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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때 '공출 반대' 전단 뿌렸다고 징역형, 재심해야"

진실화해위, 양아무개 사건 진실규명... "적법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

등록|2023.01.18 08:58 수정|2023.01.18 09:03

▲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 사건 진실규명 관련 자료(고 양아무개의 수용자 신분장). ⓒ 진실화해위


미군정 때 '공출 반대, 단정(단독정부) 반대' 문구가 적힌 전단지(삐라)를 두 차례 살포했다는 등의 이유로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던 민간인이 당시 적법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던 사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아래 진실화해위)에 의해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고 양아무개(경남 고성)씨와 관련해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미군정 포고령) 2호 위반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결정하면서 재심 권고와 피해 회복 조치가 필요하다고 18일 밝혔다.

전날 진실화해위는 제50차 위원회의를 열어 미군정 포고령 2호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양씨의 유족이 신청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1948년 1월 남로당에 가입했던 고인은 같은 해 12월까지 경남 고성군 하일면 수양리의 도로를 파괴해 왕래를 방해하거나 '공출 반대, 단정 반대' 문구가 쓰인 전단을 두 차례 살포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은 이듬해 5월 고인에게 구형법(124조)과 국가보안법(제1조 제3호, 제3조),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을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고인은 상소권을 포기해 판결이 확정됐다.

구형법은 한국 형법이 제정되기 전인 1912년 4월 1일부터 1953년 10월 2일까지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일본 형법, 미군정 포고령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까지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청이 발표한 포고령을 말한다.

고인의 자녀는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감금,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재판의 재심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범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지난해 11월 1일 열린 제44차 위원회의에서 조사개시를 결정하고, 그동안 조사를 벌여왔다.

그결과 '수용자 신분장'을 통해 고인이 최소 24일간 수감됐던 사실은 확인했지만 '영장 발부'란이 백지상태고, 다른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불법구금 여부나 정확한 구속 일수를 확인할 수 없었고, 수사 과정 중 구타와 가혹행위 여부도 관련 기록이나 참고인 등이 존재하지 않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판결일을 기준으로 1948년 9월 27일 시행된 대통령령 제6호인 '일반 사면령'에 의거해 면소돼야 하지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위법하고, 최근 법원이 미군정 포고령 제2호가 대한민국 헌법에 저촉돼 위헌이라고 밝힌 것을 근거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반 사면령'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 이전에 미군정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은 면소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징역형의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또 2021년 법원이 "포고령 제2호 내용은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국민이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려우므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해 위헌·무효"라고 했던 판단을 인용했다.

진실화해위는 "양아무개씨의 적법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체의 자유가 침해된 것"이라며 "법률 적용이 잘못된 확정판결에 대해 국가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피해 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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