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급사회의 단면, '사랑의 이해'가 웰메이드인 까닭
[리뷰]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
"맞다. 우리는 차별한다. 통장에 얼마가 찍혀 있는지,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로. 조선시대의 계급은 신분이 정했고, 2022년 대한민국의 계급은 돈이 정한다. 은행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은행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계급이 있다. 그리고 나와 그녀의 사이에도!" (하상수)
사랑이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한 것이라면, 우리가 이토록 가슴앓이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거기에는 감정에 앞서는, 감정을 누르는 수많은 '이해(利害)'가 존재한다. 다가가려 하다가도 나의 입장과 처지를 염려해 주저하게 되고, 상대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해 머뭇거리게 된다. 그렇다, 사랑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집안 배경, 경제력, 직업 등은 '선(線)'을 구성한다. 선은 공간을 분리하고, 위계를 짓고, 관계를 규정한다. 그 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하다. 그 선은 교묘해서 같은 공간을 여러 층위로 분리하고, 같은 동료 사이에 수많은 등급을 만든다. 우리는 사랑 앞에 그어진 '선' 앞에서 좌절한다. 우리는 그 이해로 쓰여진 '신계급사회'를 살고 있다.
선의 구분이 명확하다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배경은 'KCU은행 영포점'이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은행은 이러한 선의 구분과 이해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다. 우선, 지점장부터 부지점장, 팀장, 대리, 계장, 주임으로 이어지는 상명하복의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여기에 사원증 줄의 색으로 서비스직군을 갈라치고, 청원경찰은 구성원에서 사실상 배제한다.
"기회라고 생각했던 은행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선을 긋는다는 걸. 때론 사소하게 때론 너무 노골적으로.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출발이 다르니까. 공평한 기회처럼 보이는 일도 교묘한 차별일 뿐. 선밖에 있는 사람은 선 안쪽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그냥 인정하는 것. 이곳에서 나는 선 밖에 서 있는 사람이다." (안수영)
고졸로 입사해 예금 창구에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수영(문가영)은 자신을 "선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영포점 내에서 가장 일을 잘하지만, 서비스직군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매순간 절감한다. 종합상담팀에서 일하는 상수(유연석)는 수영에게 업무를 배운 후배이지만, 벌써 계장으로 승진했다. 또, PB팀에서 VIP를 상대하는 미경(금새록)과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
이처럼 그들 사이에는 출신과 스펙으로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중요도가 낮은 업무,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수영(이나 청원경찰 종현)의 몫이다. 커피나 숙취해소제를 사오는 잔심부름도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이구일(박형수) 팀장은 양반이다. 육시경(정재성) 지점장은 수영을 챙겨주는 척하며 은근슬쩍 몸을 만지는 성추행을 일삼는다. 고객 접대 자리도 강요한다.
<사랑의 이해>는 '선 밖에 있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은행 내의 '신계급사회'를 예리하게 담아낸다. 비단 은행뿐이랴. 이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랑은 질문을 던진다. 상수가 수영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균열이 발생한다. 장밋빛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잿빛으로 변한다. 상수의 '망설임'은 살짝 열리려 했던 수영의 마음을 닫게 한다.
때로 균열은 오히려 그 경계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기능을 한다. 수영은 상수의 망설임이 '선 밖의 자신' 때문이라 여겨 상수를 밀어내고, 결국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같은 처지의 종현(정가람)에게 의지한다. 이에 상심한 상수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미경과 연애를 시작한다. 상수와 수영, 두 사람의 엇갈림은 과연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까.
첫회 시청률 3.124%(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사랑의 이해>는 2회에서 1.898%까지 하락하며 난조를 보였지만, 이후 착실히 시청률을 높여나갔다(3회 2.151%, 4회 2.457%, 5회 2.777%). 그러더니 6회에서는 2.972%까지 회복했다. 1, 2회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많은 드라마들이 첫회 시청률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랑의 이해>의 반전은 이례적이다.
<사랑의 이해>의 시청률 반전은 촘촘한 극본과 섬세한 연출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은행을 배경으로 '신계급사회'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구성원들의 입장과 처지를 다각화해 그려냈다. 인물들 간의 다양한 이해를 날카롭게 포착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물론 일부 조연들의 캐릭터는 지극히 단편적이라 아쉬움이 있지만, 극의 전개를 위한 설정으로 눈감아 줄 만하다.
또, 인물의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배우들의 역량도 칭찬할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유연석은 밀도 있는 내면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줬고, 문가영은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금새록의 매력도 돋보이고, 정가람의 신선함도 인상적이다. 그밖의 조연 배우들도 강약을 조절하며 맹활약 중이다.
