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안사 ⓒ 정만진
차를 몰고 대구 앞산 고산골 주차장에 바로 가면 로마 건물 느낌이 나는 금안사에 닿는다. 주차장 바로 위 산쪽에 금안사가 서 있다. 대구광역시 남구 용두1길 104.
주차를 한 후 금안사를 둘러보면 되니 차 세우는 일로 골머리를 앓을 일은 없다. 게다가 이곳은 한반도 내륙에서 그리 쉽게 만날 수 없는 빙하기 유적을 거느리고 있어 아주 금상첨화이다. 주차장 옆을 지나가는 작은 계곡 안에 공룡발자국이 있다. 어린 자녀와 함께 이곳을 찾은 부모에게 아주 안성맞춤인 답사지인 셈이다.
▲ 공룡그림이 눈길을 끄는 해룡사 ⓒ 정만진
상동교 쪽에서 걸어서 접근한 경우에는 금안사에 닿기 전에 대룡사(남구 용두길 84)를 보게 된다. 작은 골짜기인데도 사찰이 11곳이나 있는 것을 보면 옛날에는 고산골이 대구 시내에서 아득히 먼 산골이었겠지만, 주택들이 자꾸만 들어선 까닭에 그 중 가장 낮은 지점의 대룡사는 아주 동네 중심부에 놓이고 말았다.
금안사 약간 오른편 위에 해룡사가 있다. '약사여래'라는 글자가 사찰명 앞에 기록된 것은 이 절이 저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와 같은 신앙 종류를 지닌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약병을 들고 있다고 해서 '약사불'이라 불리는 약사전의 불상은 현실문제를 해결해 준다.
▲ 선광사 ⓒ 정만진
해룡사 오른쪽 고산3길54에 견불사가 있고, 다시 그 옆에는 선광사도 있다. 견불사와 선광사를 지나 마을 안 작은 사거리를 건너면 고산3길18에 덕화사가 있다. 한번도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오늘도 담장 너머로는 푸른 바탕 흰 글자의 극락전 현판이 선명하다.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찰일수록 한번은 꼭 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대구에서 법당과 탑 등을 보기 어려운 곳으로는 동화사의 금당암이 있다. 이곳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수련 도량이라 민간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덕화사는 담장 너머로 극란전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물론 상반신만이다.
▲ 극락전 현판이 눈에 잘 들어오는 덕화사 ⓒ 정만진
되돌아서, 해룡사 앞을 지나 좀 더 걷는다. 왼쪽에 네 집, 오른쪽에 한 집을 둔 골목과 좌우로 농토를 거느린 좁은 밭길, 그리고 약간의 오르막 오솔길을 지나면 가끔 차동차가 오가는 도로가 나타난다. 고산골 관리사무소로 가는, 인도는 흙으로 된 맨발길이다.
골짜기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펼쳐진다. 포장이 되어 있어 산길 분위기가 영 아닌 등산로를 천천히 오르면 수덕사, 성불사, 굴암사, 법장사가 줄지어 나타난다. 차례차례 사찰 경내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다.
▲ 수덕사 ⓒ 정만진
▲ 성불사 ⓒ 정만진
▲ 굴암사 ⓒ 정만진
수덕사, 성불사, 굴암사를 지나면 고산골 최고의 답사 사찰로 널리 알려진 법장사가 나타난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신라 때 탑으로 인정되는 문화재자료 3층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장사는 또 다른 특이점도 있다. 흔히 사찰에는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의 현판을 단 중심 절집이 있게 마련인데, 법장사에는 그에 해당되는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무나 궁금한 일이지만, 아무도 없어서 궁금증을 참은 채 탑을 등지고 밖으로 나선다.
▲ 법장사. 겨울 사진이 별로 마땅하지 않아 단풍철에 찍어 두었던 것으로 대체합니다. ⓒ 정만진
지금까지 산을 돌아다녔지만 운동을 했다고 할 정도는 못 된다. 그저 산책 수준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기다리는 고산골 마지막 사찰이 있다. 토굴암을 향해 걸으면 된다.
운동을 하려면 성불사까지 내려간 다음, 그곳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400미터 가량 걸을 일이다. 토굴암까지 가는 길은 사뭇 오르막이다. 제법 가파르기도 하다. 걸어본 뒤 중간쯤에서 힘이 부치면 둘 중 하나다. 늙었거나, 운동 부족!
다른 길은, 운동성은 모자라지만 오롯이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한적한 오솔길 산책로이다. 법장사 바로 위 다리를 건넌 다음 계속 직진해서 오르지 말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된다. 고불고불 대략 편편한 오솔길을 한참 즐긴 후 아주 좁은 계곡 하나를 건너면 토굴암 턱밑에 닿는다.
▲ 토굴암 ⓒ 정만진
사찰이라기 보다는 마치 화전민의 집처럼 여겨지는 토굴암! 그 이름답게 작은 굴 안에 부처가 모셔져 있고, 본당도 거의 굴집 모습이다. 깊고 높은 산중인데도 "고산3길 95-2"라는 속세의 번지가 붙어 있다.
어색한 기분에 짐짓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절집 안으로 들어서는 작은다리 위에 놓인 담벽에 게시되어 있는 그 번호판 아래의 법구경 좋은 말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금 전에 본 돌탑들에 이어 두 번째로 마음을 빼앗긴다.
내려오는 길, 돌탑들이 나를 배웅한다. 탑들은 온몸으로 내게 인사를 보내지만 나는 그제 눈빛으로 답례를 한다. 손이 시릴 것 같다.
▲ 토굴암 입구의 좋은 말씀(법구경 일부) ⓒ 정만진
▲ 토굴암 입구 돌탑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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