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90년대생인데요, 공자에게 위로 받았습니다

새해 맞아 읽은 논어 에세이에서 발견한 '현자'의 새로운 면모

등록|2023.01.12 17:57 수정|2023.01.12 17:57
이성으로 비관하지만 의지로 낙관하기 위해 저만의 책방으로 매달 작가들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널브러진 생각을 그러모아 매달 초 '이달의 책방'을 엽니다. [편집자말]
새해가 밝고도 며칠이 지났다. 묻고 싶다. 다들 만족스러운 새해를 보내고 있는가? SNS에는 2022년 최고의 순간들을 결산하고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나를 뺀 모든 이들이 작년 말, 이미 새해 결심도 다 세우고 의욕적으로 2023년을 시작한 듯하다.

국민의 대다수가 열심히 사는 나라에서 '열심히'를 빼고 살아가기란 상당히 정체성이 위협받는 일이다. 끊임없이 나란 존재를 작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은 연말연초가 아닌 때도 미라클 모닝과 갓생 살기가 열풍이었다. 다들 (너무) 열심히 산다.

물론 작심삼일로 벌써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무언가를 시작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 아직 새해 결심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건 시간이 꽤 걸리는 법. 1월 중순까지는 2022년을 돌아보기 좋은 때다. 새해에 무엇을 하고 싶고, 할 것인지는 1월 안에 정하기로 방금 결정했다. 어차피 또 수정과 추가가 될 공산이 크다. 아 그리고 매년 들어가는 '다이어트'와 '책 읽기'는 올해도 기본값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매일 실패하는 나를 데리고 또 한 해를 건넌다

매년 다이어트를 결심한다는 건 작년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목표했던 체중을 달성하고 두 달간 유지한 적도 있지만 항상성에 의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결국은 이루지 못한 결심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1월 1일, 새해 결심의 기본값인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신년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또 실패했다.

식단 조절도 못하는 의지박약이라며 자괴감을 느낀다. 스트레스를 받아 더 많이 먹게 되고 스스로를 미워하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그래도 데리고 살아야 할 자신이기에 또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한 결심을 한다. 실패에 스스로가 미워질 때, 생각지 못했던 인물, 공자가 위로를 해준다.
 

▲ 책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사회평론

 
"공자 역시 모순에 시달렸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이상적인 질서가 구현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분투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공자도 이미 알고 있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실패를 향해 전진한다."

논어 에세이인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만난 공자는 나와 같은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 시도하고, 실현되지 않을 괴로움을 알면서도 이상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공자와 나의 공통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맹자> '등문공장'(滕文公章)에 따르면, 공자는 정사에 종사할 만한 직책이 없는 기간이 3개월 정도 되면 초조해했다.(孔子三月無君, 則皇皇如也)

공자는 평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고 했다. 그런데 <논어>의 편집자는 기어이 <논어> 텍스트 내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구나!"(莫我知也夫)라는 공자의 탄식 역시 수록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공자는 성인(聖人)으로 우상화된 인물이다. 그러나 논어에서 보이는 공자는 우리처럼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본인이 한 말과 모순되는 발언을 하며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던 적당히 모순적이고 적당히 자괴감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는 해외 학계에서 사상가를 대하는 자세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의 저자가 해외 유학을 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유명한 사상가들이 우상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 학자들이 숭배했던 주희나 공자 같은 인물도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천재라기보다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들을 고민했던 지성인 중 한 사람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두 신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패하고, 불완전하다. 오히려 실패한다는 것은 이미 시도했다는 것이기에 격려받을 만하다. 스스로를 응원하고 사랑해 주자. 실패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실패에 좀 더 관대해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작심삼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수준까지는 원하는 것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난 네가 부럽지가 않지 않아

'그런 척' 못지않게 '아닌 척'도 많이 하며 산다. 소위 쿨(cool) 해 보이고 싶어서 세상에 달관한 것처럼, 무소유와 무욕의 삶을 표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는 나 세상에 미련 많다고, 욕심도 많다고 인정하고 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광광댈 때, 진정한 염세주의자는 이미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푸념할 만큼은 세상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침묵을 선언하는 사람은, 선언하는 만큼 침묵하지 않는 셈이다."

