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갇힌 외국인들... 벌써 석 달 째
[이용석의 전쟁이 묻지 않는 것들] 전쟁 거부하고 한국으로 온 러시아인들
▲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를 떠난 러시아인들이 인천국제공항 출국대기실에 갇혀 지내고 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째 인천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출국대기실은 말 그대로 '대기'를 위한 공간이지 사람이 거주할만한 공간은 아니다.
인천공항에 가서 이들을 만난 이상현 변호사에 따르면 제대로 된 식사는 하루 한 끼만 제공되고, 나머지는 영양을 고려하지 않은 '배 채우는 용도의' 음식이 제공될 뿐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의식주도 누리지 못한 채 인천공항에 몇 달째 머물게 된 까닭은 한국 정부가 이들의 난민 신청에 대해 심사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단순한 병역기피자이고 병역기피는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러시아인들은 전형적인 병역거부 사유의 난민이고, 전쟁을 거부한 병역거부는 난민 인정의 중요한 사유 중 하나다.
유엔난민기구에서 펴낸 〈난민편람〉에 기술된 '난민심사지침'은 "①병역거부가 정치적 의견과 같은 난민협약상 사유와 관련이 있으면 난민에 해당할 근거가 되고 ②특정 군사행동이 국제사회에서 인간의 기본 규칙에 반하여 비난 대상이 되는 경우 그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은 박해가 되며 ③병역거부는 ⒜거부자가 본심에서 그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의 표현이거나 ⒝정부가 그 거부 행위를 정치적 반대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덕에 '전가된(imputed)' 정치적 의견을 가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러시아를 탈출한 병역거부자들
▲ 2022년 9월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이 동원령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푸틴은 예상했던 것보다 전쟁이 길어지자 애초에 러시아 국민들에게 공언한 바와 달리 2022년 9월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내려 30만 명을 추가로 징집했다. 군 징집은 특히 소수민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집중되었다. 현재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러시아인들 또한 정교회 신자, 이슬람교 신자,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 출신, 몽골 민족 출신들로 이를 반증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과 전쟁에 동원되기를 원하지 않는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동원령에 거세게 저항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동원령이 발표된 9월 21일에는 38개 지역에서 최소 1300명이 체포되었고, 24일 벌어진 시위에서는 32개 지역에서 724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징집대상이 아닌 러시아인들도 동원령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상징적인 액션을 하면서 구속되거나 구금되고 있다.
직접적으로 동원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는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이들과 이들이 안전하게 러시아를 탈출하도록 돕는 이들도 있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단체 '보이스인코리아(Voices in Korea)'와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한국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라에 따르면 푸틴이 동원령을 발표한 뒤 몇 분 만에 이스탄불(튀르키예)과 예레반(아르메니아)으로 가는 기차표가 매진되고 몽골, 핀란드, 조지아와 러시아 국경에서 엄청난 교통체증이 나타났다고 한다.
실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러시아를 탈출했는지 정확하게 추산하긴 어렵지만 동원령이 발표되고 2주 동안 최소 38만 8000여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알렉산드라는 전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은 반전활동가들과 함께 러시아 정부의 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들을 대피시키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평화활동가들이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는 남성들을 돕는 까닭은, 그것이 명백하게 전쟁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고 전쟁을 멈추기 위한 직접행동이기 때문이다. 푸틴은 동원령이 성공적이며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국내외에 알리고 싶어 한다. 전쟁은 한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다. 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지지 없이는 지속하기 힘들다.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지지하지 않고, 동원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는 것은 푸틴의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일이다.
길어지는 전쟁에 군인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한다면 전쟁 승리는 요원하고, 그 이전에 러시아 내에서 전쟁 반대 여론이 높아진다면 전쟁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전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고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행동뿐만 아니라,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것-전쟁을 지지하지 않거나, 징집을 피해 도망가거나, 병역거부자를 돕는 모든 행동은 푸틴이 두려워하는 일들이고 정부가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병역거부는 전쟁에 대한 역사적 전통이 있는 저항 방식이다. 19세기까지는 소수의 종교인들이 종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했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을 멈추기 위한 평화운동가들의 병역거부가 이어졌다. 병역거부는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저항)할 수 있는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저항이었다.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기꺼이 잡혀가거나 재판을 받으면서 싸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징집을 피해서 혹은 전투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거나 난민이 되는 병역거부자들도 많았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탈영한 병역거부자들이 5만 명에 달했고 이들 중 일부는 난민이 되어 캐나다나 북유럽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징병이 실시된 1944년 이후 징집을 피해 도망친 조선인들과 1944년 이전 강제동원을 피해 도망 다닌 조선인들도 모두 전쟁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자들이다.
독립운동 혹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들-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거나 전쟁터에 나가 죽고 죽이는 일이 무서워서 도망 다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전시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정부를 방해하는 평화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난민 심사 기회조차 박탈한 법무부
▲ 법무부 ⓒ 법무부
인천공항에 체류 중인 러시아인들 또한 러시아 정부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고,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저항하는 병역거부자다. 그들 개개인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조선인들과 마찬가지로 평화주의자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평화주의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평화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의 정당성을 흠집 내고 푸틴이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막아서고 있다.
법무부는 이들을 병역기피자라고 이야기하지만 병역기피와 병역거부는 결국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1944년 일본 천황의 군대에 입대하지 않기 위해 도망간 조선인 이아무개를 당시 조선총독부는 병역기피자라고 했을 것이다. 병역거부권이 인정된 2018년 6월 이전 한국 병무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기피자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병역거부자들은 그들을 강제로 군에 입대시키고 싶은 이들에게는 병역기피자일 뿐이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헌법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병역거부를 법률로서 인정하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난민 심사를 관장하는 법무부는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교정시설도 관할하고 있으니 국방부와 더불어 병역거부와 아주 밀접한 정부 부처다.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나라의 법무부가,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법무부가 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결과적으로 전쟁에 저항하고 전쟁을 막기 위한 행동을 한 병역거부자들을 기피자라며 난민심사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병역기피자라는 시선은 법무부가 난민 신청자들의 심사를 회피하려고 억지스럽게 만든 핑계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전쟁에 동참할 것을 거부하고 동원령을 피해 한국으로 온 러시아인들이 병역거부자 난민임을 인정하고 난민심사를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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