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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 줄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는 책

'철도 덕후' 전현우가 쓴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서평

등록|2023.01.12 11:17 수정|2023.01.12 13:31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각국 정부는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부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가솔린, 디젤차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신 전기차를 구매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친환경 정책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승용)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로 인해 지구에 위기가 찾아온 건 맞다. 전기차를 생산할 때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는 불편한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단순히 내연기관의 생산만 중단한다고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을까.  

최근 출간된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책에서 지적하는 건 공공교통 정책의 실패다. 제목처럼 '납치된 걷기 공간' 안에 위기를 유발한 핵심 원인을 파악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자동차
 

▲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표지 ⓒ 민음사

 
"나는 철도를 중심으로 하는 '확장된 걷기 공간'으로 도시를 재편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확장된 걷기 공간이란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를 걸어서 움직일 수 있고, 이 걷기를 돕는 수단으로 공공교통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차가 없는 뚜벅이도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쓴 전현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덕후'로, 전작인 <거대도시 서울 철도>(워크룸프레스)를 통해 전 세계 거대도시 50개의 철도를 분석한 바 있다. 전현우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은 50개 도시 중 22위로 중하위권에 불과했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당장 지하철노선도를 봐도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숫자로만 꽉 찬데다, 경기도 서쪽과 동쪽을 잇는 경의중앙선에, 경기도 북부의 의정부경전철이며, 경기도 남부의 신분당선 등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철도가 연결돼 있는데 뭐가 부족한 걸까.

전현우가 지적하는 것은 자동차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전현우는 한 출판사의 편집회의에 참석하려고 길을 걷다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강남의 한가운데인 이 동네의 길에는 자기 존재를 과시하듯 시끄럽고 큰 승용차들이 많이 다닌다. 이들 차량은 때로 굉음을 내며 보행자를 거칠게 밀어붙인다. 하는 수 없이 보행자들은 옆으로 피해야 한다. 편집자들이 주로 숨는 곳은 주차된 차량 사이의 틈새였다. 차주들은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보행자를 차량 사이의 틈새로 몰아내고 도로 전체를 점령한 셈이다."

전현우는 이런 상황을 자동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치킨게임이라고 설명한다. 이 치킨게임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시작됐다. 한국의 교통망과 도시 체계가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다. 전현우는 이를 '자동차 지배'라고 표현하며 제도의 우선순위와 길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과 심성도 지배했다고 말한다.

물론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물류를 이동하며 부산항에서 전 세계로 수출하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건 맞다. 그러나 곧이어 찾아온 마이카 붐으로 우리의 생활 패턴이 자동차 위주로 굴러간 걸 보면 전현우의 분석은 타당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도로교통사고사망자수는 2021년 기준 5.6명으로, 영국과 일본의 두 배가 넘고 미국 다음으로 높다(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통계분석' 2021년 기준).

아이디어는 미흡하지만 책의 화두를 보면

넘쳐나는 승용차 때문에 주차난도 심각해서 주차관리를 하는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주민도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당장 우리의 심성을 고칠 수 없겠지만, 전현우는 보도, 자전거, 개인용 이동 수단을 이용해 15분 내로 일상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15분 도시를 지구 온난화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나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 사이를 잇는 광역교통망을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동력 기관은 결국 이 광역교통망에서 필요하다. 하나의 광역권을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를 자동차 지배 공간이 아닌 방법으로 연결해 내는 것. 이것이 이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다."

목표를 위해 개인이 실천할 일도 구체적으로 적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연비운전을 하고, 가급적 SUV보다는 작은 차를 타라는 것이다. 더불어-반발이 크겠지만-불가피한 이동에 비례하는 탄소배출권을 개인이 추가로 부담하라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제시한 몇몇 의견은 아이디어가 미흡하다고 전현우도 시인한다. 결국 기후위기를 벗어나려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방법을 찾고, 전현우가 던진 화두에 답변해야 한다.

전현우의 전공은 철학이다.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에는 인간을 탐구하기 위한 철학이 담겨있다. 철도 덕후의 덕력도 오롯이 묻어난다. 나는 전현우와 일면식이 있는데 그의 연구 열정에 감탄한 바 있다. 주제가 잡히면 빠르게 검색하고, 검색한 결과를 쉽게 도표화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새해를 맞아 탄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독자라면,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읽고 전현우의 철학과 덕력, 데이터베이스를 믿고 실천해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블로그에 동시 게재합니다. https://bookkaebi.oopy.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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