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지나니 그립네요, 목욕탕에서 먹던 '박사'
목욕 이상의 위안을 주던 목욕탕 자리에 들어선 실내골프연습장을 보며
명절 끝에 유독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목욕탕이다.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설, 이 넉넉하고도 쌀쌀한 연휴에 몸과 맘을 리프레시 하는 데 이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아쉬우면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론이다. 아니 '물론이었다'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집 앞 1분 거리에 있는 나만의 핫플 목욕탕이 사라진 지 오늘로 8개월째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빛나는 곳이 되었다.
지난 5월. 이달까지만 영업하겠다는 목욕탕 안내 문자를 받고서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목욕탕 폐업에 무슨 망연자실까지 할까마는 진심으로 아쉬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30년을 지킨 목욕탕이었는데
90년대 초반, 수도권의 신도시인 이 동네에 아파트와 함께 들어선 목욕탕이었다. 그간 수많은 한국의 경제 부침에도 꿋꿋하게 견딘 곳. 단정하고도 아날로그 한 분위기를 간직한 채 동네의 수많은 팬덤을 보유했던 핫플이 마침내 문을 닫은 것이다.
이유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에 목욕탕이 이만큼 버텨준 것도 고마웠다.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온수와 난방을 유지해야 하니 아무래도 그 유지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기간 내내 늘 문을 닫지 않을까 불안했었다. 목욕탕에 가지도 못하면서, 목욕탕이 없어질까 봐 10장짜리 쿠폰을 시시때때로 구입해 놓았었는데, 쿠폰을 환불해 가라는 문자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코로나가 엔데믹화 되고 있고, 이제 곧 실내 마스크 제한도 풀린다지만 아마 목욕탕이 지금껏 버텨왔더라도 운영이 힘들긴 했을 것이다. 가스비와 전기요금이 모두 올라 영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하면서도 요즘 뉴스에서 몇십 년이 된 목욕탕들이 영업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줄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매번 안타깝다. 그곳을 이용하며 많은 위안을 찾던 사람들의 아쉬움이 오롯이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목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겠지만, 목욕은 단순히 몸을 닦아내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몸이 데워지며 손끝 발끝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는 효과일 텐데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면 뭉쳐있는 근육뿐만 아니라 뭉쳐있던 마음도 풀린다고 할까. 나를 둘러싼 아집과 완고함까지 느슨해지는 것 같다.
그뿐만일까.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건식 혹은 습식 사우나에서는 잠깐만 앉아 있어도 30분간 숨차게 달린 것처럼 땀이 나는데 (물론 칼로리는 태우지 못하지만) 그 개운하고 시원한 기분에는 약간의 중독성마저 있는 것 같다.
땀이 나지만 운동보다는 휴식과 치료에 가까운 사우나의 효과. 목욕을 즐기는 분들이 대개 나이 지긋하신 분들, 그중에서도 무릎이나 허리가 안 좋은 어르신들인 것도 이런 효과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병원에서 받는 간단한 물리치료와 비슷하다고 할까.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 목욕탕의 잇템인 '박사'의 청량함은 또 어떻고. 뜨거운 목욕탕 안에서 즐기는 '박사'는 얼음을 잔뜩 채운 통에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만든 음료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음료는 딱 목욕탕 안에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목욕 이상의 휴식 공간
아, 이를 어쩌나. 목욕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더해지니 목욕탕에 대한 찬사가 끝이 없다. 그러고보면 목욕탕에서 보내는 몇 시간은 나에게 있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매우 알차게 즐길 수 있는 휴식이자 레저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목욕만한 아이템을 찾지 못한 터라 요즘엔 40분간 충분히 달리고 가볍게 샤워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다. 마치 자가발전기를 돌리는 기분으로 몸을 데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목욕탕의 그 뜨거운 열기가 그립다.
이제 우리 집 앞, 그 목욕탕은 8개월간의 공사를 끝내고 곧 실내골프장 오픈을 앞두고 있다. 누군가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던 곳, 마음을 풀어주던 곳,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참새 방앗간 같던 그곳이 이제는 흔하디 흔한 실내골프연습장이 되는 것이다.
목욕탕 문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30년 동안 자리를 지킨 목욕탕에 대한 아쉬움보다 동네에 커다란 실내 골프연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 반갑다고들 한다. 허나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딘 나에게는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들이 매번 아쉽기만 하다.
