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클래식 무대에서 리코더 든 남자, 유튜브가 바꾼 인생

[인터뷰]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협연자 남형주 리코더리스트

등록|2023.01.12 13:27 수정|2023.01.17 09:17
몇 년 전, 유튜브에 올랐던 한 편의 영상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광활한 활주로에서 군복을 차려입은 그는 작은 리코더를 불며 현란한 음색을 자랑한다. 지켜보는 이들은 그의 빠른 손놀림에 감탄을 자아내며, 연주자의 퍼포먼스에 빠져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도저히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왕벌의 비행'을 연주할 땐 이 영상의 백미에 다다른다.

이 영상은 2019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겸 에어쇼(서울 아덱스)'에서 진행한 공군군악대의 리코더 연주였는데, 지금은 조회수가 750만 뷰를 넘을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덕분에 영상의 주인공은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국민 예능 프로그램인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지난 2021년 2월 10일 방송분).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선 리코더
 

▲ 남형주 리코더리스트의 연주 장면 ⓒ 예술의전당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한 번쯤은 불어봤을 친숙한 악기를 가지고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은 리코더리스트 남형주(26)씨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현재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겨울방학을 맞아 잠깐의 시간을 내서 오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에서 리코더 협연자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남 연주자가 선보이는 작품은 <리코더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삘릴리'>이다. 학창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리코더는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음색을 가졌으며, 전 세계를 강타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경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숙한 악기지만, 클래식 연주에서 가장 복잡하며 어렵다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이어갈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악기가 이번 공연의 주인공으로 나서게 됐다.

리코더는 서양음악의 바로크 시대를 정점으로 중세와 그 이전의 세대에까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때는 '피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국악기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악기가 있어 현재는 '리코더'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영어권에서는 녹음을 뜻하는 'Record'라는 말에서 시작됐는데, 실제로 녹음기를 말하는 리코더와 철자를 같이 사용한다. 현재도 초등학교의 필수 악기일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그 시작은 1960년대 교육현장에서 '피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화제의 유튜브 영상에서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을 거쳐 이제는 클래식 공연에서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가졌다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게 된 남 연주자의 준비과정이 궁금했다. <리코더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삘릴리'>를 쓴 성찬경 작곡가는 '아창제'에 선정된 이후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제일 먼저 그를 떠올렸다 고백했다.

"여러 후보자들이 있었는데,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영상을 보고 당연히 그 분을 떠올렸어요. 워낙 대중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으니까, 설마 '이 분이 요청을 하면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아창제에 당선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협연자를 찾아야 했는데, 전에 봤던 유퀴즈 영상이 떠올라서 인스타그램 메신저로 연락을 했습니다."
 

▲ 유퀴즈에 출연한 남형주 리코더리스트 ⓒ 유퀴즈 갈무리


현재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남형주씨는 학업일정을 고려해 이번 연주회의 타이트한 일정을 어렵게 조율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와 이메일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영상 하나로 유명해질 줄 상상도 못했어요"

- 언제부터 리코더로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나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리코더를 좋아했지만, 전공이 있는 줄 몰라 취미에 그쳤습니다. 대신 여러가지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음악 쪽으로 진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7살 무렵에 학교 선생님 중 리코더를 전공하시는 분을 통해 국내에서 많은 리코더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부터 연주자로서 꿈을 키웠습니다."

- 리코더는 어떤 악기인가요?
"리코더는 17세기의 바로크 음악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연주되기 시작한 악기입니다. 고전 시대부터 서서히 사라졌다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다시 부활한 악기죠. 그러다 보니까 리코더를 전공하면 주로 17세기 이전의 음악을 배우거나 고전, 낭만, 근대는 건너뛰고 현대음악을 배우게 돼요. 조금 독특한 악기죠?"

