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시간은 틀리지 않았다
유달승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을 읽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아크부대에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한다며 한 발언이다. UAE와 우리나라 간 외교, 국방협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아크부대에서 협력국의 적국을 규정해버리면서 협력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란 외무부 또한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기다린다"라고 해명을 요구하며 한국과 이란의 관계도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UAE와 이란 양국 모두에 대한 치명적인 외교적 실수임이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의 기저에는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단편적인 시야가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반정부 시위, 이로 인한 월드컵 국가대표의 국가 제창 거부, 이슬람 율법으로 인한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미국과의 핵 분쟁까지. 2023년 한국 언론과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이란의 모습이다.
이란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이 먼 나라 이란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다. 이슬람 율법이란 미명 아래 약자의 인권 탄압이 일어난다는 사실에는 분노하지만, 이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사실은 알지만, 이란과 페르시아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인식'이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이해'이다. 사회문제가 생긴 역사적 배경과 인과관계도 모른 채, 막연히 '이란의 이슬람 율법에 따른 악습은 철폐되어야 해!', '반정부 시위를 보니, 지금 이란은 위험한 나라이군'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이란이란 국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책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이란의 사람들과 이란의 문화를 꾸밈없이 담백하게 그려낸다. 저자가 이란을 연구하고 이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이란에 대해 쉽게 풀어 전해준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던 이란의 분쟁과 사회 문제 이전에 이란 사회와 문화부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생활 습관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서 저자 유달승씨는 이란의 사회문제와 문화에 대해 느낀 점과 사실들을 전해줄 뿐, 큰 견해를 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의 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이란을 보는 우리 중 누가 먼저 변해야 할까' 정답이 없는 의문이다.
사회문제와 국제관계에 누가 중간에 서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각각의 이해와 의견이 모여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책에 이란이란 국가에 대해 큰 가치판단 대신 느낀 점을 채워 넣어 독자들에게 각자의 이해와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것이 아닐까 조심히 예측해본다.
언론은 이란을 공포의 존재로 그리지 말아야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언론이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방법 중 하나로 '공포 본능'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평화롭고 일상적인 이슈보다는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이슈에 더욱 반응하는데, 언론은 이를 이용해 세상의 자극적인 이슈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언론은 조회수를 챙긴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란이 언론들에겐 이 공포본능의 가장 대표적인 재료이다. 지금의 언론에서의 이란은 '부정적 인식'에 멈춰있다. 언론의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위험하고 나쁜 나라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밖에 안된다. 과연 지금 언론에서 비추고 있는 이란은 무엇을 위한 보도이고, 누구를 위한 인식인가.
이란인들은 약속을 할 때,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빌린 노트를 돌려주는 약속을 정한다면, 그저 '내일 오후 법정대학 건물 안에서 만나자'가 약속의 전부이다. 노트 한 권을 빌려준 것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까지 공책에 같이 끼워 준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이해'를 해야 할 때다. 언론은 이란을 더 이상 공포의 존재로 그리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란이란 나라의 맹목적인 거부감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해와 의견이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선할 점은 서로 고쳐주며 중간에서 만나야 한다. 어쩌면 식상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지향점이 아닐까. 이란인들이 '시간'보단 '공간'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조금 다르겠지만, 모두 향하는 방향은 같기에, 이란은 UAE의 적이 아니고, 이란의 시간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아크부대에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한다며 한 발언이다. UAE와 우리나라 간 외교, 국방협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아크부대에서 협력국의 적국을 규정해버리면서 협력국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란 외무부 또한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기다린다"라고 해명을 요구하며 한국과 이란의 관계도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UAE와 이란 양국 모두에 대한 치명적인 외교적 실수임이 분명하다.
이란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태도
▲ 유달승,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한겨레출판
오늘날 많은 한국 사람들이 먼 나라 이란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다. 이슬람 율법이란 미명 아래 약자의 인권 탄압이 일어난다는 사실에는 분노하지만, 이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사실은 알지만, 이란과 페르시아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인식'이지만,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이해'이다. 사회문제가 생긴 역사적 배경과 인과관계도 모른 채, 막연히 '이란의 이슬람 율법에 따른 악습은 철폐되어야 해!', '반정부 시위를 보니, 지금 이란은 위험한 나라이군'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이란이란 국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책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이란의 사람들과 이란의 문화를 꾸밈없이 담백하게 그려낸다. 저자가 이란을 연구하고 이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이란에 대해 쉽게 풀어 전해준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던 이란의 분쟁과 사회 문제 이전에 이란 사회와 문화부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생활 습관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서 저자 유달승씨는 이란의 사회문제와 문화에 대해 느낀 점과 사실들을 전해줄 뿐, 큰 견해를 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의 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이란을 보는 우리 중 누가 먼저 변해야 할까' 정답이 없는 의문이다.
사회문제와 국제관계에 누가 중간에 서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각각의 이해와 의견이 모여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도 책에 이란이란 국가에 대해 큰 가치판단 대신 느낀 점을 채워 넣어 독자들에게 각자의 이해와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것이 아닐까 조심히 예측해본다.
언론은 이란을 공포의 존재로 그리지 말아야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에서 언론이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방법 중 하나로 '공포 본능'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평화롭고 일상적인 이슈보다는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이슈에 더욱 반응하는데, 언론은 이를 이용해 세상의 자극적인 이슈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언론은 조회수를 챙긴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란이 언론들에겐 이 공포본능의 가장 대표적인 재료이다. 지금의 언론에서의 이란은 '부정적 인식'에 멈춰있다. 언론의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이란은 위험하고 나쁜 나라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밖에 안된다. 과연 지금 언론에서 비추고 있는 이란은 무엇을 위한 보도이고, 누구를 위한 인식인가.
이란인들은 약속을 할 때,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빌린 노트를 돌려주는 약속을 정한다면, 그저 '내일 오후 법정대학 건물 안에서 만나자'가 약속의 전부이다. 노트 한 권을 빌려준 것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까지 공책에 같이 끼워 준 것과 다름없다.
프리초프 슈온은 이슬람의 시간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른 모든 전통 문명과 마찬가지고 이슬람은 '시간'보다는 '공간'을 더 중시한다. (중략) 이란 문화는 인간 본성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의미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중략) 이러한 이란의 문화 덕분에 한번 이란인과 인연을 맺게 되면 그 순간 세사의 시간이 멈추고 영원한 관계가 구축된다.
이제는 '이해'를 해야 할 때다. 언론은 이란을 더 이상 공포의 존재로 그리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란이란 나라의 맹목적인 거부감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해와 의견이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선할 점은 서로 고쳐주며 중간에서 만나야 한다. 어쩌면 식상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지향점이 아닐까. 이란인들이 '시간'보단 '공간'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조금 다르겠지만, 모두 향하는 방향은 같기에, 이란은 UAE의 적이 아니고, 이란의 시간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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