하루가 즐거우려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이 즐거우려면 이발을 하라고 했던가. 하루만큼의 행복을 위해, 더 이상 목욕탕의 폐업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2023 설을 보내며 간절히 소망해본다.
아쉬우면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론이다. 아니 '물론이었다'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집 앞 1분 거리에 있는 나만의 핫플 목욕탕이 사라진 지 오늘로 8개월째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빛나는 곳이 되었다.
30년을 지킨 목욕탕이었는데
▲ 부산의 동네 목욕탕부산에는 유독 예스러운 목욕탕이 많아 목욕탕의 추억들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 김나라
90년대 초반, 수도권의 신도시인 이 동네에 아파트와 함께 들어선 목욕탕이었다. 그간 수많은 한국의 경제 부침에도 꿋꿋하게 견딘 곳. 단정하고도 아날로그 한 분위기를 간직한 채 동네의 수많은 팬덤을 보유했던 핫플이 마침내 문을 닫은 것이다.
이유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에 목욕탕이 이만큼 버텨준 것도 고마웠다.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온수와 난방을 유지해야 하니 아무래도 그 유지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기간 내내 늘 문을 닫지 않을까 불안했었다. 목욕탕에 가지도 못하면서, 목욕탕이 없어질까 봐 10장짜리 쿠폰을 시시때때로 구입해 놓았었는데, 쿠폰을 환불해 가라는 문자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코로나가 엔데믹화 되고 있고, 이제 곧 실내 마스크 제한도 풀린다지만 아마 목욕탕이 지금껏 버텨왔더라도 운영이 힘들긴 했을 것이다. 가스비와 전기요금이 모두 올라 영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하면서도 요즘 뉴스에서 몇십 년이 된 목욕탕들이 영업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줄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매번 안타깝다. 그곳을 이용하며 많은 위안을 찾던 사람들의 아쉬움이 오롯이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목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겠지만, 목욕은 단순히 몸을 닦아내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몸이 데워지며 손끝 발끝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는 효과일 텐데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면 뭉쳐있는 근육뿐만 아니라 뭉쳐있던 마음도 풀린다고 할까. 나를 둘러싼 아집과 완고함까지 느슨해지는 것 같다.
그뿐만일까.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건식 혹은 습식 사우나에서는 잠깐만 앉아 있어도 30분간 숨차게 달린 것처럼 땀이 나는데 (물론 칼로리는 태우지 못하지만) 그 개운하고 시원한 기분에는 약간의 중독성마저 있는 것 같다.
땀이 나지만 운동보다는 휴식과 치료에 가까운 사우나의 효과. 목욕을 즐기는 분들이 대개 나이 지긋하신 분들, 그중에서도 무릎이나 허리가 안 좋은 어르신들인 것도 이런 효과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병원에서 받는 간단한 물리치료와 비슷하다고 할까.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 목욕탕의 잇템인 '박사'의 청량함은 또 어떻고. 뜨거운 목욕탕 안에서 즐기는 '박사'는 얼음을 잔뜩 채운 통에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만든 음료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음료는 딱 목욕탕 안에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목욕 이상의 휴식 공간
▲ 50년째 성업 중인 '수봉목욕탕' ⓒ 굿모닝인천
아, 이를 어쩌나. 목욕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더해지니 목욕탕에 대한 찬사가 끝이 없다. 그러고보면 목욕탕에서 보내는 몇 시간은 나에게 있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매우 알차게 즐길 수 있는 휴식이자 레저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목욕만한 아이템을 찾지 못한 터라 요즘엔 40분간 충분히 달리고 가볍게 샤워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있다. 마치 자가발전기를 돌리는 기분으로 몸을 데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목욕탕의 그 뜨거운 열기가 그립다.
이제 우리 집 앞, 그 목욕탕은 8개월간의 공사를 끝내고 곧 실내골프장 오픈을 앞두고 있다. 누군가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던 곳, 마음을 풀어주던 곳,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참새 방앗간 같던 그곳이 이제는 흔하디 흔한 실내골프연습장이 되는 것이다.
목욕탕 문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30년 동안 자리를 지킨 목욕탕에 대한 아쉬움보다 동네에 커다란 실내 골프연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 반갑다고들 한다. 허나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딘 나에게는 이렇게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들이 매번 아쉽기만 하다.
하루가 즐거우려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이 즐거우려면 이발을 하라고 했던가. 하루만큼의 행복을 위해, 더 이상 목욕탕의 폐업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2023 설을 보내며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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