상수와 수영, 두 사람은 '신계급사회'의 선을 넘을 수 있을까. 그들은 서로가 처한 현실을, 그 현실에서 비롯된 이해(利害)를 얼마나 이해(理解)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비단 상수와 수영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사랑의 이해>가 웰메이드 드라마인 까닭이다.
사랑이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한 것이라면, 우리가 이토록 가슴앓이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거기에는 감정에 앞서는, 감정을 누르는 수많은 '이해(利害)'가 존재한다. 다가가려 하다가도 나의 입장과 처지를 염려해 주저하게 되고, 상대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해 머뭇거리게 된다. 그렇다, 사랑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선의 구분이 명확하다
▲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 한 장면. ⓒ JTBC
▲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 한 장면. ⓒ JTBC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배경은 'KCU은행 영포점'이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은행은 이러한 선의 구분과 이해의 차이가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다. 우선, 지점장부터 부지점장, 팀장, 대리, 계장, 주임으로 이어지는 상명하복의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여기에 사원증 줄의 색으로 서비스직군을 갈라치고, 청원경찰은 구성원에서 사실상 배제한다.
"기회라고 생각했던 은행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선을 긋는다는 걸. 때론 사소하게 때론 너무 노골적으로.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출발이 다르니까. 공평한 기회처럼 보이는 일도 교묘한 차별일 뿐. 선밖에 있는 사람은 선 안쪽으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그냥 인정하는 것. 이곳에서 나는 선 밖에 서 있는 사람이다." (안수영)
고졸로 입사해 예금 창구에서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수영(문가영)은 자신을 "선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영포점 내에서 가장 일을 잘하지만, 서비스직군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매순간 절감한다. 종합상담팀에서 일하는 상수(유연석)는 수영에게 업무를 배운 후배이지만, 벌써 계장으로 승진했다. 또, PB팀에서 VIP를 상대하는 미경(금새록)과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
이처럼 그들 사이에는 출신과 스펙으로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중요도가 낮은 업무,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수영(이나 청원경찰 종현)의 몫이다. 커피나 숙취해소제를 사오는 잔심부름도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이구일(박형수) 팀장은 양반이다. 육시경(정재성) 지점장은 수영을 챙겨주는 척하며 은근슬쩍 몸을 만지는 성추행을 일삼는다. 고객 접대 자리도 강요한다.
<사랑의 이해>는 '선 밖에 있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은행 내의 '신계급사회'를 예리하게 담아낸다. 비단 은행뿐이랴. 이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랑은 질문을 던진다. 상수가 수영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균열이 발생한다. 장밋빛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잿빛으로 변한다. 상수의 '망설임'은 살짝 열리려 했던 수영의 마음을 닫게 한다.
때로 균열은 오히려 그 경계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 보이는 기능을 한다. 수영은 상수의 망설임이 '선 밖의 자신' 때문이라 여겨 상수를 밀어내고, 결국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같은 처지의 종현(정가람)에게 의지한다. 이에 상심한 상수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미경과 연애를 시작한다. 상수와 수영, 두 사람의 엇갈림은 과연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까.
첫회 시청률 3.124%(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사랑의 이해>는 2회에서 1.898%까지 하락하며 난조를 보였지만, 이후 착실히 시청률을 높여나갔다(3회 2.151%, 4회 2.457%, 5회 2.777%). 그러더니 6회에서는 2.972%까지 회복했다. 1, 2회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많은 드라마들이 첫회 시청률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랑의 이해>의 반전은 이례적이다.
<사랑의 이해>의 시청률 반전은 촘촘한 극본과 섬세한 연출이 뒷받침된 결과이다. 은행을 배경으로 '신계급사회'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구성원들의 입장과 처지를 다각화해 그려냈다. 인물들 간의 다양한 이해를 날카롭게 포착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물론 일부 조연들의 캐릭터는 지극히 단편적이라 아쉬움이 있지만, 극의 전개를 위한 설정으로 눈감아 줄 만하다.
또, 인물의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배우들의 역량도 칭찬할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유연석은 밀도 있는 내면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줬고, 문가영은 전작들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깊이 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금새록의 매력도 돋보이고, 정가람의 신선함도 인상적이다. 그밖의 조연 배우들도 강약을 조절하며 맹활약 중이다.
상수와 수영, 두 사람은 '신계급사회'의 선을 넘을 수 있을까. 그들은 서로가 처한 현실을, 그 현실에서 비롯된 이해(利害)를 얼마나 이해(理解)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비단 상수와 수영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사랑의 이해>가 웰메이드 드라마인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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