- 리코더를 공부하면서 애로사항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또래에 비해서 늦게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처음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보통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악기들은 피아노와 반주를 맞추잖아요? 저희는 보통 하프시코드라는 바로크시대 악기와 호흡을 맞춥니다. 악기는 특정 시대의 피치를 재현하기 위해 415hz, 392hz 등의 국제표준음고가 아닌 악기로 연주를 해요. 악보는 그 시대 작곡가, 연주자들의 교본과 문헌을 참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곡이 어느 나라의 풍인지 또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조차도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랄까.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리코더를 연주했을까?'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 당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설계된 리코더니까요. 머리가 아프죠. 지금도 그런 점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하하)"

-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는 흔치않게 리코더 연주 학사 과정 전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공자로서 배우는 리코더는 어떻게 다른가요?
"초등학교 시절엔 '교육용악기'지만, 전공자는 '시대연주자'로서 전문적인 분야를 리코더를 통해 탐구하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 때문에 그렇다 보니 더욱 학교에 의지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이 매력적인 곡들을 어떻게 연주할 수 있을까?'를 수없이 고민합니다. 혹시 리코더에 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리코더앙상블이나 고음악 콘서트에 한 번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매년 한예종 4층 이강숙홀에서 연주를 합니다."

- 처음 '왕벌의 비행'을 연주했던 유튜브 영상에 출연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공군사관학교 공군군악대에서 군복무 당시에 간부님의 권유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군악대에는 리코더 특기가 없습니다. 저는 플루트 특기였어요. 군악대에서의 악기는 보통 의식행사를 위해 마칭밴드가 가능한 악기를 선발하거든요. 개인정비시간에 리코더연습을 하는 제 모습을 간부님이 보고 연주제의를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영상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750만 뷰가 넘었네요. 원래는 일렉기타나 마림바가 연주하던 곡을 리코더로 넘겨받아 연주하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점이 신기했나 봅니다. 지금도 간부님들하고 자주 연락을 하며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 이후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제 영상을 보시고 리코더가 장난감 피리(?)가 아니라 어엿한 악기로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뿌듯합니다. 이 영상을 계기로 제 개인 유튜브 채널의 프로필을 보고 <유퀴즈> 등 여러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리코더에 대해 아예 모르시는 분들 입장으로 인터뷰를 하려니까 뭐부터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게 많다보니 여러 선생님들께 조언 받아서 알기 쉽고 재미있게 리코더를 전달하려고 했어요. 덕분에 리코더를 아예 모르시는 분들도 '교육용악기'나 '장난감악기'가 아닌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악기로 봐주시게 되었고, 리코더를 배우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 리코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 처음 성찬경 작곡가로부터 협연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연주회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에서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한 학기 정도 도쿄예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와있는데요. 도중에 성찬경 작곡가로부터 협연 제의를 받게되고서 조금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업도 진행해야 해서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려고 했는데, 성찬경 작곡가님이 꼭 제가 협연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고민 끝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악보를 찬찬히 보니 왜 멀리있는 저에게 협연제의를 주셨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리코더하면 떠오르는 순수한 동심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아마도 그런 느낌을 담아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국악곡이 저에겐 낯설고 신기했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리코더의 목가적인 느낌이 잘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는 1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제14회 '아창제'에 대한 기대가 남다를 듯합니다.
"한국창작음악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축제에 설 수 있어서 설레고 기쁩니다. 대한민국에서 리코더는 대표적인 '교육용악기'로서 50년이란 세월을 우리들의 곁에서 줄 곧 함께 해왔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역할을 해온 리코더가 이 자리를 통해서 정말 멋진 악기라는 것을 저의 색깔을 입혀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최대한 순수하고 담백한 리코더의 음색을 전달하도록 노력했어요. 원일 지휘자 선생님이 이끄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의 호흡도 기대가 됩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훌륭한 연주단체와 호흡인 만큼 밉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창제'는 기획연주회를 통해 창작곡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페스티벌로, 오늘 우리나라 창작음악계의 현 단계를 진단하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는 연주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국악관현악과 리코더 협연이 상당히 기대된다. '아창제'가 써나가는 새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만나보길 기대한다.

한편, 제14회 '아창제'는 1월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되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사전 예약 시 관람이 가능하며, 초등학생 이상 관람할 수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