'나는 네가 부럽지가 않아'라고 말을 한 사람이라면 아주 조금은 부러움의 심상이 떠올랐을 공산이 크다. 정말 부럽지가 않은 사람은 부러운 대상을 보고 "부러움"의 개념조차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나의 감정을 부정하며 자기세뇌 혹은 자기기만을 해야 할까. 떠오르는 심상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시인한다면 그 감정이 보다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사람이 칭송받고 긍정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을 주입시키는 시대다. 부러움과 질투, 열등감 같은 감정은 다소 회피하고 부정해야 할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감정들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임을 인정할 때 더 편하게 본인을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올해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노력을 안 하기로 했다.

착하게만 살지 말고 똑바로 미워하자
 
"제자 자공은 "군자도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있나요?"(君子亦有惡乎)라고 스승에게 묻는다. 이에 대해 공자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당연하지! "미워하는 일이 있다."(有惡) 누군가 공자에게 "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떨까요?"라고 묻자, 공자는 되묻는다. "그럼 덕은 무엇으로 갚으려고?"(何以報德)"

나를 포함해 모범생 지인들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조금씩은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 여기기도 하며 그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자신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자에 의하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설픈 평화주의자나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논어에 따르면,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이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 낫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사회 분위기도 바뀌었다. '착하다'가 '바보 같다' 또는 '호구 같다'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면서 착하다가 꼭 칭찬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착하기만 한 것이 좋은 게 아니듯, 미워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쁜 것에 대해서는 미워해야 그 세력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잘못) 미워하기 쉬운 시대다. 극혐이란 단어가 남발되고, 분노조절장애가 사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미워하되 정확하게 미워하라. 논어가 요구하는 것은 '정교한 미움'이다.

논어 주석자들이 말하듯, 어떤 대상을 정확히 좋아하고 미워하려면 공정성에 대한 명철한 인식과 높은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각박한 세상에서 공감 능력은 퇴화하고 명철한 인식을 위해 할애할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는 시대이기에 누군가를 부정확하게 미워하기가 쉽다.

누군가를 잘못 미워하는 오류를 범하기보다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무해한 사람이고 싶기에 올해는 보다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하려 한다. 명철한 인식과 공감능력 향상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어떻게 2023년을 살아갈 것인가

저자는 고전 텍스트를 읽는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서문에 키다리 아저씨 책을 인용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고전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니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빨리'를 경계해야 한다. 1월 중순, 새해가 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고 1월의 반을 향해 가는 데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다시 키다리 아저씨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놓쳐버린다"는 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인생을 빨리 살기 위해 사는가, 제대로 살기 위해 사는가. 제대로 산다는 것은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좋은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좋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조급할수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다. 의식적으로 망중한(忙中閑)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여유로움 안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고 정확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주변을 챙길 수도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인생에 멀미가 날 때도 있지만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운전해야 한다. 가끔 내비게이션을 보고도 잘못된 길에 들어설 때도 있지만 목적지만 있으면 결국은 도달한다. 그 과정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같기를 바란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듯 한 번씩 브레이크를 밟아주자. 함께할 동승자가 있다면 더 재밌는 드라이브가 될 것이다. 목적지까지 이동할 것인지 드라이브할 것인지는 운전자인 나에게 달려 있다.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다 보니 2023년, 나의 새해 결심이 얼추 세워졌다. 물론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인 나로 살아가며 또 좌절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그러다가 다시 또 힘을 내자고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 눈에 선하지만 인간이 다 그렇지 않은가. 공자도 실패할 것을 알면서 실패를 향해 전진했다. 그러니 그래왔던 것처럼 올해도 나를 데리고 한해를 잘 살아가야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