하실 수 있도록 복지관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 의사 - 간호사 -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루어 방문한다. ⓒ 송홍석
한번은 혼자 사시는 80대 같은 95세 할머니 댁에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일주일 째 지속되는 두통으로 방문 진료를 요청하셨고, 혈압을 재보니 200/100mmHg로 매우 높았다. 약을 확인해보니 근처 의원에서 처방받은 혈압약과 관절통약은 있었다.
"할머니, 근데 혈압약은 왜 안 드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건강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안 먹지~"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혼자 병원에 다니신다고 한다. 우리는 할머니께서 혈압관리를 잘 하실 수 있도록, 댁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와 근처 의원에 할머니의 건강 사정에 대해 알려드리기로 하였다.
노부부 모두 건강이 여기저기 좋지 않은데, 병원 갈 형편이 안되어 신청한다는 방문 진료 의뢰가 들어왔다. 이에 복지관 사회복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70대 중반인 할아버지의 건강이 특히 좋지 않았다. 작년 겨울부터 손이 말리는 느낌이 들었고 왼팔은 경직되고,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고 우측 다리 감각은 떨어지고, 좌측 허벅지는 꼬집어도 모를 정도로 감각이 떨어졌다 하신다.
"가장 불편한 것은 걸음걸이가 불안한 것이고 점점 악화되는 것 같다. 올해 초에는 우측 팔이 안 움직였고, 최근 몸이 앞으로 쏠리고 넘어진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다."
동네 한의원에서 목 디스크 같다며 한달 동안 치료받다 병원비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하셨다. 중풍이 의심되었지만, 병원비 부담으로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B형간염과 고혈압도 있어서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도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슬하에 두 아들이 있지만 둘 다 빠듯한 수입에 도와줄 형편이 안됐다. 할머니의 보장성 보험 가입으로 기초생활수급권 신청도 탈락하였다. 기초노령연금과 노인 일자리 수입 100만 원으로 버텨야 하는, 그야말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가구였다.
방문 진료 후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의료비 지원제도'의 지원을 받아 정형외과와 신경과에서 MRI 등의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척추질환도, 중풍도 아니었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들이었다. 할아버지의 증상은, 작년까지 초등학교 당직 기사로 일하다가 체력검사에서 탈락하여 작년 10월 직장을 그만둔 이후 생긴 것들이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노인 일자리마저 잃게 되면 소득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감과 그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계속 가지고 계셨다.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아픈 이들의 삶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돌보기
진료실 밖으로 나가면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에 오지 못하는 이들, 경제적 사정으로 병원 이용이 장벽으로 다가오는 이들,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으로 병원에 오지 않은 이들의 삶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
▲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하면, 진료실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볼 수 있다. ⓒ 송홍석
보수되지 않아 페인트가 곳곳에서 떨어져 나간 낡은 임대아파트 속 어둠침침하고, 좁고도 높은 계단을 올라 그분들을 만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함께 논의한다. 때론 도로변 가건물이나 컨테이너 건물에서 거주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방문하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확인되었고, 확인된 필요는 도울 수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지만 코로나19로 병원 가기가 두려워 약을 먹지 못했던 환자, 대화 중 치매의 소견을 보여 치매 진단 후 치매안심센터로 연계했던 환자, 파킨슨병으로 인한 보행장애로 집안 낙상사고가 자주 일어나 보조기 착용을 지원했던 환자 등 돕고자 모이면 도움이 가능했다.
아픈 이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디서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더 많은 사회구성원이, 홀로서기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들의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 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매우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요인들을 삶의 현장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경험과 훈련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에 '함께 기여하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돌봄 노동'이 존중되고, '돌봄' 복지가 더 확대되는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송홍석 님은 내과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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